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가끔은 삵과 같은 기운이 감돌기도 한다. 언니는, 음. 살쾡이 같아, 라는 동생년 말은 틀리지 않다.
그렇다. 나에겐 삵이 있다. 아닌 건 아니고, 기인 건 반드시 기이며, 불필요 할 만큼 솔직하여 상대를 할퀼 때 있다. 그런 나더러 쥐며느리 같은 동생은 살쾡이, 란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두 자매는 방콕여행 중이었다. 그것은 자매표 첫 해외여행이었다. 의미로운 것은, 외국을 고급 레스토랑 가듯 일 년에 두 세 번꼴로 다니는 나와 달리, 동생은 처음 한국 땅을 벗어나 본 것이라는 거다. 때문에 비행기 예매를 마친 세 달 전부터 양껏 들떠 있었는데, 통하지 않는 외국말에 의지할 곳은 언니 하나라, 그거 하나 빼곤 전부가 즐거울 것 같다던 자매님이었다.
쟈-시스터즈 여행은 순탄했다.
어려서도 그랬지만, 날이 갈수록 온순해지는 동생 덕에 나는 걔 배려를 받으며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내가 가고 싶은 곳엘 갔으며, 내가 피곤한 때에 호텔에 가 쉴 수 있었다. 하자, 하면, 그래, 해 준 걔 덕분에 철저히 내 중심으로 돌아가던 방콕바닥이다. 그런 동생이 유일하게 부탁한 게 있었다. 하나는 스쿰빗에 있던 스타벅스에 가자는 거였고, 나머지 하나는 방콕에서 볼 수 있다는 그 과일을 사먹자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좋다, 내 이 정도는 들어주마.
오후엔 현지인 한 둘뿐인, 대부분이 코리안이라 한국인 줄로 착각할 법한 스벅에 들러, 거기서만 마실 수 있다던 음료 하나를 시켜 천 개의 셀카를 찍었고, 이윽고 밤이 되어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쯤 과일을 먹어줘야 했는데, 마침 호텔 근처에 로컬 시장이 있어 잠시 들르자던 참이었다.
시장은 한 길 따라 좌우로 좌판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난 길로 쭉 걷기 시작했다. 보이는 대로 망고와 망고스틴을 사고, 용과도 사고, 두리안도 찔끔 사들였다. 태국에서 판매하는 과일이란 과일은 죄다 사 모으고 있는데, 여전히 미지의 과일은 만날 수 없었다. 계속 걸었던 거 같다. 걸으며 물었다. 도대체 먹고 싶은 게 뭐냐고, 유튜브에서 뭘 본 거냐고, 그 ASMR 언놈이 찍은 거냐고, 꼭 먹어야겠냐고. 삵이 모습을 드러내려 했던 것도 그 맘쯤 이었다. 그때, 동생이 외쳤다. “언니 저거!” 그물망 안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던 황색의 식물 껍데기를 보더니, 마침내 그것이라 했다.
“하우 머치 이즈 디스 원?”
내 보인 다섯 손가락이 단 돈 오백 원(*편의상 “원”이라 하겠다)을 의미하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얼마가 있는지부터 살펴보았다. 통역도, 가이드도, 총무도 나였다. 가방 안엔 만 원짜리 몇 장이 있었고, 잔돈이랄 것은 달랑 이백 원 뿐이었다. 귀찮구로 구천 칠백 원을 찰랑거리며 다니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아, 흥정을 시도해보고자 하였다. 손가락 두 개를 내밀었다. “캔 유 디스카운트 어 리를 빗(60%만 깎아 주실래요?)” 상인은 어림도 없다는 듯 질색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질렀는데, 망했다. 하는 수 없어 동생을 설득하려 했다.
“야, 우리 지금 잔돈이 없어. 근데 아저씨가 깎아 주지도 않겠데. 어떡해? 그냥 가자. 덥다. 이미 산 과일도 엄청 많잖아.”
폭발하기 직전이던 그 당시, 나는 2년을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단 4주차에 접어든 때기도 했다. 2주간은 후련했다. 아무래도 이쯤이 맞았고, 상대 또한 제법 쿨하게 받아들여 그것으로 2년짜리 연애는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다 3주차 되었나. 정신이 오락가락해지기 시작했다. 그리움과 미안함, 그러다 밑도 끝도 없이 잘했다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일까지, 조울이 밀려왔다. 헤어지자 한 건 분명 나였다. 그것도 개쿨하게. 게임 하던 그에게 전활 걸어 그만 만나고 싶다고, 삵 같이 할퀸 건 난데. 그렇게 4주차가 되어, 정신 차려본 곳에 나는 방콕 어느 한 시장이었다. 옆에 있던 동생은 내 눈치 한 번 보더니, 아무튼 눈치 없이 말했다.
“언니, 우리 이거 사먹으면 안 돼?”
(끝내 울렁거리던 이별 후유증을)참지 못하고 나는.
“뭐? 지금 이거 하나 먹자고 만 원짜리를 깨자는 거야? 잔 돈, 이거 네 주머니에 넣어 찰랑찰랑 거리며 들고 다닐 거야? 어?” 라며 이유 없이 언성 높였고, 양의 해에 태어나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순한 양인 동생은.
“아, 내가 방콕 오면 꼭 먹고 싶었어서 그래. 먹으면 안 될까? 내가 들고 다닐게! 미안해.” 라기에 나는 야무지다 못해 똑 부러지도록.
“미안하다 말할 거면서 미안할 짓을 왜해?”
삵을 내보이고야 말았다. 헤어진 거 후회 할 거면서 후회할 짓을 왜해? 라고 내게 외치는 꼴이었다.
그 똥 같이 생긴 새콤달콤 버전 곶감 맛 과일을 한 봉지 사긴 했다. 잔뜩 날카로워진 송곳니로 만 원 짜리 한 장을 지불 해, 기어코 구천 오백 원을 거슬러 받았다.
“코쿤카압” 한 마디 하고는 달랑 거리던 검정색 봉지와 철렁 대던 잔돈을 들고 다시 걸었다. 나는 한 걸음 앞서, 동생은 두 걸음 뒤에 서 있었다.
*
씻고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침대에 앉아 똥 모양 과일을 까먹은 거였다. “오, 이거 맛있네.”
연신 외치다 그 대부분을 해 치운 건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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