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 마시야
엄마 우리 두 딸 키우며 함께한 것이 있다면 하나는 파리채, 하나는 다시다 일 것이다. 제법 자라 맞아도 으스러지지 않을 정도로 여물며 엄마는 파리채에 손대기 시작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90년대 후반엔 1집1파리채였는데, 윙윙 나대는 파리 잡으러 산 것이겠다만, 파리 잡는 데 쓰인 일은 아빠로부터 본 기억이 대부분이다. 우리 두 자매 싸우고 나면 엄마는 어김없이 파리채를 들었다.
“누가 싸우래? 어? 엄마아빠라도 없으면 세상에 너희 둘 뿐인 거 몰라? 어?”
“쟈스민 일로와. 언니가 돼서 동생한테 양보는 못하고, 동생하고 싸우길 왜 싸워. 어?”
“너도 일로와. 언니 말 잘 들어야지. 어? 엄마 자꾸 속상하게 할래? 어?”
잔뜩 화가 난 엄마 입과 손은 바빴다. 동생과 내게 번갈아 꾸중하며, 틈틈이 파리채로 훈육 했다. 그럼 우리는 단 한 대라도 피하기 위해 몸이 오그라들도록 피했다. 엄마 매는 제법 매서웠다. 목욕탕 데려가 세신용 베드에 뉘어 야무지게 때 밀어 줄 때부터 알긴 알았다만, 파리채에 실린 엄마파워는 따가운 반성을 하게 했다. 젊은 날 엄마는 그랬다. 온 힘 다해 우리를 사랑해주었다.
흠씬 맞아, 그제야 비자발적으로 동생과 화해하고 나면 엄마는 김치찌개를 끓여줬다. 지은이 아줌마가 끓여준 김치찌개와 비교도 안될 만큼 맛있는 우리 엄마표 김치찌개 말이다. 당시는 온 동네가 한 가족과 같아, 김장철이 되면 지은이 엄마, 은정이 엄마, 누리 엄마 전부가 모여 한 해 동안 동네 식구가 먹을 김치를 담그고, 나누었다. 그러니까 지은이네 김치나 우리 집 김치나 한데서 나온 김치라는 것이다. 더욱이 동네엔 넉넉하게 사는 이 없이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았으므로, 김치 냉장고라는 신문물을 가지고 있는 집은 우리 집도 지은이 집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지은이 엄마 김치찌개와는 다른 맛이 우리 집에 있었다. 엄마 김치찌개는 언제 먹어도 맛있었다. 입이 까다로운 아빠 때문에, 그러니까 돼지 들어 간 김치찌개는 일절 입에도 대지 않던 아빠 때문에, 참치 넣는 것조차 싫어하던 아빠 때문에, 오직 김치만 넣고 끓였음에도 최상의 맛을 내던 우리엄마 김치찌개였다. 그리고 까탈스러운 아빠도 만족시킨 김치찌개였다.
(동생에게 미안하지는 않아서, 오직 파리채로 맞은 게 아파서)한껏 울고 나 먹는 김치찌개는 꿀맛이었다. 어찌나 울부짖었던지, 가시지 않은 가쁜 숨으로 한 입 떠먹는 김치찌개는 어쨌거나 예술이었다. 그런 우리 둘 보고 있자니 엄마는 또 다른 이유로 속상해졌는지, 눈과 코가 빨개진 채로 오물거리는 우리 밥그릇에 찌개김치 하나 얹어주기도 했다. 그러며 말했다. 많이 먹어, 둘이 싸우지 좀 말고. 너희 둘 싸우는 거 보면 엄마가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는 줄 아니. 엄마는 형제가 없어서 너희 둘 보면 참 부러워. 의지할 곳 하나쯤 있잖아. 스미지 않는 말을 엄마는 우리 둘 앞에 늘어놓았다. 그저 김치찌개가 맛있었을 뿐이었다.
까탈스러워 그것이 유난 같던 아빠를 일찍 보내고.
엄마는 엄마로 모자라 아빠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러 가면 그 시간 남은 건 우리 두 자매였다. 엄마가 아빠를 대신한 사이, 엄마를 대신한 건 나였다. 어느 날은 저녁에 먹을 김치찌개를 끓여 보기로 했다. 엄마 옆에 서 지켜보던 기억을 되살렸다.
‘엄마가 김치 숭덩숭덩 잘라 적당량의 물과 함께 끓인 거 같던데. 양파랑 파도 조금 넣고, 어느 정도 끓으면 연두색 병에 담긴 참(혹은 들)기름을 구분 없이 또르르 따랐던 거 같은데. 그리고 조금 더 끓이고.’
김치 아삭함이 빠질 만큼 빠져 이제는 그 맛일까, 부푼 기대로 한 입 떠 간을 보았는데. 애걔, 이 맛은 엄마 맛이 아니었다. 그대로 엄마에게 전화 해 물었다.
“엄마. 김치찌개 끓이는데 왜 맛이 안 나지? 엄마 하는 것처럼 했는데.”
“찬장에 보면 다시다 있지? 다시다 조금 넣어 봐.”
나만 의외였던지, 아무렇지 않게 가루 이야기를 꺼내는 엄마였다.
통화를 끊고 믿거나 말거나의 심정으로 다시다 톡톡 털어 넣어 간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맛보았다. “그뤠! 이 맛이야!” 제 맛을 찾은 그제야 가스 불 꺼, 동생에게 엄마의 공백을 채워줄 수 있었다. 한 입, 또 한 입 떠 먹으며 나는 깨달았다. 깐깐하던 아빠 입맛 사로잡은 그것은, 지은이 엄마는 따라잡을 수 없던 그 맛은 다시다였구나. 엄마는 다시다와 함께 우리를 키웠다. 물론 요즘도.
“엄마 제육볶음 어떻게 해?”
“고추장, 고춧가루 양념해서 들들 볶다가 마지막에 다시다 조금 넣고 하면 되.”
어제 만든 제육볶음에, 나는 공공연하게 다시다를 넣었다. 툭툭, 무심한 듯 그러나 맛다워 질 때까지 털었다. 맛있어 져라, 를 외치는 마법의 (가루)주문과 같았는데. 이러한 나의 일련의 행위는 그를 덜 사랑해 첨가하는 조미료가 아니라, 맛있게 먹기를 바라는 사랑의 행위였다. 엄마도 그랬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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