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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Mar 08. 2021

#트리플 크라운_제2화 : 형수

실화에 기반한 소오설

선배는 그 해 졸업생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갓 입학한 YB라면, 선배는 OB였다. 노땅이라는 말이다. 열아홉이 스물다섯에게 할 말은 아닌 거 같지만, 여전히 십대에게 스물 중반이란 그런 거였다. 늙음ㅋ. 한편 멋져 보이기도 했다. 수능 막 마친 내가 다른 돋움을 앞둔 새싹 이라면, 선배는 성큼성큼 자란 미나리 같았달까. 확정된 취업 길로 돈 벌 일만 남은 선배가 괜스레 커 보였다.


압도당한 건지 모른다.

선배 그 “커다람”이 나를 감싸 줄 거라는 모종의 안도였는지도, 아빠 정이 그리웠던 나였는지도, 연애가 급했는지도. 콕 집어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감정과 함께 나는 선배 여자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선 “형수”가 되어 있었다. 기수를 중시하던 학교였다. 툭,  하고 묻는 말이 “몇 기야?” 였고, 그때 마다 해야 했던 말이 “63기입니다!”였다. 훈련도 63개씩 받았다. 우리는 이미지가 되어 “63기” 한 마디로 전부 통용되기도 했다. 공부 좀 하는 나약한 애들. 그리고 그 뭣 같던 기수빨 덕에, 나는 63기부터 60기 누구도 건들일 수 없는 “형수”가 되어 있었다. 졸업한 선배의 여자였다는 이유만으로.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 알도 못하는 누구까지 내 연애사를 꿰게 되었다. “너 남자친구 있다며? 졸업한 선배랑 어떻게? 대단하다.” 15% 중 “하나”를 잃었다는, 그들에겐 비보였는지 모른다. 이제 막 14.9%가 되었으니까.


*

공대 아름이에겐 썸 마를 날 참 없다. 비어 있는 틈으로 연락이 치고 들어온다. 한 단계 성장한 관계를 이성적, 혹은 우정적으로 유지하고 싶은 오빠들 메세지다. 아름이 몇은 이를 즐기기도 했다.


“야, 배고프지 않냐? 우리 재덕이 오빠한테 전화해서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할래?”

“그럴까?ㅋㅋㅋㅋ”


엄한 재덕은 곧잘 삥 뜯기곤 했다. 눈웃음이 매력인 덧니 나온 크롱 같던 동우 오빠는 말할 것도 없다. 강원도 출신 양반이었는데, 제일 선해 제일 많이 따랐던 동아리 오빠다. 이성의 호감 없이도, 오빠들 후배 사랑이라는 이유로 많이도 뜯겨 주었다.


유별히 잘 태어나 그런 것으로 보이지 않음에도 눈이 천장 뚫을 듯 높아지던 아름이를 향해, 못 마땅해 하는 남자 동기도 제법 많았다. 우리학교 여자애들 콧대만 세다 아이가, 뭐 잘난 줄 알고 저래쌌노, 쟤랑 사귀는 놈은 우리 기수 수치다. 암암리에 떠도는 말도 있었는데, 가슴 달고 여기서도 연애 못하면 진짜 문제 있다(에 속하던 나의 동기 “ㅇ정”은 혼전 임신을 통해 조속히 결혼을 마쳤다. 무려 7년도 더 전의 이야기다)라는 거였다.


온 잡음이 여학생 주변으로 벌어지던 시끄러운 학교, 남 일스레 이 년 반을 살았다.

꽃이 되기까지 “형수”로 살아 그렇다. 누구도 내게 찝쩍이거나, 연락하려거나, 괴롭히려 들지 않았다. 나는 나였고, 졸업한 선배한테 낚인 여학생 하나였고, 그렇게 스민이는 틈 없는 여자였다. 그리고 정확히 대학교 3학년, 여기 “꽃”이던 어느 봄이었다.


“요새 왜 니네 오빠랑 연락 안하는데? 데이트 안하나?”

“어. 헤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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