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은경 May 10. 2021

김부장을 위안 삼아

월부터 금 중 가장 꼭지에 솟아 있는 수요가 나는 제일 힘들다. 격하게 보내고 난 화요 다음 수요면 가끔 오늘(수요일) 금요일 아니었나 하는 착각을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배신감이라는 게 차오르는데, 고작 수요이기 때문이다. 심신이 지쳐있다.


절로 티 나는 음침함로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 곧이어 김부장이 자리에 온다. 내 바로 앞은 김부장 자리다. 잠을 잘못 잤나, 왜 이리 목이 결리는지 모르겠다며 늙어가는 몸에 고단해 하지만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 부장이다. “아마 직장생활 너무 오래해서 그럴 거 에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듣고 씹을 뿐이다. 그는 이 짓(직장 생활)을 나의 곱절이나 해 온 사람이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간을 직장에 쏟아 온 셈인 그인데, 요즘은 회사에 감사하다는 말까지 흘린다. 보통 멘탈이 아닌 그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인간계를 초월한 사람이야. 확실히 해탈한 사람이긴 했다. 앞으로 십 년만 더 일하고 그땐 정말 은퇴하겠다는, 자그마치 내가 버텨 온 세월 한 마디 만큼은 더 다니겠다는 그였다. 나의 꿀은 집에 있다면, 부장은 꿀을 회사에 둔 게 분명하다. 끈끈함 다 할 때 까진 철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겠단다. 그런 김부장을 보며 반성을 한다. 배부른 소리하고 있는 거 맞지, 나.


어쩌다 “뤼스풱(respect)!”해 마지않는 부장과 출장길 동행 할 일이 생겼다. 상사와 장거리 출장은 그야말로 곤욕이다. 졸 수 없고, 이동 중에도 쉴 수 없다. 여태 면허도 없는 나를 모시고 가는 부장한테 면목 없어서라도 절대 그럴 수 없다. 가는 중 여러 말이 오간다. 특히 부장이 잘 하는 은근한 말씨로 요즘은 경차도 잘 뽑혔더라, 유지비도 얼마 안 든다더라, 차 있으면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다, 그래서 차는 필요한 거다, 그런데 너는 차 언제 살 거냐라며 나를 떠본다. 운전하는 후배 덕보고 싶은 부장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라 나는 적당히 맞장구친다. 맞아요,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정말요? 생각보다 유지비 많이 안 드네요.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겠어요. 다음달부터. 그렇게 삼 년을 보냈다.



그렇다고 이게 나는 아니고


부장은 나를 사무실 과묵이로 알고 있다. 앞과 뒤로 앉아 있지만 우리 사이 대화란 없는 편이다. 살가운 사람이나 어쩐지 회사에선 어색하다. 마치 장녀가 엄마를 대하는 모습이랄까. 구구절절 옳은 말만 늘어놓아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쩐지 유쾌함이란 없는 이야기만 하고자 한다. 보다 일 잘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그런가. 엄마랑 있는 나는 그렇다. 똑똑하고 야무진 든든한 딸이고 싶은 마음. 그럼에도 출장길만은 제법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십 년도 더 된 그의 SUV 안에 오롯이 둘 있노라면 그렇게 된다. 갑옷으로 무장한 내 마음을 해제해 속을 터놓기도 한다. 부장이 싫거나 미워서 과묵했던 게 아니라 그저 말을 아끼려던 나였기 때문이다.


다음 달엔 진짜 고려해 보겠다는 말을 끝으로, 아메리카노 술 삼아 대화를 이어나갔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나는 속에 있던 쌀알 한 톨을 꺼내어 그에게 보였다.


“부장님은 회사 다니는 거 재밌으세요?”


질문은 나를 대변하는 것과 같아 저는 왜 이렇게 재미없는지 모르겠어요, 라며 고백하는 꼴이었다. 아마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라는 일종의 확신이었나. 그리고 정말 공감이라는 게 작용했던지 그는 옛날 옛적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그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 친 일이 있다고 했다. 회의감이 물밀듯 쏟아져 그랬다고도 했다. 부장에겐 딸린 처자식이 있었다. 심지어 외벌이었고 그럼에도 이건 아니다 싶어, 건강한 몸뚱어리와 어딜 가던 여기보다야 낫겠다는 믿음으로 사직서를 냈다고 했다. 그 길로 고향인 강원도로 떴다고 했다.


김부장은 옷 장사를 했다고 했다. 새벽마다 동대문 들러 옷 떼어 나르고, 디스플레이하기를 반복했다고도 했다. 그렇다고 부장이 옷을 잘 입는 사람은 아니다. 평범한 아저씨, 사모가 골라준 옷 입고 다니는 아저씨, 패션에 큰 관심 없는 아저씨다. 또 그렇다고 사모가 탁월한 감각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다. 부장을 보며 “와! 옷 잘 입으시네요!”라는 입 발린 말은 해보지 못했다. 그런 둘이 차린 옷 가게라하니 상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부장은 열심히 살았을 테다. 열심히 만으로 되지 않는 게 사업인 줄은 몰랐을 테다. 버틸 만큼 버티다 폐업 신고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고 한 일이 새벽 신문배달, 우유배달이었다고 했다. 그는 부장이기 전에 가장이었다. 전부 지난 일이었다.


부장 스토리를 듣고 있자니, 직장 때려 치고 세탁소 운영으로 먹고 살았다는 상무의 역사가 퍽 떠올랐다. 만고불변하고 나와 비슷한 나이, 비슷한 시기, 비슷한 고민을 했던 건가. 상무도 사직한 이력이 있는 경력자였다. 진한 스토리는 듣지 못했지만, 왜 하필 세탁소였는지는 모르지만, 부장과 상무 공통이라면 옷 깨나 만져본 둘이라는 것. 두 양반 각각 비슷한 이유로 때려 쳐 봤다는 것, 결국 회귀했다는 것. 그리하여 옷 가게 아저씨나 세탁소 아저씨가 아닌, 나의 부장과 상무로 불리 운다는 것이었다. 사실 퇴사 선배였다.


적지 않게 방황하는 나라는 걸 아는 부장은 망한 스토리 말미에 넌지시 한 마디 보태어 건네었다.


“나가보니 그래도 여기만한 곳이 없더라.”


이 짓을 이십 년도 더 한 김부장을 보며 나는 나를 위로해 본다. 그래, 나는 고작 십 년이잖아. 엄밀히 말하자면 십 년은 아직 안 된 거잖아. 언제든 나가겠다는 자유분방함이 내겐 있지만 부장은 그러기 힘들잖아. 아버지라 새겨진 그 이름이 그를 나와 같이 않게 만드는 거잖아.


더는 말 하지 않았다. “그래도…”가 연이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다시 과묵이가 되어 차창 밖에 펼쳐진 커다란 산을 응시했다. 시선을 멀리 둠으로써 가능한 보이지 않는 것조차 보고자 하였다. 답답하여 창문을 살짝 내렸다. 시원한 바람이라도 쐬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몸은 동해로 출장 가는 여기 실려 있지만 마음은 저 멀리 있었다. 이마저 할 수 없는 부장은 운전대를 쥔 두 손으로 눈은 앞을 보고 있었다. 한참을 즐기는 듯 보인 나였는지, 부장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날씨 참 좋지 않냐? 종종 바람 쐬러 다녀. 연차도 쓰고. 한 번씩 쉬어야 안 되겠냐.”

“그러게요. 그래야겠어요. 바이러스가 뭔지.”


나의 도처엔 위로가 필요한 덩어리들이 넘실대고 있었다. 수요를 버티게 하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아직은 상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