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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May 14. 2021

오늘만큼은

금욜잉게

오늘만큼은 가벼운 마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을 내려 자리에 앉았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홀짝이며 적당히 후려치다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금요일이었다.


오늘만 기다린 게 나 뿐은 아닌 거 같았다. 금요 사무실엔 어수선한 들뜸이 있다. 캐주얼 차림의 청바지, 스니커즈, 간단히 차려 입은 셔츠가 그들을 보는 나를 경쾌하게 한다. 특히 봄이면 볼 수 있는 밝은 색상의 연두색 셔츠가 마음에 푸르름을 선물한다. 복장엔 태도가 따르는 법이겠다. 울적이 고대리가 유난히 수다스럽다. 퇴근 후 동기 모임이 있는데 오늘은 실컷 취할 것이라며 묻지도 않은 불금에 대해 지저귄다. 그의 간이 양껏 달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처녀 히스테리는 꼭 서과장에게 하는 말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의 서과장은 퍽 다르다. 말씨엔 따뜻함이, 말끝엔 미소가, 행동엔 여유가 넘친다. 유치원생 훈계하듯 후배 대하던 그녀가 오늘만큼은 동료 대접을 한다. 그럼 나는 고쳐 생각한다. 저 언니가 저런 사람이었나. 새벽 배우자기도로 종일 피곤해 짜증만 내던 저 여자가 그 서과장 맞나. 더도 말고 지금 같았으면 하고 바란다. 그럴 때면 나는 천진난만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매일 금요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이내 성숙한 나로 돌아온다.


‘아니지. 매일이 금요일이면 금요일이 금요일 같이 느껴지지 않겠지. 월부터 목이 있어 금이 금다운 거겠지. 금일 수 있는 거라지. 그나저나 금요일은 사랑이야.’


흠뻑 금요를 쬐고 있는데 앞자리 김부장이 말을 걸어 왔다. 금요일이라 좋냐고. 그리고 하는 말이 당신 젊을 적엔 토요일 출근도 불사 했다고 했다.


김부장 피셜에 의하면 주 5일 대신 주 6일 근무하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자그마치 월요부터 금요까지 꼬박 일하고 다음날인 토요마저 일해야 했는데, 다만 오전 근무가 다였다고도 했다. 사실 토요일은 출근 해 노는 날이었다고 한다. 말이 오전 “근무”이지 일이 되었겠냐며, 금요일 마셨던 숙취로 토요일 오전을 보내다 점심으로 짜장면 먹고 당구 치는 게 그 날의 일과였다고 했다. 그래도 그때는 재미있었다고도 했다. 지금처럼 핸드폰에 코 박아 살던 시절이 아니라,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어울리며 보내던 시간이라 즐거웠다고 했다. 라떼(나때)를 생각하며 아련해지는 김부장을 보며 나는 주 6일의 손은경 직원을 떠올렸다. 몸서리 쳐졌다.


심지어 요즘 같은 때라면 주 4일 근무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주 5일도 투머치다. 월화수만 근무하는 주 3일제도 나쁘지 않다. 재택근무로 느낀 바가 그렇다. 오히려 높은 생산성을 가져다주었다. 3일 출근으로 업무에 가담하는 농도가 높아지는 대신 딴 짓 하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다. 그보다 회사 가기가 싫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가야지, 가서 일 처리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어 분주해진 마음만큼 걸음을 재촉했다. 사장이 염려하지 않아도 나의 책임감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종속된 시간만큼은 사익이 되고자 하는 우리였다.


아직은 주 5일에 사는 나라, 금요 달뜬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이미 필요한 소규모의 일만 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이기도 했다. 집중도 어렵거니와 방방 뜨는 엉덩이에 침착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우리를 오늘만큼은 사장도 이해해 주는 것 같다. 한 주 마무리 지었거들랑 일찍 들어가자는 그의 복음에서 느낄 수 있다.


이내 “퇴근!!!”이라는 메시지 하나를 남기고 윈도우를 종료했다. 그리고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한 마디와 함께 회사 밖으로 나왔다. 신명나는 이 기분을 감출 길 없어 최근 통화목록에 위치한 동생 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뭐하냐?ㅋㅋ 나 퇴근.”


피식대는 내가 참 등신 같다고 느끼는 것은

마주할 일요일 밤, 격렬한 저항과

다시 온 월요일 아침, 역함으로 터덜터덜 끌려 갈 것을 알면서

오늘 금요일이라는 이유만으로 반복해 출근 할 것이라는 것.


등신 같지만 금요일이니까 오늘만큼은 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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