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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Oct 01. 2021

입국(까꿍)

QR858 from IST to ICN, 17:00



10시간의 비행동안 이코노미 석에 나를 우겨 넣어 두었을 뿐, 나는 한국에 도착해 있었다.







정확히 76일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왔다. 젠장. 돌아 온 인천공항은 출국 날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싸늘하고 적막하다. 다만 출국 땐 들뜬 마음을 온 몸으로 감출 수 없었는데, 오늘은 축 가라앉았다. 검역을 지나 입국심사나 빨리 마치길 바라고 있다.






머리는 ‘복귀’로 그득하다. 복구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우선 직장에 복귀해야 할 것이다. 회사의 배려로 터키 가족과 조우할 수 있었다. 아기자기 이벤트처럼 진행 된 결혼식이었으나 어쨌거나 이웃들로부터 축하도 받았고, 남는 시간 신혼여행 삼아 터키 이곳저곳 둘러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남편은 앙카라에서 경력 하나를 쌓기도 했고, 나는 책 한 권을 쓰기도 했다. 한국을 비운 사이 벌지 못한 월급과 순수 지출(나 없이도 빠져나가는 은행이자·공과금, 여행경비 따위)만 합쳐도 돈 천 만원은 거뜬히 되겠지만, 그보다 몇 배나 얻어 왔다는 건 진심이다. 돈으로 매길 수 없이 가치로운 날들이었다. 그랬던 날을 지나 다시 일하러 간다.ㅠㅠ







한 편 한국에 도착한 날, 결국 경미는 퇴사한다고 했다. 경미는 나의 숨통과 같은 회사친구다. 때문에 고민이 오래된 것쯤은 진작 알고 있었다. 일 년 반은 더 된 고민이었는데, 어제 마침내 사표를 냈단다. 그러니까 나는 복귀를 하고 경미는 퇴사를 한다는 말이었다. 아쉬움보다 부러움을 더 크게 느끼고 있는데.






“언니!”






멀리서 까맣고 삐쩍 마른 여자 하나가 나를 부른다. 나랑 정반대로 생긴 동생 영이다. 그제야 검역관은 우리를 공항 밖으로 내보내어 준다. 픽업할 드라이버가 오기 전 까지는 나가지 말라고 했었다. 마침 영이 오고 통과 되었다. 동생 영은 그새 더 말라 있었다. 임상병리사인 영은 델타변이 때문에 요즘 PCR 테스트 하느라 쉴 틈 없다더니, 그래서인가 싶었다. 안마시던 맥주를 밤마다 홀짝이는 건 노고를 풀 나름의 방법인 것 같았다. 고생이 많다.









하늘은 어둡고 비는 쏟아지고 있다. 매일 터키에서 보던 하늘과는 생판 다르다. 온통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그러다 한국에 왔음을 처절하게 깨닫는다. 여기는 한국의 8월이구나. 그러려니, 하다가도 창창한 터키 날씨가 급히 그리워진다. ‘터키는 이렇지 않은데.’ 한국의 편리함 떠오를 때면 하던 말(한국은 이렇지 않은데)을 오늘도 하고 있다. 비교가 난무하는 건 별로 좋은 태도는 아닌 거 같다.





격리에 들어간다. 2주를 더 버티다 출근을 한다. 격리가 좋다. 복귀 전 마지막 휴식이다. 그리하여 도착 첫 날 우리가 한 일은 소맥을 마신 거다. 오기 전부터 냉장고 채우기에 분주하던 엄마와 동생이었다. 필요한 것을 묻고, 사놓아 줬다. 덕분에 차갑고 싱싱한 맥주와 소주를 만날 수 있었다. 비록 두 달은 마시지 못하였으나 눈대중은 그 비율을 기억한다. 자박자박 소주를 바닥에 깔고 꼬르르륵 그 위에 맥주를 따른다. 구태여 섞지는 않는다. 식도를 지나 알아서 섞일 테니까. 김치 안주삼아 목구멍 따갑도록 들이킨다. 그리고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소맥을 마셨다.





도통 해를 볼 수 없어, 설사 격리가 없다한 들 일주일 내도록 비 오는 중이라 시차적응은 더욱 더디기만 하다. 아직도 터키시간 아침 9시(한국시간 오후 3시)에 눈이 떠진다. 터키시간 아침 10시에 해당하는 한국시간 오후 4시에 아침을 먹고, 어영부영하다보면 남들 퇴근하는 시간이 되어있다. 생체리듬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지 기묘하기만 하다. 몸은 정확히 터키를 기억한다. 터키에 맞춰있고, 터키처럼 흘러간다. 다시 비건으로 돌아가기 전, 김치에 라면 한 번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던 나의 그 바람은 이루어졌지만 속이 얼마나 아렸는지 모른다. 간만에 들어 온 매운 음식에 위가 못 버틴 듯하다. 복구가 필요한 건 몸도 마찬가지다.




터키와 나의 어린 시누




복구해야 할 것은 마음에도 있다. 일부 두고 온 내 마음을 서울에 돌려야 한다. 내게 배인 터키 내음은 여전히 빠지지 않는다. 문득 에르바와 놀이하던 때가 생각나 핸드폰 사진첩을 뒤적인다. 그러다보면 줄줄이 사탕처럼 그리워진다. 우리에게 내어준 안탈리아 분홍색 방이 그립고, 널자마자 마르던 보송보송 따뜻한 그곳의 날씨가 떠오르고, 해수욕하던 날이 생각나고, 거기서 먹던 수박이 먹고 싶고,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의 이스탄불과 우리가 만난 친척, 이웃, 모두를 다시 보고 싶다. 그립다거나, 보고 싶다거나, 생각난다거나, 떠오른다는 말을 한동안 가장 많이 할 것 같다. 그곳에 놓고 온 마음을 언제나 되돌릴 수 있을지, 혹은 가능한 일일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복구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면 이런 생각을 한다.





‘나 터키에 살 수 있을까.’





나는 알 수 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한국음식의 근원은 마늘이었다는 것을. 마늘의 공백으로 허기졌다는 것을. 그리고 양껏 마늘이 들어간 음식을 터키에서 만들어 먹는다면 그때보다는 한국음식이 덜 그리울 것이라는 것을. 아마 잘 지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엉뚱하지만 실현 가능한 이야기를 꺼내어 본다. 나는 터키에 살 수 있을까. 가끔은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때로는 남편에게 묻는다.





그나저나 오늘부터는 한국시간에 맞춰 잠에 들고 일어나기를 훈련해야 한다. 마침내 사직하는 경미와 달리 결국 나는 한국에 왔기 때문이다. 출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게 가장 별로다.



(초고 중 발췌)





꿍까꿍까

꿍까라꿍까

푸합ㅋㅋ

작가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은 여전하고,

서울도 그렇지만,

나는 살은 빠지고 글이 늘었습니다.


보고싶었습니다.

징글징글한 브런치말고 작가님들 말입니다ㅋㅋ


Long time no See!

잘 지내셨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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