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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ug 31. 2020

잘 지내니


사귀던 친구가 있었다.

친구에서 시작해 연인이 되었으니, 사귀던 친구가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 받아 본 짝사랑 중 가장 오랜기간 나를 좋아해준 사람이었다.

중간에 연애 한 번 하긴 했지만, 그때를 포함해 8년은 좋아해왔다는 게 그 친구 피셜이었다.


"너와의 연애는 상상이 안간다. 미안."


열릴 것 같지 않던 마음이었다. 8년을 그래왔으니, 너를 향한 내 마음은 요지부동이겠구나.

그런 줄로 알았는데. 어쩌다 연애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그랬다.

한참을 성공에 목말라하던 나.

성장보다 성공에 눈이 멀어 앞서간 선배들의 책을 닥치는 데로 읽었고, 주말엔 강의 수강으로, 치열하게 살던 때였다.


"내가 꼭 우리엄마 노후걱정 없게 해줄거야."


그런 내가 차가워 보였던 모양이다.

따뜻한 것과는 대치 되던 성공, 돈, 멋진여자 따위에 온 시선 향해 있는 걸 보니, 그리고 그런 내가 염려스러웠나 보다. 어느 날 자기가 고른 책을 선물해 주겠다 했다. 들고 온 책이 이 책이다.


고맙다는 말로 받아 들고 차분히 읽어 나가기엔 동화책이 너무 짧았다. 딱히 마음이 따뜻해진 것도 아니었고.

몇 장 슥슥 넘기다 보니 이미 한 권을 독파했고, 그렇게 책 장에 꽂아 두었다. 그리고 잊었다.


며칠 전. 우연히 책 꽂이로 시선이 향했다. 세로로 줄지어 서 있는 책 사이로 한 권의 책제목 아무이유도 없이 눈에 들어왔다.


"잘 지내니"


이제는 헤어진지 제법 된 친구.

8년이라는 세월을 친구로, 나머지 2년을 연인으로, 지금은 전 남자친구로 활동 중인 그가 건네는 말 같아 어딘가 머쓱해졌다.

그리고 나를 소름 돋게 한 책표지 구절, "네가 내 생각을 안해서 나는 못 지내."

노리고 선물한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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