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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Sep 09. 2020

남보의 첫째 엄마가 돌아가셨다.


남보는 나보다 대충 서너년 오래 산 남자다. 고로 보통은 남보, 때로는 오빠라고도 불리는 사람이다.

대학교 동문 선배와 후배로 그를 알게 되었다. 이후 스무살부터 십년 정도를 투닥이며 지내온 사인데, 십년이라는 세월이 그렇다. 남보 첫 여친에게 어떻게 까였는지, 예쁜 여자만 밝혀놓고 정작 사귄다는 언니 사진에 얼마나 우릴 실망시켰는지, 무엇을 했고 얼마를 벌었으며 어쩌다 결혼에 이르게 되었는지 모두. 인생 3.5인분의 1이 내 손바닥 안에 있다. 그것도 모르고 남보는 만나는 언제든 나를 만만한 꼬마로 취급했다. 동심으로 돌아간냥, 고무줄 놀이하는 내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끊어 놔야 직성에 풀리는듯 놀렸고, 그만하라고 했고, 아무 말이나 뱉었고, 성질이 나 개무시 하는 반복이었다.


투닥거리면서도 십년 이상을 지내 온 데도 이유는 있다. 지랄맞은 사이기도 하면서 각별한 선배기도 하니까. 이를 두고 지랄맞은 선배라고 하는 건가. 그래도 오빠랍시고 동생 걱정으로, 갖은 조언으로 빕스 데려가 주는 선배가 또 남보다. 그래. 남보가 나쁜 사람은 아니지. 우걱우걱.



서울과 거제, KTX로도 오가기 힘든 거리에서 각자도생하며 지낸지 수년째다. 어쩌다 두 달에 한 번 "뭐하냐"는 톡 하나로 모든 물음이 해소되는 사이. 그런 남보가 요즘따라 퍽이나 이상하다. 떠올릴때 마다 수면 위로 떠오른다. 궁금한 것도 아닌 물음, '잘 지내나?' 하는 말 마음 속 맴돌고 있으면 꼭 "뭐하냐"는 메세지 날라온다. 미친놈이다. 동기에게 남보 제3자로 돌려 취업 후일담 전할 때도 마찬가지다. 곧 전화가 오고, 발신자는 남보다.


어제 쓰는 일 중 남보 이야기가 아주 잠시 보태졌다.

국어선생 소개팅은 절대 마다 한다는, 그런데 윤현이가 국어교사랑 결혼했다며 파하하하 거리던 그가 사적으로 알려 준 말 인용했던 게 화근이었다. 깔끔하게 "발행" 버튼을 누르고. 이번에도 5분 채 지나지 않아 남보에게 연락이 왔다. 소름 돋았다. 드라마 도깨비 처럼 김고은 초를 켜 주문 외면 등장하던, 지가 공유도 아니고 내가 김고은도 아닌게, 어째 이 인간은 떠올릴때 마다 떠오르는 건지. 이 오빠 좀 신기(神技) 있나 보다 싶었는데, 헙. 어떡해.


<부고>

故남보어머니

유가족

아들 남보

며느리 남보부인

딸 남보 누나

사위 남보 누나 남편

9월 10일 발인


전에 들었던 남보 가정사가 떠올랐다.


"나 엄마가 둘이야."


어안이 벙벙해 두 눈만 깜빡이던 내게, "부모님 이혼하고 아빠가 재혼 했어. 친 엄마랑 새 엄마 둘이야." 라며 덤덤히 말을 붙여나간 남보. 문자를 보자 그 말이 맴돌았고, 나는 추측했다. 두분 중 어느 분일까. 어느 분 영면이 남보를 더욱 사무치게 했을까. 힌트는 가까이 있었다. 유가족 명단. 아버지가 없었고, 이혼과는 별개로 여전히 자식으로 남아있는 아들 남보와 딸 남보누나 뿐인 어딘가 헛헛한 가족 명단. 돌아가신 분은, 남보를 낳아준 친 어머니였다.


후회가 밀려왔다.

글 속에 남보를 싣지 않았다면, 이런 슬픔은 전달받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중학교 1학년, 엄마 대신 아빠를 잃은 나는 그래도 다행이구나 생각했다. 아빠의 부재 물론 어린 나의 슬픔이지만, 엄마 빈자리는 무엇으로도 메 꿀 수 없음을 알았으니까. 우리엄마 없인 못산다던 어린 딸은, 그렇게 생각했다.


열 넷의 나보다 더 큰 아픔이 남보에게 닥쳤다.

어떤 위로의 글로도 그를 달래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이번엔 글 대신 얼굴 맞대 그를 위로해 주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걸 알기에.


어제 오후

남보를 떠올린 게 후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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