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4일차다. 그렇다고 지구 반대편 모 호텔에서 맞이하는 눈부신 아침도 아닌, 오늘도 서울 집에서 맞는 하이선과 함께한 아침이다. 태풍이며 바이러스가 발을 묶었다.
8시 30분쯤 자연스레 눈을 떴다. 휴가와 비휴가 달라진 것이라곤 꼴랑 50분 더 자는 늦잠뿐이다. 다른 날 같은 일과가 시작된다. 잠에서 깬 나로 돌아와 하는 몇 가지 습관적인 일을 했다. 첫째는 화장실에 가 몸을 비우는 것, 둘째는 핸드폰 사이 노랑과 초록 세상에 접속하는 것. 평소라면 이랬다. 반쯤 감긴 눈으로 카카오 접속해 지난 밤 내게 와있던 메세지 몇 개를 확인한다. 읽지 않은 메세지의 수는 보통 50개쯤에 달하는데, '언제 읽나'하는 부담 없이 한 번의 클릭으로 넘어가는 내용이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단톡방에 속한, 불특정다수 중 하나인 나에게 보내는 메세지에 시간 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번의 클릭으로 약 40의 숫자가 처리되고, 10이 남았다. 가족 톡방이다. 그래도 여기 수다는 읽는 편이다. 아무래도 소속감이 강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N포탈로 넘어간다. 최근 이슈에 해당하는 몇을 골라 탐독 한다. 덕분에 세상과 고립된 기분은 덜 수있다. 그러고 나면 약 20분 정도가 흘러있다.
요즘이라면 이렇다. 카카오브런치를 하면서는 순서가 조금 달라졌다.
눈을 뜨고나면 침대 오른쪽 손 뻗는 곳에 위치한 핸드폰부터 찾는다. 볼 일보다 급한 일이 카카오브런치 확인이다. 어플리케이션까지 깔아 버리면 너무너무 몹시 자주 접속할 거 같아 이 짓만은 피하려 했는데, 에라 모르겠다. 알람 off하는 걸로 타협하고 다운 받아 버렸다. 이젠 누워서 지난 밤 독자 반응을 살핀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실망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브런치를 접속한다. 떠들썩한 마음과 달리 그 곳은 고요하다.
화장실에 들렀고, 네이버 뉴스까지 확인했다. 미련이 없이 할 일은 다했다. 이제야 아침 식사를 시작한다.
30분도 안되어 졸음이 쏟아졌다. 여느 월요일이라면 뺨을 세차게 후려쳐서라도 이겨내야 하는 잠이지만, 대신 웃음이 세어나왔다. 9월의 어느 월요일, 나는 휴가자니까. 정리해둔 이불 다시 열어 그 안으로 쏙 들어갔다. 비는 거세고, 바람은 차지만, 이불이 있어 두렵지 않다. 양껏 쉬는 것 또한 겁나지 않는다. 휴가자에게 잘 쉬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침대 위 나는 다시 밤을 맞았다. 만 1시간 30분만에 맞는 밝은 밤이었지만 편한 잠에 들 수 있었다.
2시간 30분쯤 흘러 새로운 아침이다.
다시 잠이 깬 나로 돌아왔다. 역시나 습관적으로 하는 일을 반복했다. 오른 손 뻗어 핸드폰을 쥔 후 카카오브런치부터 접속했다.
그 사이 "좋아요"하나가 늘었다. 오예쓰! 이전에도 말했지만 "좋아요"는 참 이상하고도 매력적인 기능이라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다. 봄X님의 마음을 산 글 얼마나 괜찮은지 나도 다시 맛보기 위해 정독을 시작한다. 열 번은 더 읽었지만, 잘 쓴 거 같기도, 못 쓴 거 같기도, 애써봐야 현재의 글발로 더는 나아질 수 없을 거 같기도, 아리송한 글을 음미하고. 메인화면을 눌렀다.
묘하다.
묘-하게 달라졌다. 알아챌 수 없어 묘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지만, 오묘하게 달라졌음을 느꼈다. 하루에도 열 번 이상 접속하며 그동안 느끼지 못한 쎄함이 오늘은 있었다. 손바닥 하나쯤 해당하는 화면을 훑고 훑었다. 무엇이 나를 쎄하게 만들었는지 찾기 위해서였다. 두어번 살폈을까. 숫자 16이 눈에 들어왔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구독자 열 일곱(17)분이 생겼다.
유의미한 숫자였다. 쟈스민이라는 작가 쓰기활동을 지켜보고 싶은 작가님 열하고도 일곱이나 생겼다는 거니까. 열일곱에서 열여덟로 넘어 가기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배우고 있는 요즘의 나에게, 열일곱은 그런 숫자였다. 오늘은 열여섯이 되었지만.
열일곱 중 하나가 줄어 열여섯이 되었다.
17의 1, 무시 못할 숫자다. 만약 1,700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면 100명의 쌤들 내 글을 더는 읽고 싶지 않다는 거고, 170,000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면 10,000명의 쌤들이 언팔로우 했다는 거겠으니까.
"그럴수 있지 뭐."
말은 쿨하게 해놓고 크고 작은 생각들이 오고갔다. 이럴때마다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나를 돌아보는 것 뿐이다. 쓰는 일로 만난 사이니 썼던 일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가장 최근, 어제 올린 글부터 회사를 떠나 있다는 이유로 잠시 휴가 중인 <직장생활>관련 글 때문일까. 글에 가벼움만 더했던 탓일까. 쓰고 싶은 것만 썼던 이기주의였을까. 숫자 16이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약간의 타격과 약간의 소란스러움으로 1시간쯤 지나고.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큰 능력이 발휘되고 있다. 잊어가고, 털어간다. 숫자 16으로 은근하게, 정말 은은하게 속상해 하던 나에게 "괜찮아. 내가 너의 1,000 구독자니, 너는 1,016의 독자가 있는 거야."라는 그의 한 마디가 또 회복을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