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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Feb 09. 2022

김부장(54)에게도 아버지의 죽음은 쉽지 않다

“아버지가 왜?”




일어나기 힘들만큼 궁둥이가 무거워 지면 사적인 전화도 사무실에서 받는다는 국룰이 있다. 나이 50 이상인 아저씨들에게 보이는 특징. 그리고 그날은 올해 54살인 부장이 전화를 받으며 사무실 밖을 나가던 날이었다. 벌써 한 달 전 일이다. 




김부장 아버지 상황이 영 좋지 않다. 검진결과 폐 쪽에 문제가 발견 돼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고 들었는데 이젠 숨 고르기도 쉽지 않으시단다. 상태는 악화 되어만 간다. 올해 여든 여덟이라는 나이 때문인지 쾌차를 기대하긴 어려운 모양이다. 퇴근 후 한 잔 마시길 좋아하는 부장이 어젠 술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다. 다음에 보자며, 아버지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라고 전화를 끊었다. 파티션 너머 보이는 부장 안색이 불그락검으락 하다. 




지난 한 달이 그에겐 곤욕이었을 것이다. 정돈하지 않은 덥수룩한 머리, 입가엔 자라다 만 수염이 스무 가닥쯤 어설프게 꽂혀있는 걸 보며 느낀다. 누가 봐도 짠한데, 그러거나 말거나 부장은 별 내색 없이 출근을 한다. 수시로 전화통화를 한다. 끊고 나면 한숨을 내쉰다.




“하아.”




한숨엔 떨림이 있다. 내가 울먹일 때 내뱉던 한숨과 비슷한 것. 부장은 전화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한다. 가끔은 자리에 앉아 통화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부장과 부장 동생의 통화를 엿들을 수 있다. 부장의 약한 청력 때문이다. 우리 귀에도 들리는 볼륨으로 동생과 이야기한다.




“어쩌겠냐. 하는데 까지 해야지.”

“(돈이 없으니까 그렇지 형).”

“어제 그 얘기했던 거 다시 상의해 보자.”

“(알겠어).”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되면….”




말을 잇다 말고 핸드폰을 들고 자리를 뜬다. 그래야만 했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실은 ‘어제 그것, 얘기했던 것, 만약 그렇게 되면’이라는 지시명사를 사용해 주변 우리가 못 알아듣기를 바랐겠지만 대충 알 수 있다. 어제 병원비, 엄마에게도 부탁해 보자던 얘기, 혹시나 아버지 돌아가시면. 들리지 않는 척 했지만 너무도 선명하게 들렸다.




부장은 삼형제라고 했다. 위로 형 아래로 동생, 부장은 둘째라 했던 걸로 기억한다. 또 농사짓는 부모님 밑에 태어나, 나고 자라기를 강원도 강릉에서였다고 들은 것 같다. 그게 내가 아는 부장 가정사 전부고, 나머지 형제 둘에 대한 정보 더는 없지만 다들 고만고만하게 산다는 것과 부장에게 아들 둘이 있는 건 안다. 올 3월, 그 둘은 각각 대학과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틈은 이토록 절망적이라, 돈 들어갈 타이밍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등록금에 새 학년 준비에 아버지 병원비가 가세한다. 부장은 아버지의 완쾌를 바라지만 돈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눈치다. 혹 아버지가 자식 몰래 들어둔 보험은 없는지, 정부지원은 없는지, 솟아날 구멍은 없는지 알아본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건다. 아버지 상태는 어떤지, 좀 드시긴 하시는지 어떠신지. 그 사이 김부장 머리에 흰 머리카락 하나가 늘었다. 오직 아버지 건강만 염려할 수 없는 형편이 그를 늙게 한다.




다시 여행을 시작할 그(아버지)지만, 아직은 여기 머물러 현재를 살아야 하는 자(부장)에게 돈은 현실이 된다. 울려대는 가슴팍 진동은 무시한 채 부장이 오늘도 출근한 건 그 때문일 테다. 가족과 아버지를 위해, 벌어야 할 테니까.




우리 사이엔 침묵이 흐른다.

그것이 우리가 줄 수 있는 눈치라 생각할 뿐. 조용히, 다만 마음으로 함께 걱정한다.

오늘도 사무실은 고요하고 우리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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