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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pr 27. 2022

시급과는 먼 우리의 창작

최근 기사 의뢰를 받았고, 그것은 나의 첫. 처음이라 유의미한 일이기도 했다. 주제는 편집 담당자님이 정해주신 거였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피크닉이라는 주제로 자유롭게 써 주시겠어요?” 봄맞이 특집인 듯 했다. 거를 것이 없던 나는 물론이라며 그의 제안을 냉큼 받아들였다.






고로 그 주말엔 자의반 고료반, 반반짜리 의욕으로 한강에 갔다. 벚꽃이 만개한 날이었다. 기상청 예보만큼은 믿을 게 못되지만 개화시기 만큼은 믿을 만한 게 된다. 한강에 가니 입을 활짝 벌려 제 몸집을 가능한 거대하게 펼쳐 보인 벚꽃이 2m 거리마다 놓여 있었다. 이번 한 주 블루밍의 절정이라던 소식에 맞춰 서울엔 다양한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데이트 하러 온 커플과 봄날을 만끽하러 온 가족단위의 사람들과 홀로 온 어르신과 그리고 취재하러 온 나와 우리 일행이 한데 뒤섞여 벚꽃에 취했다. 가히 봄다워 아름다운 날이었다.





자의반이었다지만 나의 몸과 마음은 온통 ‘기사’에 가 있었다. 한강에 도착한 첫 걸음부터 사진을 찍어댔다. 찰나가 모여 최고를 발견할지 모른다며 셀카 100장을 찍던 나의 모습은 여기에도 있었다. 한 걸음 멈춰서 찰칵, 두 걸음 더 못가 찰칵, 찰칵, 찰칵,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나와의 채팅창에 메모를 하기도 했다. ‘코로나가 휩쓸고 간 봄, 3년 만에 만난 우리의 봄. 봄을 기다리던 우리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따위. 기사에 쓰일 덩어리들을 언어의 형태로 가볍게 스케치했다.





늦은 밤 들어와, 일요일인 다음 날 새벽같이 눈을 떴다. 어제 보고 느낀 것이 이내 증발해 버릴까 약간의 겁이 났던 모양이다. 곧 발화해 버릴지 모를 문장을 한글파일에 가둬두기 위해 반쯤 뜬 눈으로 작업실에 앉았다. 간신히 오줌만 누도록 허락한 상태였다. 첫 문장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첫 문장은 곧 독자에게 비취는 내 글의 ‘첫 인상’이라는 강의를 한 날이 있다. ‘어디 얼마나 잘 썼나 보자’ 하는 얼음 같은 마음으로 글을 읽어나갈 독자를 단숨에 녹일 장작불 같은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첫 문장일터다. 긴장감은 아마 이때부터였던 듯하다. 잘 쓰고 싶다는 욕심에 뒷목이 뻐근해 지더니 어깨가 딱딱하게 굳었다. 첫 문장에만 30분 이상을 쓴 듯하다.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는 사이 남편이 깼고 30분이나 흘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3시간을 꼼짝 없이 앉아있었다. 닳아버린 에너지에 살짝 허기지는 게 느껴졌고 그제야 아침을 먹으며 잠시 쉴 수 있었다. 당류가 온 몸을 빠르게 회복시킨 덕에 곧 충전되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 글을 써나갔다. 그렇게 추가 3시간, 도합 6시간 정도를 할애했다. 마침내 한 장짜리 기사를 완성했다. 처음 분량은 두 장쯤이었다. 아주 마음에 들지 않던 것도 아닌데, 읽고읽고 또 읽으며 사족 같던 문장을 하나씩 쳐냈다. 살려도 그만 안 살려도 그만인 듯해 그렇다면 삭제해야 한다는 작가 제1지침을 지켜낸 것이다. 그렇게 한 장이 남았고, 마치 섬유 유연제 다우니처럼 나의 시간이 고농축으로 압축 된 결과물이었다.





이 한 장이면, 단 한 장만으로 구독자 마음에 봄을 물들여버릴 것이라는 자부심이 함께했다. 여기 투영한 몸과 마음의 시간 덕이었다. 한강에 방문하기까지 그곳에 머물기까지 그리고 돌아와 쓰기까지 장작 12시간은 족히 소요되었다. 어깨에 잔뜩 힘을 준 채 쓴 글이기도 해 편집자님께 원고를 보낼 즈음엔 승모가 단단하게 굳어있기도 했다. 원고를 첨부해 ‘송고’ 버튼을 누르자 마자는 곧장 침대로 가 대자로 뻗어 누워야했고. 여러모로 최선이었으므로 더는 후회할 수 없겠다 싶을 때까지 내 최고로 써냈다.





다음 날, 편집자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조금 길었으면 더 좋았을 거 같기도 하네요. 그러나 너무너무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해요. 그의 말처럼 분량을 좀 더 늘려 보낼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되돌리기엔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 다음 원고는 한 장 이상을 쓰리, 하는 다짐만 남긴 찰나, 그의 답장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료가 들어왔다. 책 팔아 받은 인세 외 원고 의뢰로서 받은 첫 고료, 삼만 원이었다. 작은 것일까 큰 것일까. 숫자 3과 0 네 개를 바라보며 손가락 노동의 가치를 따져보았다. 아무래도 0 두 개가 덜 찍힌 것 같은데, 아무렴 무료 기고하던 날들에 비하면 만 원짜리 세 장은 쾌거다.





2022년 4월 12일, 내 몸과 마음과 문장이 쓰인 12시간을 A4 한 장에 담아내며 고료 삼만 원을 받았다. 세상이 정한 삼만 원의 교환가치는 치킨 한 마리에 맥주 두 잔일지언정, 내게는 누군가의 월급 한 달치가 스며있다. 작아도 결코 작지 않고, 고로 시시하지도 않은 나의 첫 고료. 삼 만원을 12시간으로 나눈다면 1시간에 이천 오백 원이고, 2006년 기준시급인 삼천백 원에도 못 미치지만, 숫자놀음만으로 따질 수 없이 소중하다. 시급’만 따지자면 절대 쓸 수 없을 것이다. 





시급과는 먼.

그러나 시급과 비교 할 수 없을 우리의 창작.





믿음이라면 못다 받은 시급은 사라지지 않고 쌓이고 있다. 완성해 놓고 투고하지 못한, ‘초고 파일’에 잠시 쉼을 취하고 있는 나의 초고도. 뒤죽박죽 혼재 중인 나의 문장도, 언젠가 써봐야지 하며 마음에 품고 있는 글도, 내 문장이 글이 책이 세상을 감화하는 날, 머지않아 시급 인상수준을 뛰어넘는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저 쓰는 희열에 집중해 글을 쓴다.





그날이 오면 여태 밀린 시급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을 테다. 그렇게 믿는 까닭에 오늘, 땡전 한 푼 받을 수 없는 글을 장작 2시간에 걸쳐 쓰고 다듬는 노동에도 나는 기쁠 수 있다. 읽어주어 고마운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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