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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pr 28. 2022

퇴사 후 알게 된 진실이라면

그런 날이면 티셔츠를 자주 빨아야 한다. 계절을 감지하는 능력은 몸이 머리보다 앞서 있어, 외출 한 번에 겨드랑이깨가 촉촉이 젖어서 그렇다. 여름 초입이긴 한가보다. 지난 3월 18일, 퇴사하던 날과는 사뭇 다른 더위다. 정을 만나러 갈 때 입고 간 파란색 스트라이프 티셔츠 양 겨드랑이에 땀이 묻어났다. 더 방치했다간 지하철 옆자리 남자에게서 나던 그 땀내가 내게도 나겠지(우리는 반면교사를 일상 속 사자성어로 품고 사는 자들임에 틀림없다). 티셔츠를 벗어 즉시 빨래 바구니에 넣고는 책상에 앉았다. 정과의 만남을 기록하고 싶었다.   





만남은 전전전주부터 계획된 것이었다. 정에게 문자가 왔다.     

후배님 잘 지내요? 다다음주 시간 괜찮아요? 점심이나 같이 할까요.





정은 나이 차이가 좀 많이 나는 대학 선배로 동종업계에 종사하던 동료 직장인이었다. 전사 부장의 친구이기도 하다. 비슷한 업무를 하며 같이 일하지 않을 수 있어 금방 가까워진 케이스다. 그에게 모르는 걸 묻고 자료를 구걸하기도 했지만 서로의 일에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아 그럴 수 있었을 터. 일로 만나지 않아 다행인 사람에는 정도 속해있다. 정은 나보다 더한 리스너라 시시콜콜한 직장 뒷담화를 들어주곤 했다. 사장 욕은 아마 남편 다음으로 많이 해준 사람일 것이다.





그렇게 약속한 다다음주가 되어 오늘은 정을 만나는 날이었다. 파란색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들린 광화문에도 여름이 온 모양이다. 멀리 정이 보인다. 마스크로 가려 보이지 않겠지만 함박 미소 지으며 정을 맞았다.     





“선배님! 잘 지내고 계셨어요? 한 달만에 뵙는 건가요?”

“나야 똑같아요. 제2의 인생을 맞이한 작가님이야말로 많은 게 달라졌을 거 같은데?”     





내가 주문하겠다던 백색 순두부를 정도 주문했고 입을 근질거리게 하던 서로의 안부를 하나둘 물어나갔다.    





“저야 잘 지내죠. 요즘 너무 좋아요. 저에 맞춰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보고 싶지 않은 사람 안 봐도 되는 것도 그렇고.”     





거짓 없이 솔직히 말할 수 있어, 그러니까 퇴사 후 삶에 만족한다고, 행복하다고 진심에서 묻어난 안부를 전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도 느꼈던지 흐뭇한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내가 처음에 얼마나 말렸는지 알죠. 한편 걱정도 많이 했는데. 그래도 걱정이 무색하게 잘 지내고 있어 다행이네.”    




 

그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새삼 내가 모르던 내 이야기를 들은 듯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딴 생각하느라 듣지 못했던 것일까, 싶어 알고 있던 마냥 자연스레 넘어가기 위해 ‘헙’ 하던 마음의 딸꾹질을 감춰야 했다. 앞에 있던 물 한 모금을 삼켰다. 정은 퇴사한다던 나를 상당히 걱정했던 모양이었다. 공연히 불편한 마음 만들까 싶어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가만 들어보니 정은 나름대로 최선의 티를 냈었나 보다. 물론 나는 알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랬던 것 같긴하다.     



회사에 사직선고 전, 쪼르르 달려가 가장 먼저 알린 사람은 정이었다. 선배님, 오늘 점심 어떠세요. 괜찮으시면 식사하실까요. 전 날밤엔 남편과 나란히 누워 최종 퇴사 날짜까지 정해둔 상태였다. 우리는 결론 지었고 한 달 반쯤 지나 나는 퇴사자가 되어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아침 9시가 조금 넘자마자 정에게 약속을 청했다. 군더더기 없이 어디에서 볼까요, 라고 정은 물었다. 그날 점심도 비빔밥집이었다. 몇 술 떴을까, 정에게 고했다.     




“선배님. 저 회사 나가려구요. 아무래도 지금이 그때 같아요.”     





정의 얼굴이 굳어지는 게 보였다. 곧장 말하지 않았고, 충분히 정리한 뒤 이야기하려는 듯 입을 벌리다 다시 닫았다를 반복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말이라도 기다리고 있다는 내색하고 싶지 않아 숟가락 가득 비빔밥을 떠 입안으로 우겨 넣었다. 밥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조금 뒤 정이 입을 떼었다.     





“…. 남편은 대학원 언제 졸업하나요?”     





2년 뒤라고 했다. 그것 때문에 2년만 더 버텨볼까 했는데 아닌 거 같다고. 어쨌든 여기는 나가야겠다고, 그가 더 궁금해할 질문에 섣불리 대답했다. 진작 숟가락을 내려놓은 그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린 채 두 손 모아 듣고 있다 이어 말했다.     





“계획한 다른 일이 있나요?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은 없을까요?”     





정답게 은은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러고는 더 말하지 않았다. 버텨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은, 절대로 뱉지 않았다. 사직 선고 수순을 밟는 중이라면 이미 내적갈등을 마쳐 절대 바뀌지 않을 결심을 내린 상태라는 걸 직장인 30년 차 정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적 문제에 대해 ‘어딜가나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남아 있는 것도 한편 손해 볼 짓은 아니지 않을까.’ 하고도 말하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했고 차분히 들어주었다. 실은 그게 고마웠다. 힘들게 마친 고민은 없던 일로 하고 다시 새롭게 버텨보자고. 다 그런 것 아니겠냐며 상처 부위를 인두로 지지는 고문과 다름없는 일을 정은 권하지 않았다.     





비빔밥을 반쯤 남겼을까, 차 한 잔 하자며 커피숍에 와서는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해댔다. 더듬더듬 기억해 보니, 정이 이런 말을 했던 것도 같다.     





“나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쯤 고비가 왔던 때가 있었어요. 이런 말 어떨지 모르겠지만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어찌어찌 버티다 보니 지나가져 있더라고요.”     





그 앞의 나는 아메리카노만 홀짝이고 있었다. 그런 줄로 알았다. 아, 선배에게도 젊은 날 시린 한 구절이 있었구나, 하기사. 올해 나이 쉰셋인데 그럴 때 없었을까. 나이 쉰을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 ‘지천명’이라 하던데 그러기까지 얼마의 흉터를 남겨야 했고 흉터는 또 얼마나 단단해졌을까. 그쯤으로 여기며 정을 마음으로 존경했다. 정의 속내도 모르고.     




“한 번씩 놀러와요.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 언제든 연락하고.”    

 




정을 사무실로 들여보내며 교보문고로 향하던 길. 정에게 빚진 게 많은 나라는 걸 알아버렸다. 짐짓 정에게도 걱정을 안겨 주었구나. 그에게 크고 무거운 것이었구나. 한편 잘되기만 바라야 했던 그의 마음은 돌탑 앞에 이뤄지기나 할지 긴가민가한 심정으로 기도하는 것처럼 공허했겠구나. 교보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베스트셀러 코너에 서, 언제 나는 정과 우리 부모 마음의 묵직한 돌이 아니라 가뿐한 기쁨이 될 것인가 생각했다. 읽히지도 않는 책장만 넘겨댔다.     





그러나 결코 오늘을 잊고 싶지는 않다. 나로 인해 무거워진 그들을 떠올리는 빚진 자인 나,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하던 정의 표정. 그의 의도를 퇴사 41일 차에 알아버린 나는 사뭇 정을 재각인 한다. 조심스러운 사람으로서, 섬세한 자로서, 각별한 애정으로 나를 대하는 선배로서, 작가님 글이 여기저기 널리길 바라는 진심어린 독자로서.    

 


정에게 이 글을 바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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