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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Sep 03. 2020

당돌한 네 착각에 내가 다 억울하다.

억울하다는 말

나는 그 말을 의도치 않았던 일로 오해를 샀을때 종종쓴다.


사소하기도 했다.

떡볶이와 함께 딸려 온 단무지 비닐 벗길때 나던 냄새에 "언니가 꼈지? 아 진짜." 라며 낀 놈이 되었을 때도,

배고프다는 그의 말에 "나도! 나도 배고파."라고 동조했을 때

이번도 배려에 불과하다고,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배고프지 않은 거 알고 있으니 너 허기지면 먹자는 그의 단호함에 억울했다.

그 냄새는 내 것이 아니었고, 배고픔은 나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외치고 싶기도 했다.

자기 시선으로 바라보던, 쟈스민은 그럴거야 혹은 그렇겠지라고 단정 짓던 어른들. 중학교 1학년 14살, 아빠를 잃었어도 따뜻한 엄마가 있고 둘도 없는 동생이 있어 불행하지 않았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어딘가 찌푸러진 미간의 어른들에 억울했다. 웃고 있어도 그랬다. 저 속에 얼마나 큰 아픔이 있겠냐고. 울어도 그랬다. 어린애가 오죽했으면 그러겠냐고.

불필요하게 받게 되는 연민의 시선은, 영 그런 것이었다.


"나 너 좋아해. 우리 사귈래?"

"갑자기? 왜?"


난데없이 훅 치고 들어 온 친구 고백에 적잖이 놀랐다.


"너도 나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뭐래)"


자기를 좋아하는 줄로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용기낼 수 있었다고. 거절로 인한 창피는 없을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이 근본없는 착각은 어디서 나온 건지 궁금했다. 어디서 그런 아이디어가 떠오른 걸까. 되물었더니 하는 말. "대꾸도 잘 하고, 잘 웃어 주잖아."


호응은 습관이라 별 수 없지만, 그 날로 나는 웃음에 여성기를 없앴다. 일종의 쉴드였다.


"히히히", "헤헤헤", "호호호" 대신

"푸하하하" 나 "우끼끼끼" 라고 웃었다.


간간히 욕도 섞었다.


"미친놈이네."


몸에 깃든 소녀미(美)를 벗으려 했다. 더는 억울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가 언제?"라고 하면 "네가 그랬어!"라고 되돌아 오는 게 걔들의 답이었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은 오해였다. 그리고 오해를 부른 나는 잘못이 되었다. 이번에도 억울했다. 스스로 만든 착각에 잘못은 나에게로 향해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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