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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Jul 12. 2022

나의 3종 남자

빠질지 모릅니다. 매력에 주의하세요

무언가에 홀리면 사람이 이렇게 성실할 수 있고 그 대상은 독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나로부터 증명하고 있다. 요즘 독서에 빠져 정말이지, 앉으나 서나 미친 듯이 읽는 중이다. 아참, 앉으나 서는 건 아니고 주로 침대나 소파에 누워서. 아때라도 경추와 척추에게 쉼을 주자는 정당성으로 등을 데는데 좌로 눕고 정면으로 눕고 우로 누워 있을 때도 손엔 책이 놓이지 않는다. 대신 손목이 시큰해지는 편이긴 하다.     




넓고 깊어지자는 게 독서의 주된 목적이다. 궁극적으로 ‘잘 쓰고 싶어’ 하는 발악. 내 안에 한데 섞인 재료가 언제 어느 때 화학 작용으로 대폭발을 해낼지 모를 일이다(기대하시라 개봉박두). 그렇게 전공과 비전공을 넘나들며 재료를 쌓아가고 있다. 주로 심오한 책인데, 우지끈 머리에 쥐가 날 때면 지면 태세를 바꿔 에세이로 호로록 넘어가야 한다. 책도 장르마다 요구되는 에너지 레벨이 다르다 보니 세월아 네월아 읽히는 대로 읽자꾸나, 싶은 에세이로 갈아타는 것이다. 유희엔 그만한 에너지면 충분하다.     




그러다 최민석 작가를 ‘알아버렸다’. 에세이 쓰고 싶어 소설가의 길을 택했다는 그다. 그의 에세이 ⟪꽈배기의 맛⟫을 통해 알 수 있었는데, 특정 류의 빵은 아니지만 어디에도 꿀리지 않는 저만의 멋과 맛이 있는 꽈배기 같고 싶어 꽈배기의 맛을 썼다고 했다.



소설가 최민석



고백하자면 작가라 불리는 사람의 유명세 대부분이 그러하듯 최민석 작가를 안건 최근이다. 내게 작가 최민석은 근래들어 존재하는 사람이 된 건데, 책 속의 추천이었다. 순전히 제목에 끌려 읽기 시작했고 결론부터 말하면 ‘꽈배기라면 그닥’이라고 잘라 말하는 나조차 꽈배기에 설탕 바르듯 몸을 좌로 뒹굴 우로 뒹굴하며 단숨에 책 3분의 1을 읽어버렸고, 작가의 정체까지 알고 싶어 포털에 그를 검색해 보기에 이른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의 글은 이런 식으로 쓰였다.     




“나는 지금도 하루에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는 멍하니 허공을 본다. 친구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꼭 그 때문은 아니다. 간혹 친구나 동료를 만났을 때도 함께 멍하니 허공이나 구름, 흔들리는 나무를 보기도 한다. 이 시간을 ‘영혼의 샤워’라 칭해왔다(유서니까 하는 말이다).” 


“그리고 오늘이 아니고선 못할 것 같아, 아버지와 어머니가 전화를 받자마자 곧장, 사랑한다고 크게 말했다. 어머니는 침착하게 “알았다”라고 하셨고, 아버지는 “카드값 때문이냐?”라고 되물으셨다. 다시 어색하게 전화를 끊었다. 한 시간이 지났고, 나는 이제야 유서를 쓰기 위해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우선 나는 일반적인 유서처럼 내 유산에 대해 쓸 생각은 없다(라기보다는 정리해야 할 유산이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므로 (내 기준으로는) 짧았던 지난 35년의 생을 돌아보며, 행복했던 순간들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최민석, <<꽈배기의 맛>> 




그에게 사로잡혀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     




그의 글을 읽고 있자니 스멀스멀 냄새가 올라온다. 낯설지 않은 이 향은 언젠가 맡았던 누구의 쿰쿰한 유쾌와 닮아있다. 아저씨 스킨 향 뿜으며 덜 말린 머리칼로 목욕탕을 나와 바나나 우유를 꼭, 필연처럼 빨대로 마시고는 지면에 바싹 맞닿은 발걸음으로 슬리퍼 질질 끌며 집으로 향하는 듯한. 다분히 후줄근해 보이나, 바람 타고 코에 닿은 아저씨 스킨 향이 썩 나쁜 것만은 아니라 나도 모르게 킁킁대다가 그가 수시로 입을 털어주는 까닭에 한 걸음 가다 멈춰 주저앉아 배꼽 부여잡고 깔깔대는. 극도로 정직하고 소탈해 염려스럽기까지 하지만 편견이란 없어 ‘그래, 어딜 가도 사랑받겠다’ 싶어 다시 깔깔 또 보고 싶은 사람. 언제든 곁에 두고 싶은 인간 댕댕이(애칭처럼 쓴 거니 괜찮겠지요). 엇, 이것은 김중혁 소설가랑 권용득 만화가 아닌가.     



소설가 김중혁, 출처 : 한국일보



민석과 중혁과 용득은 부정할지 몰라 마땅한 근거를 대기 위해 김중혁 소설가 글부터 데려왔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승부 근성이 있는 사람과 승부 근성이 없는 사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승부 근성이 없어도 심하게 없는 사람이다. 어떤 일에서건 온 힘을 다해 승부를 벌여 본 것이 몇 년 전이냐 하면, 에, 그러니까…, 그게. 살다가 그런 순간이 있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나지 않는다. 학교 다닐 때 악착같이 공부를 해서 1등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1등 하면 뭐하냐, 떨어질 때 괴롭기만 하지!) 내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으며(글쓰기라는 분야가 숫자와 그래프로 능력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중략).”

김중혁, <<뭐라도 되겠지>>     



만화가 권용득과 가장 닮은 용득의 자화상



권용득 만화가의 글은 이러하다.


“올해 만으로 마흔셋. 논어에 의하면 웬만한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을 훌쩍 넘어섰다. 민방위 훈련마저 끝나 국방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진 X세대 끄트머리이자 영포티 또는 차세대 꼰대.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얘기지만, 나는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다.”

권용득, <<일도 사랑도 일단 한 잔 마시고>>     




민석에게서 중혁을 보고, 중혁에게서 용득을 보다니. 어쩌면 서로가 서로의 글을 보며 글을 키워나간 것 아닐까. 나처럼. 셋의 글은 닮아 있다. 허술함이 아니라 결코 낙낙한 것이고 치장하지 않은 인간을 민석을 중혁을 용득은 제 한 몸을 통해 드러낸다. 애정하게 된다.     




멋대로 뽑은 나의 3종 작가님이 하나의 주제로 묶여 내게 쓰여지고 있다. 한데 모아 쓰는 나는 흐뭇하기 그지없으나 여기, 오직 내 취향에 따라 쓰인 것이 썩 유쾌하진 않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러려니 할 것은 안다. 글이란 본래 제멋대로인 것을. 눈치는 접어두고 마음껏 내 사유를 펼쳐나가는 백지 위 장인 것을. 그리하여 이런 상상도 해본다. JYP처럼 EKS라는 대형 엔터테인먼트를 꾸리게 된다면 이들 작가 3인을 초대해 SES급 그룹 KKC를 조성하고 음악캠프 따위에 데뷔시키겠다. 리더는 아무래도 중혁이 좋겠다. 왠지 느낌이 그렇다. 그래서 센터는 중혁이다. 이유는 사장인 EKS 마음에 따른 일이므로 그것으로 족하다. 훅은 용득에게 맡기겠다. 만화가라 그런지 적기에 적당한 언어로 훅훅 잽을 달릴 것이다. 용득의 글을 보니 용득(믿음)직하다. 그리고 민석은 꽈배기를 만들게 해야겠다. 본인이 좋아한다기에. 용득을 좌측 민석을 우측에 서게 해야겠다.     




같잖은 상상을 하며 그날을 위해 물밑 작업부터 해 볼까 한다. 인스타그램 열어 댓글이나 하나 남겨볼까 봐.   

“팬이에요.”




독자라거나 팬이라는 자를 내칠 작가는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어쩌다 글은 산으로 가 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 이토록 막무가내인 글쓰기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쏘냐. 단 30분 만에 꿀떡 2장이 써졌다는 콸콸콸에도. “읽을 때 묶여 있다 쓸 때 해방된다.”는 박연준 시인의 말처럼 오늘도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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