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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ug 16. 2022

모두가 글을 '잘' 쓸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서론은 거두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여러분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우리는 왜 글을 쓰는 걸까요? 글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제 통찰에 의하면 글을 쓰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 됩니다.

1. 자기계발

2. 치유

3. 기록

4. 문학     





자기계발은 뇌를 단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글쓰기를 말합니다. 다른 말로 ‘뇌 최적화’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책을 읽고 난 자기 생각을 글로 정리해 본달지, 배움을 글로 옮겨 본달지, 구조화하며 뇌를 벼리는 작업이지요. <공부가 되는 글쓰기> 저자 윌리엄 진서 말처럼 우리는 글을 쓰며 배웁니다. 글로 작성하는 것만큼 그 순간을 분명히 할 수 있는 때는 없거든요. 또한 정보나 지식의 제공을 위한 쓰기 또한 이 부류에 속합니다.     



치유는 덮고 지냈던, 따라서 사라지지 않고 여러분 내면에 침잠해 있던 그 상처를 글로 뱉어냄으로써 회복하는 글쓰기를 말합니다. 최근 유행해 한 번쯤 들어 보셨을 겁니다, ‘치유하는 글쓰기.’ 아픔에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통을 묵히는 게 아니라 반복해 밖으로 끄집어내라고 합니다. 글로 뱉어내며 해소하는 행위도 이 같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겠고요. 상처가 글이 될 때, 비로소 아픔이 아니라 그저 한 편의 글에 불과한 일이 되어버림을 느낀 분은 알겁니다. 아, 글쓰기가 이래서 치유였구나.     




기록가장 일상에 닿아있는 글쓰기입니다. 로그라고 할까요 일기라고 할까요. 하루치 일상을 글로 나열하기도 하고요, 그때의 감정을 문장으로 만들어 펼쳐 보이기도 하죠. 기록되어 남아 있으므로 그리울 때 마다 그 날을 꺼내볼 수 있게 합니다. 기록의 힘을 아는 분들이 끝내 놓지 않고 쓰는 일입니다.    



문학은 타인의 감정 고양을 위한 글쓰기입니다. 글로 독자를 울고 웃기는 거지요. 우리는 감정하고 싶어 글이나 책을 읽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이것이 문학의 영역이겠죠. 영화나 드라마도 물론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하고 이는 글로 이루어져있습니다. 타인의 감정을 박동하기 위해 우리는 글을 쓰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넷은 경우에 따라 둘로 나눌 수도 있습니다. 바로 누구를 독자로 하느냐에 따라 

1. 보여 지는 글

2. 나만 보는 글

로 말입니다.     





보여 지는 글은 타인을 독자로 하는 글입니다(타인을 독자로 하는 글이라고 나를 독자로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모든 글의 전제는 제1독자인 ‘나’를 바탕으로 합니다). 보여 지는 글이므로 독자(읽어주는 이)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고 따라서 ‘잘’ 쓸수록 좋습니다. 아니, 잘 써야 합니다.     


*여기서 ‘잘’은 여러 의미가 있겠습니다. 글로 누군갈 설득해야 한다면 100% 확률로 상대를 설득하는 게 ‘잘’이겠고, 위로와 공감을 선사하고 싶다면 내 의도가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쓰는 게 여기서 말하는 ‘잘’일 테지요. 달리 ‘잘’이 아닙니다.     


여기서 ‘잘’이 빠지면 다소 일방적인 글이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 읽어 주기를 바라며 쓴 글임에도 독자에 대한 배려가 쏙 빠진 글이지요.     





반면 나를 독자로 하는, 나만 보는 글은 ‘잘’ 쓸 필요는 없습니다. 일상을 기록하며 치유를 위해 글을 쓰며 잘 써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대신! 요구되는 게 있습니다. 끝끝내 솔직할 것. 치유 또는 일상 기록을 목적으로 나에게 쓰는 글이라면 결코 자기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피해선 안 되고 어물쩡 에둘러 써도 안 됩니다. 그렇게 썼다면 본인이 애초에 달성하기로 한 목적, 치유나 기록 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으니까요. 이때 쓰기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될 뿐이라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글을 ‘잘’ 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모두가 글을 쓰고 살아갑니다.



최근 아이들과 방학 특강 글쓰기를 하며, 수업 마지막 날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너희들은 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 하니 이미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던 아이들이 하나씩 대답해 주더군요.     



“어른 되면 보고서 써야 하잖아요.”

“책을 쓰고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요.”

“글을 잘 써야 돈 많이 벌잖아요.”

“글은 삶의 모든 것이라서요.”     



전부 정답이었습니다만, 준비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얘들아. 우리가 살아가며 무엇으로 사람들과 소통하지?

(“말과 글이요.”)

그렇지. 말과 글이지.


우리가 말하기에는 참 익숙하지. 선생님이랑도 지금 이야기 하고 있고, 수업이 끝나면 엄마 아빠랑 말로 대화할 거고, 동생이랑도. 그런데 있지. 너희가 자랄수록 점점 글로 소통해야 할 때를 더 많이 만나게 될 거야.

아까 너희도 대답했잖아. 소통은 주로 말과 글로 이루어진다고. 선생님은 그래서 너희가 글과 친하게 지내야한다고 생각해. 우리는 글과 떨어져 살 수 없을 것이고, 이를 미리 알고 있던 너희들 어머니가 이 수업을 신청해 주셨던 거야. 그래서 우리 만날 수 있었던 거야.     





세상을 이루는 근간은 전부 글입니다.

고로 ‘우리는 언젠가 만나게 될 거라’는 나의 호기 섞인 장담은 분명 현실이 될 겁니다.  

오늘도 쓰고 내일도 쓸 나는 이 길을 계속해 걷고 있을 테고 언젠가 여러분도 이 길에 함께할 것이므로.


급하지 않고, 다만 걸어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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