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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ug 22. 2022

꺼져주라 제발ㅠㅠ

“시발 개새끼! 으아아악!”     



바선생이 나타났다. 밤 10시경이었고, 작업실(작은방)을 나오려는 내 앞에 웬 거대 혐오 생명체가 빠른 걸음으로 벽을 타고 있었다. 우린 서로 놀란 듯 했다. 놈은 거대함에 나는 발 빠른 징그러움에. 둘 중 하나가 놀라 죽을지 모를 만큼 당황한 놈과 나는 서로를 피해 안방으로 틈 어디께로 몸을 숨겼다. 쉬벌 개새끼ㅠㅠ. 이 집에 이사 오고 받은 가장 큰 배신, 저 놈이 기거중이었다는 게 실로 소름일 뿐이다. 신축빌라도 믿을 건 못 됨.  



이후로 침대 밖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오줌을 정신으로 억누르고 있고, 마른 목을 침으로 삼키고 있다. 이대로는 더 못 지내겠기에 해결사를 부르기로 했다. 어두운 형체의 모든 것이 다 놈으로 보이는 착시현상을 겪는다.     



다음날 해충계의 김명민이라는 닥터벌레 선생을 집으로 모셨다. 그는 베테랑답게 집에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A6용지에 코팅된 놈들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놈인지, 저 놈인지 마치 현상수배범을 잡듯 골라보라며 내게 물었다. 차마 볼 수 없던 나는 지목을 남편에게 미루었고 살펴보더니 마침내 그것을 가리켜 그 놈이라고 해주었다.     



닥터벌레 선생은 일사천리였다. 베테랑답게 놈들 속을 훤히 꿰고 있는 듯했다. 거실과 화장실, 안방, 작은방을 넘나들며 약 처리를 했다. 피스톤에 든 고동색 약을 쭈욱 짜내며 간간히 업계 경험을 들려주었다. 한껏 징그러움에 쩔은 나완 달리 감정이란 없어 보였고,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올까 싶어 온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있는 나와 달리 그의 손은 활짝 펴져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사뭇 안정을 찾았다.     



분주히 움직이는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 징그럽지 않습니까. 이어 말했다.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시는 듯합니다, 선생님이 없었으면 저는 이 집을 나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새벽엔 남편의 에스코트로 간신히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다녀오면서도 계속해 “시발 개새끼! 꺼져!” 소리치며 초고속으로 뛰어갔다 침대로 들어왔고요, 상상이 지나쳤는지 꿈에도 놈이 나타나는 바람에 자다 “으아악!”하고 소리치며 깨어야 했습니다. 휴우.     



뒷통수에 가져다 댄 두 팔엔 오돌토돌 닭살이 올라 있었다. 연신 한숨만 푹푹 쉬어대니 선생이 그랬다. 징그러울 거 뭐있어요. 허허.



나 같은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더한 쫄보도 많다고 위로를 건네었다. 놈과 싸워준 감사에 비용 외 만원을 더 얹어 드렸다. 떠나려는 선생에게 바짓가랑이를 잡듯 물었다. 오늘 이렇게까지 했는데 다시 나타나는 건, 아니겠지요.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연 그가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곤 홀연히 다음 집으로 사라졌다.     



“놈이나 나나, 다시 이 집에 나타나지 말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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