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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Sep 05. 2022

부모싸움에 놓인 소녀를 위하여

한 부부가 있다. 고작 여섯 살이 된 딸 하나를 둔 남과 여로 아이에겐 부와 모로 불린다. 최근 이들 사이는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남자의 불안이 여자를 덮쳤고 그 무게에 짓눌린 여자가 아파 신음하기에 이른 것이다. 부부는 삐그덕 대며 서로를 향해 언성을 높였다. 나를 위해 바뀌라고, 여기서 뭘 더 어떻게 바뀌느냐고. 못살겠다며 고함칠 때, 때마다 아이는 그 공간에 있었다. 부모 다툼을 인지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아이는 오염에 노출 되었다. 이 오염은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 한 사라질 턱없었다.




아이에겐 성인이 된 형제들이 있다. 한편 부모가 의존할 만큼 장성한. 이들은 부모보다 어린 동생을 먼저 생각한다. 부모의 다툼은 아이에게 전시상황과 다름없다는 걸 이들은 알고 있다. 어린 여동생의 불안을 떠올리고는 연거푸 한숨을 내쉰다.     


한편 형제는 부부의 맞지 않음을 이해하는 눈치다. 둘 문제는 오롯이 둘 것으로, 사이에 개입하고 싶지 않아 보인다. 형제는 관계의 속성에 대해 빤히 알아버린 성인이다. 종속이 맺음보다 못할 수도 있음을 그들은 안다. 고로 당신들 원하는 언제라도 헤어지라는 말이 찰방찰방 목울대까지 차고 올라오지만, 꿀꺽 침에 섞어 말을 삼키고는 입을 닫는다. 그리고 아이를 떠올린다. 둘의 화해가 시급하다는 판단으로 통화를 마친다.     





아이가 있다. 엄마아빠 사이가 심상치 않음을 24시간 감지 중인 여섯 살 난 여자 아이다. 일 때문에 타지로 떠난 큰 오빠 둘이 있고, 집에는 엄마 아빠 아이 셋이 산다. 형제가 떠난 집에 아이는 주로 혼자 시간을 보낸다.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홀로 장난감을  조립하고, 침대에 엎드려 색칠 놀이를 하다 인형 옷을 갈아입힌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유튜브 언니가 나온 영상을 보는데 전쟁이 발발한다. 아빠가 엄마에게 소리치며 불만을 터놓는다.


놀란 아이는 언성의 근원인 안방으로 향한다. 아빠 말에 대꾸하다 눈물 흘리는 엄마가 보인다. 거실에서 듣던 것보다 더 크고 듣기 싫은 소리가 무른 귓가를 때린다.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멀찌감치 문 앞에 서 문고리만 붙잡고 늘어진다. 어찌할 바 모르겠다. 다리를 배배 꼰 채 풀린 눈동자로 다투는 부모를 바라본다. 유치원에서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배웠는데 정작 부모는 친하지 못하다.      


멍-하니 서 손가락만 입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한다. 요즘 들어 자주 보는 모습이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가슴이 쿵쾅쿵쾅하고 오줌이 나올 것도 같다. 영상도 보고 싶지 않고 인형놀이도, 하고 싶지 않다. 엄마가 울 때 마다 즐겁기가 힘들다. 오빠들이 보고 싶어진다.     




어린아이를 생각한다.

아이의 아픔을 응시한다. 그러자 두 형제는 넋 놓고 있을 수 없게 된다. 아이를 위해 둘의 원만한 합의를 바라며 전화를 건다. 두 형제는 부의 항변을, 모의 하소연을 귀담아 듣는다. 중재에 이를 합의점을 찾으려는 모양이다. 부는 이따금 목소리가 높아지고 모는 코가 얼큰해진다. 부는 여전히 고집 부리는 모양이고, 모는 눈물 따라 흐르는 콧물을 주체할 수 없는지 코가 눈물로 가득 찼나 보다. 그리고 형제간 다시 전화를 한다. 어쩌면 좋겠는지 의논하다 내일 다시 통화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는다. 형제는 반복해 노력한다. 어린 여동생을 떠올린다.     




그 모습을 지켜본다.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모의 다툼과 마주한다. 맞지 않는 걸까 맞추기 싫은 걸까. 서로의 고유성은 인정하지 않은 채 부부가 돼, 기대만 늘어나는 그들 밑에 자라는 아이는 무슨 잘못일까. 아이를 위한 헤어짐이 맞아 보이다가도 아이를 위해 화해해야 안 되겠냐는 이상한 결론에 빠진 나는 이 물음을 아이에게 직접 묻고 싶어졌다.     



그래서 어른이, 널 위해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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