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이라는 세계(2)

2. 서울에 버티는 기분 : 외모

by 손은경

: 한국 여성, 2년차 국제부부 중 아내. 결혼 후 '나'를 위해 서울에 거주하고는 있지만 훈보다 더 튀르키예를 그리워한다. 서울살이 하나하나 가르쳐 줘야 하는, 때론 어린 아들 같은 훈 그러니까 외국인 남편이 있다. 글을 쓰며 창작을 한다.


: 튀르키예 남성, 2년차 국제부부 중 남편.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왔고 김치 없인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아내를 위해 2년째 서울살이 중이다. ‘한강의 기적’을 높이 사나, 기적 저편에 숨겨진 내막-한국인은 바쁘고 바쁘다 하루를 마감한다-을 몸소 깨닫고 다소 놀라곤 한다. 아내를 아시아에서 가장 예쁜 사람으로 안다. 대학원에서 소음과 진동을 연구하고 있다.






훈과 시장에 간 날이었다. 비건이 되고(자세한 내용은 <나의 비건 분투기>를 참고해 주세용(윙크)) 바뀐 일상이라면 매 주말 시장에 가 야채와 과일을 듬뿍 구매한다는 것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싱싱한 야채를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말만 되면 몸과 마음이 느슨해지는 것처럼, 훈을 단단히 조이고 있던 벨트도 풀어진다. 매일 깎는 수염도 주말이면 무성히 자라도록 하고 그런 훈의 얼굴 절반은 거무수룩 털로 가득하다. 다리털 밀고난 뒤 뾰족뾰족 일주일 만에 올라온 그것처럼 짧고 단단한 수염이 흑채처럼 하악을 뒤덮었다. 수염으로 범벅이건 범벅이지 않았건과 무관하게 그의 턱을 매만진다.



주말은 시간을 지체 할수록 하기 싫어지는 일들로 쌓인다. ‘해야지’ 하다가도 ‘그냥 미룰까’하는 것들이 토요일과 일요일에 기다리고 있다. 가령 빨래, 바닥청소, 장보기 같은 것. 하여 오래 자고 일어난 10시쯤 간단히 과일을 챙겨먹고 바로 시장에 가는 편이다. 그때가 아니면 미룰 것이고 이러다 한 주 쫄쫄 굶어야 할지 모른다. 밤사이 더 길어져버린 훈의 수염과 함께 집을 나서자는 이야기를 꺼낸다. 시장 가방을 들고 집을 빠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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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우리는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집 안에선 느낄 수 없던 공기와 피부로 접촉하며 기분 좋은 수다를 떤다. 가로수가 만든 그림자를 지날 때 마다 살랑살랑 바람이 인다. 주로 ‘만약’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한다. 만약 내가 대학원 졸업 후 튀르키예에 좋은 제안을 받게 되면 어떻게 할 거냐 던지, 아님 정말 만약에 갑자기 아이가 생기면 어떡할 거냐 던지 하는 것들. 말 중간마다 웃음을 입으로 주체하지 못해 훈의 팔뚝을 찰싹 때리고 훈은 코를 찡그려 웃는다. 그러다 보면 시장에 도착해 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올 땐 다른 무드로 걷고 있는 우리를 발견한다. 장 볼 때부터 뭔가 틀어졌음을 감각하고는 있었다. 부부라는 세계는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너는 그런 사람이라는 걸, 언제 웃고 언제 슬퍼하고 그래도 티 내지 않고 있음을 아는 은어의 세계와 같다. 그도 그렇겠지만 나 또한 침묵하는 훈을 느낀다. 웃음과 말수가 줄었다. 견과류 코너에 가 훈에게 물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땅콩 살까?” 했더니 “아니야. 괜찮아” 한다. 땅콩덕후의 정상적인 반응은 아니다. 삼시세끼 먹을 수 있다는 초코케이크 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땅콩인데, 땅콩 앞에 훈이 활기를 잃었다. 느끼고 있어 공연히 땅콩의 도움을 받으려 했을 뿐이다. 아무 말 하지 않을 뿐이다.



집으로 오는 길, 두 손을 꼭 잡고 걷는 우리 둘은 말이 없다. 잡은 손 반대편엔 양파, 감자, 두부, 사과, 키위 따위가 잔뜩 들려 있고 터덜터덜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어간다. 공연히 나까지 차분해졌다. 그러다 훈이 입을 떼었다.



- 수염 깎고 올 걸

- 응? 왜? 따가워?



나는 평생 그만한 수염을 가져본 적 없었다. 진짜 따갑겠다고 믿으며 순진무구한 얼굴로 물었다. 훈이 말했다.

- 시장에 가는데 한국 사람들이 나를 공포 섞인 눈으로 쳐다봤어. 네가 여기 왜 있냐는 듯이 한참 나를 봤어. 베이비도 느꼈어?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그 다음에 베이비를 봤는데 눈빛이 ‘너 쟤랑 왜 같이 있어?’하는 것 같았어.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 눈빛이 심상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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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 번이 아니던 모양이었다. 말하지 않았던 건 어쨌거나 여기 서울, 한국인 시선에 적응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애써 누르려 하지만 잘 안 되는 날이 있다. 더는 애쓰고 싶지 않은 날, 아마 그런 날이었겠다. 훈은 말끝마다 “Strange(이상해)”를 반복했다. 정말 이해하지 못할 때 마다 하는 제스쳐도 함께 했다. 입 꼬리 :( 이렇게 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나도 모르겠어’ 하는 몸의 말. 훈은 불쾌해했고 그 모습은 좌절로 보였다. 반면 한국인 아내로서 나는 화가 났고 대신 미안했고 마지막엔 부끄러웠다. 잘못 한 것 없는 당신의 기분이 나빠져서는 안 된다고. 그것이 내가 건넬 수 있던 유일한 말이었다.



집에 도착한 훈은 바구니를 내려놓자마자 소파에 앉아 다큐멘터리 따위를 봤다. 기분을 지우려는 듯 했다. 방해되지 않도록 나는 바구니에 담긴 야채와 과일을 조용히 냉장고로 날랐다. 짙은 쌍커풀을 한 깊게 패인 눈, 수북한 수염은 서울에 있어도 튀르키예에 살게 하지만 이질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때론 오해를 만들고 그것은 오해이기 때문에 상처가 된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훈과 연애할 때 이런 날도 있었다. 택시에 올랐다. 그리곤 아저씨 왕십리로 가주세요, 하고 훈과 나란히 뒷자리에 앉았다. 얼마 후 택시기사가 말을 걸었다. 국제커플을 향한 호기심에 익숙했으므로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가 물었다.



- 남자친구에요?

- 네, 맞아요.

- 남자친구가 한국말 할 줄 알아요?

- 아 아니요. 아직 서툴러요.

- 어느 나라사람인데요?

- 튀르키예에서 왔어요.

- 튀르키예면 이슬람 아니에요?

- 네 맞아요. 종교라기보다 문화가 더 맞을 것 같아요.

- 거기 테러 있는 나라 아니에요? 조심해요. 그 남자가 아가씨한테 뭔 짓을 할 줄 알고. 막말로 위험한 일이라고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요.



훈과 연애를 시작할 때 단 1방울도 의심하지 않았던 일을 그가 내 귓가로 전했다. 그렇게 겁주는 아저씨는 튀르키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던 걸까. 나는 아무 대꾸하지 않았다. 제법 힘주어 말하는 그 목소리에 버럭 하기 대신 대꾸하지 않는 것으로 응징했다. 아저씨가 더 악한 것을 뱉어내기 전 어서 왕십리에 도착하기를 바라며 앞창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훈이 그와 나 사이 대화 어느 한 음절도 알아듣지 못하기를 바랐다.






외모가 차별의 이유 없는 근거가 된다. 한국 위상이 드높아지며 K-를 앞세운 다양한 문화들이 전 세계로 펼쳐진다. 마치 한국은 위대하다는 것처럼, K-라면 뭐든 옳다는 것처럼. 그러나 위대함 저편에 숨어 잔재하는 미숙함이 있다. 그걸 우리는 피부로 느끼며 산다. 일반화의 오류라기엔 거침없고 어리숙한 것들이 우리를 할퀸다. 중동에서 온 남성이라는 이유로 이유 없이 마음이 다친다. 한국인보다 못하고, 너는 테러를 일으킬 수도 있고. 훈은 차별을 말한다. 차별은 싫어, 나쁜 거야. 그리고 한국에도 차별이 존재한다고 몸소 체험한 그것을 말해준다. 언젠가 호주에 다녀온 남용이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동양인이라는 걸 알고는 하대하더라고. 만감이 교차하더라고.



국제부부로 서울에 사는 건 늘 신비의 대상이 된다. 허나 신비가 차별이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한국인 아내로서, 퇴근하고 온 훈을 꼭 껴안아 주어야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