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튀르키예에 와 있는 기분 : 외모
나 : 한국 여성, 2년차 국제부부 중 아내. 결혼 후 '나'를 위해 서울에 거주하고는 있지만 훈보다 더 튀르키예를 그리워한다. 서울살이 하나하나 가르쳐 줘야 하는, 때론 어린 아들 같은 훈 그러니까 외국인 남편이 있다. 글을 쓰며 창작을 한다.
훈 : 튀르키예 남성, 2년차 국제부부 중 남편.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왔고 김치 없인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아내를 위해 2년째 서울살이 중이다. ‘한강의 기적’을 높이 사나, 기적 저편에 숨겨진 내막-한국인은 바쁘고 바쁘다 하루를 마감한다-을 몸소 깨닫고 다소 놀라곤 한다. 아내를 아시아에서 가장 예쁜 사람으로 안다. 대학원에서 소음과 진동을 연구하고 있다.
눈 뜨니 웬 콩순이 인형이 눈을 감고 있다.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바로 할 때마다 번뜩하고 떴다가 새근하고 감는 그 눈이다. 짙은 쌍커풀, 촘촘히 박힌 속눈썹에 컬이 졌다. 몇 올 뽑아다 내 눈에 심고 싶어진다. 동양인은 성형으로 만들 수 없을 것도 보인다. 이 코는 매우 높고 날카롭게 잘 빚어졌다. 헤이즐넛처럼 조그만 내 코완 이질적인 것인데, 둘 다 자연산인거슬 어쩜 이렇게 다른지 모른다.
여기가 어딘가 싶어 누워 사방을 둘러본다. 곤히 잠든 콩순이 오른쪽엔 흰색 농이, 왼쪽 구석엔 옷가지가 쌓여 있다. 그때 어제 여름옷 치우다 지쳐 포기한 게 생각난다. 슈우웅 하는 비행기 엔진 소리가 들리고 여기 서울 강서구 신혼집임을 알아차린다. 외국이 아니라는 아쉬움과 서울이라는 안도감이 교차한다. 꼼지락대며 몸을 일으키는데 인기척이라도 느꼈는지 옆에 있던 외국 콩순이가 잠에 깬다. 반쯤 찌푸린 눈으로 말한다.
“베이비, 몇 시야?”
“세븐 트웬티(7시 20분).”
10분 더 잘 요량으로 그는 목 끝까지 이불을 덮고 그 외국 같던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린다. 조용히 안방을 빠져나와 작업실로 향한다. 메일함을 열어보니 업무 연락이 몇 개 와있다. 아무래도 꿈이 아닌 현실, 우리는 2년차 국제부부다.
정확히 10분 후 알람이 진동을 하면 남편이 잠에 깬다. 화장실에 가려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우리아내 좋은 아침 한다. 억양만 들었을 땐 좋은 아침이기에 좋은 아침이라 하는 걸까, 좋은 아침의 의미는 아는 걸까, 별 뜻 없이 인사하는 게 벌써 K-외국인 다 된 건가, 의문이 들지만 말하지 않는다. 대신 좋은 아침이에요 우리남편, 잘 잤어? 하고 인사한다. 오줌 싸러 가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그가 변기에 앉으려다 “네, 잘 잤어” 한다.
훈은 주로 아침에 샤워를 한다. 루틴으로 말할 것 같으면 7시 30분에 일어나 내게 아침 인사를 하고 밤새 쌓인 노폐물을 배출한 뒤 화장실 밖으로 팬티 한 장 던지고는 촤르르 하는 물소리를 내보낸다. 그러다 뚝 물소리가 끊기는데 그 맘쯤 면도를 하고 있다. 훈은 반나절 만에도 수염이 얼굴을 메우는 유전자를 가진 터키인이다. 밤에만 해도 어린 피부 결을 볼 수 있었는데, 아침이 되니 웬 표면적 넓은 김 하나가 턱 밑이며 볼 아래에 붙어있다. 두껍고 뿌리 깊은 그것이 까끌까끌 때밀이 같다.
그리고 누구는 젠틀한 수염이라며 부러워할지 모르나 당사자에겐 번거롭기만 하다. 매일 깎아야 하고, 면도할 때마다 족히 30분은 써야 한다. 수염이 있으나 없으나 그를 사랑하지만 없으면 더 훈훈해지기는 한다.
훈이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한국말 할 줄 아냐는 것과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이냐는 것, 그 다음으로 이탈리아 사람 아니냐는, 답을 정한 채 묻는 그것이다. 훈의 얼굴엔 선 굵은 단정함이 있다. 꼭 유럽 모 배우처럼 깊고 짙고 또렷하다. 정우성이나 기무라 타쿠야, 브래드 피트처럼 멋진 배우하면 떠오르는 그런 상.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 아니냐는 물음을 건네는 거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훈은 분명하게 하고 싶은가 보다. 질문에 대답한다. 저는 이탈리아 사람도 아니고 유럽 사람도 아니고 미들이스트(middle east)에서 온 튀르키예 사람이에요. 튀르키예가 동유럽 아니냐고 되묻지만 엄격히 따지면 중동이라며 정체성을 제 자리로 가져다 놓는다. 이탈리아 사람인 줄 알았다며 사람들은 다소 놀란다.
반대가 끌리는 법일까.
내게 없는 유전자를 그에게서 보충하고픈 ‘생물학적 욕구’에서 비롯했는지 모르나 그런 훈은 사귀기 전부터 멋져 보였다. 짙은 쌍커플, 깊게 패인 눈과 긴 속눈썹, 섹시하게 잘 빠진 코. 새끼손가락으로 가려질 작은 눈, 뼈가 없다고 해도 믿어질 만큼 낮은 콧대인 나완 달랐다. 허나 훈은 인정 못 하는 눈치다. 사귈까 말까 고민했는데 실은 그날 너무 멋있어 보여서 사귄 거라고 내가 말해도 믿지 않는다. 그리고 말한다. 튀르키예에 가면 나는 아주 평범하게 생긴 축에 속하지.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눈이 크고 코가 높으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성형도 눈이 커지고 코가 높아지려고 하잖아. 나뿐만 아니라 외국인 친구들이 이태원 걸어 다니기만 해도 많은 여성에게 관심받는 걸 봤어. 내가 잘생겨서가 아니라 외국인이라서 그런 거 같아. 그리고 하는 말이 ‘그래서 내가 잘생겼다는 건 거짓말이야’라는 거였다.
그게 어때서.
라고 말하며 그의 가슴에 난 털을 긁적여 주는데 훈이 물었다. 그럼 내 몸에 털이 있는 게 좋아 없는 게 좋아? 아니아니, 털이 없었으면 더 좋겠어 아니면 있어도 괜찮아? 맥락 없이 종종 묻곤 한다.
훈의 첫 알몸을 보고 놀라기는 했다. 가장 놀라웠던 건 참새처럼 가슴팍에 난 털 때문이 아니라 분포 때문이었다. 어깨에 털이 자라는 사람은 난생 처음 보았다. 이것은 마치 시멘트 바닥을 뚫고 민들레가 자라는 듯한 거였다. 인체의 신비 뭐 그런 거. 물론 잠깐 놀라기는 했으나 그게 전부이기도 했다. 닭 털을 다 뽑은 듯 뽀얀 한국 남성 몸에 익숙했지만 어디까지나 털 한 올이 훈이었고 나는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한 번은 훈이 온몸의 털을 제거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름이면 땀이 고이고 겨울이면 마찰로 정전기가 자주 난다고 그랬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터래기가 훈을 괴롭혔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레이저로 지지면 얼마쯤 드느냐고 물었다. 진작 겨드랑이 제모를 해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 2020년 종로 기준 3번 시술에 4만원, 강남 기준 3번 시술에 3만 5천원이라고 했다. 시세가 그러하니, 이 숱에 이 세기로 난 털에 맞춰 견적 내자면 대략 100만원쯤 들지 않겠느냐 했다. 어쩌면 더 들지도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훈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대신 1만원대 비용으로 왁싱 제품을 사 털이 난 반대 방향으로 테이프를 붙였다 띄었다 하는 수작업을 거쳤다. 그날은 비명으로 가득했다.
털 때문에 잦은 좌절을 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개를 키우는 기분이다. 흩날리는 털 때문에 시름하는 견주의 고통을 십분 이해한다. 그가 지나간 자리는 언제나 흔적이 남는다. 라면 면을 3cm씩 잘라놓은 듯한 그것이 바닥에 즐비하고, 모르는 사이 옷에 묻어 청결을 망친다. 만약 훈이 개라면 아마 포메라니안이라 곱슬한 검정 푸들일 것이다. 이쯤이면 몸에 털이 적을수록 유리하다는 확신이다.
새삼 남편의 껍질을 훑는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나와 그리고 전부와 다른 외모로 한국, 그것도 서울에 남아 이방인으로 사는 훈의 이질적 외모를 떠올린다. 그의 ‘아시안 뷰티’인 나는 과연 아시안 뷰티가 맞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그러다 바닥에 깔린 훈의 흔적을 진공으로 빨아들였다. 유독 털 많은 반려견과 지내는 견주의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 저녁이면 그 외국인은 비밀번호 6자리를 누르고 이 집에 들어올 것이다. 눈이 짙고 코는 우뚝 솟았으며, 반나절간 성큼 자라 있을 수염과 함께. 그와 보내는 매일이 해외여행 같다. 튀르키예에 와 있는 기분. 서울에 있으나 서울에 없고, 서울에 있으나 튀르키예에 있다.
나를 보는 그도 매일이 여행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