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튀르키예에 있는기분(음식)
중국요리, 프랑스요리와 함께 세계 3대 요리로 꼽힐 정도로 튀르키예는 미식의 나라다.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위치해 있어 양 음식 문화를 받아들이며 발달했다고 하는데, 튀르키예인에게 있어 음식은 자부심이다.
훈을 만나고 다양한 음식을 접하고 있다. 김치찌개, 라면, 떡볶이 같은 지극히 한국적인 것만 먹고 살았다면 이제는 토마토를 베이스로 한 여러 요리를 즐긴다. 어느 한 계절 주말엔 아침마다 ‘메네멘’을 먹었다. 메네멘이란 토마토와 양파를 잘게 다져 달달 볶다가 취향껏 계란, 치즈, 소세지 등을 넣고 먹는 요리다. 비건도 즐길 수 있는데 계란, 치즈, 소세지 대신 두부를 으깨 넣으면 되기 때문이다. 응축된 토마토 맛으로 먹는 요리이므로 두부로 대체해도 맛에는 큰 변화가 없다. 그리고 메네멘은 한국의 찌개 정도에 해당한다. 찌개에 비벼 먹을 밥이 필요하다면, 메네멘에 찍어 먹을 담백한 빵이 필요하다. 빵을 한입 크기로 적당히 찢어 소스에 찍어 먹을 때, 비로소 제맛을 찾는다. 그 계절, 주말 아침 식탁은 시큰한 토마토와 고소한 빵 향으로 가득했다.
바이러스 창궐하기 전 어느 날, 백종원 아저씨 튀르키예에 가 ‘천상의 맛’이라고 소개한 크림 덩어리 같은 그 음식(카이막)을 나는 먹어본 적이 있다. 이것은 한국인에게 있어 다소 자랑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대한민국 3대 해결사인 오은영 박사, 강형욱 동물훈련사 마지막으로 ‘백종원 요리연구가’가 추천한 만국 음식 대부분은 버킷 리스트에 오르는 형국이다. 대한민국 대표 구르메가 한 입 맛보고는 인상 푸욱 찌푸리며 “이건 꼭 드셔봐야해융” 하는데 어느 한국인 침이 고이지 않을 소냐. 그의 신용이 날로 높아갈수록 맛에 대한 보증은 국민 차원의 일이 되었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2>에서 아저씨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튀르키예 이스탄불이기도 했다. 그러며 튀르키예는 맛있는 음식이 많아도 너무 많아 문제라고 했다. 그렇게 대중 사이 회자 되는 그 음식을, 남편 훈 덕에 나는 죄다 먹을 수 있었다. 아저씨가 소개한 것보다 더 맛있는 이즈켄데르 케밥도 먹었다.
튀르키예 음식은 한국인에게도 잘 맞는 편이다. 오늘 분식을 먹었으면 내일은 해장국을 먹어야 하고, 그러니 내일모레는 돈가스를 먹어야 하는, 맛의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는 한국인에게 튀르키예 음식은 변화구가 필요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대체로 입맛에 맞다. 마찬가지로 튀르키예인에게도 한국 음식은 비교적 잘 맞는 듯하다. 우리 집 식탁엔 튀르키예와 한국 음식이 골고루 섞여 나온다. 엄격히 말하면 10:90 비율로 한국 음식이 압도적으로 많다. 서울에 사는 까닭에 대부분 한국식이지만 훈은 거기에 불만이 없다.
입맛이 맞지 않으면 같이 살기 힘들다(?)는 다분히 진심인 말들을 어려서부터 들어왔다. 부부 중 하나는 짜게 먹고 다른 하나는 싱겁게 먹고, 한 명은 육식을 즐기고 한 명은 채식을 즐기다 이젠 따로 먹는다는 소식도 들었다. 식탁을 둘로 갈라선 셈이다. 입에 맞는 음식을 ‘함께’ 즐기는 ‘식도락’이 부부관계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므로, 이런 이유로 갈라서기는 너무 많이 와버렸지만, 이제 시작하는 너라면 이왕 입과 맛이 잘 맞는 사람과 하라는 격언은 노년의 지혜인지 모른다. 그래서 국제부부라면 더욱 궁금해하는 모양이다. 너네 입맛이 달라서 어쩌느냐고. 엄마가 전화해서는 빠지지 않고 묻는 게 있다.
- 잘 해먹고 사니? 훈이는 한국 음식이 입에 맞다니?
이따금 엄마는 아빠와 돼지고기 문제로 신경전을 벌인다고 했다. 뜨거운 물에 푹 고은 삶은 돼지고기를 먹고 싶은 아빠와, 어려서 돼지고기 먹다 체한 기억에 돼지라면 냄새도 맡기 싫어하는 엄마. 그 생각이 나던지, 다른 나라, 다른 음식으로 다투지는 않는지 묻는다. 엄마가 하는 걱정 대부분은 공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지만 대답은 한다. 엄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 잘 먹고 있지. 훈이 내 요리 엄청 좋아해. 그치?
- 네, 엄마. 우리아내 음식 맛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통화를 끊고 두부랑 애호박, 감자, 고추, 양파, 각종 버섯을 넣고 슴슴하게 끓인 된장찌개에 밥 말아 한 그릇 뚝딱 비운 훈이다. “잘 먹었습니다” 한 마디 하고는 자기가 먹은 그릇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는다. 맛있었단다.
고로 입맛의 차이가 아니라 ‘맛’이 관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맛’만 좋으면 한국 음식이건 튀르키예 음식이건 상관이 없다. 물론 맛이라는 부분은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다수가 좋아할 객관적인 맛도 있으므로, 그 맛은 만국에 통한다고 믿는다. 우리 입맛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름을 말하는 그것이 모두를 달리 할 수는 없는 것처럼, 음식을 마주하는 우리도 그렇다. 나는 훈이 만든 튀르키예 음식을 즐기고 훈 역시 내가 만든 한국 음식을 즐긴다. 그 덕에 우리 집 식탁은 토마토와 고추장이 난무하는 다채로운 그것이 된다. 훈 덕분에 토마토를 자주 먹게 되고 훈은 나 덕분에 요거트가 아니더라도 다른 발효 음식을 챙겨 먹게 된다. 부조화 속에 조화를 이룬다. 그것이 조화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한국과 튀르키예 양 국간 결혼을 통해 알 수 있었지만, 어쨌거나 그것을 우리는 누리고 산다.
다름 아닌 그렇게 먹고 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