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이라는 세계(6)

2. 서울에 버티는 기분(음식)

by 손은경

손에 각도기와 자가 달린 것 아닐까 싶은 사람이 있다. 단 1c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날렵하고 예리하다. 나는 그 손을 보고 야무지다고 말한다. 훈의 손은 그러하다. 그래서인지 손품이 드는 일 전부 잘 한다. 설거지, 화장실 청소, 바닥 쓸기, 옷 개기, 하물며 요리도. 그의 손이 스친 곳은 늘 정갈해져 있다. 어쩌다 이런 남자가 튀르키예에서 이곳까지 와 준건지 모르겠다. 좀 개꿀인 결혼생활이다.



반면 나의 손은 글을 쓸 때 외엔 날이 서는 법이 없다. 뭉툭하고 구멍이 많아 스칠 때 마다 우당탕탕이다. 청소를 한 건지 안 한 건지, 분명 청소기로 훑고 갔는데 아까 본 머리카락이 그대로 있고 훈 표현에 따르면 내가 한 요리는 언제나



- 먹을 만~해요. 정말 먹을 만~해요.



맛이 없다고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젓가락질을 멈춰 이빨에 툭툭 치는 나를 보며 정말 ‘맛이 나지 않아서’ 맛이 없다고 에둘러준다. 그래서 맛이 ‘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훈이 주로 요리를 하고 나는 그 옆에서 쫑알쫑알 힘을 돋운다. 양파를 얇게 채 써는 훈을 뒤에서 안아 개들의 짝짓기마냥 몸을 앞뒤로 흔들기도 하고, 반응이 없으면 영국 아이돌 두아리파 노래를 부르다가, 이 모든 행위가 결코 힘이 되지는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땐 물 500ml 떠다 나르는 등의 시다를 한다. 그러다 훈이 프라이팬에 기름 넣는 꼴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 아아악! 베이비 이게 뭐요? 왜 이렇게 많이? 그만, 그마안!



프라이팬에 기름 따르던 훈이 소리 지르는 나를 보고 오히려 화들짝 놀란다.



- 왜? 요리하는 건데, 왜요?



무엇이 잘못인지 알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서둘러 훈의 자리를 꿰차 기름을 덜어내 보지만 고작 볶음 요리를 위해 프라이팬을 1cm나 채운 그것을 다 지우지는 못했다. 느끼한 음식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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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음식엔 기름, 버터가 많이 쓰인다. 작년 여름 터키에 지내며 철저히 알았다. 마트에서 올리브유, 해바라기유와 같은 식용 기름이 5L 단위로 파는 건 예사였고, 한 통도 오래가지 못해 텅 비었다. 한 집에 거주하는 가족 수가 많기는 하지만 그보단 조리법이 그랬다. 기름에 튀긴 피시(도넛 같은 빵), 버터에 달달 볶은 뒤 찌는 필라프(밥) 등등. 케밥을 감쌀 빵에도 풍미를 더하기 위해 고기에서 나온 기름을 톡톡 문대기도 했다. 부러 녹인 버터를 부어 먹는 음식도 많았고 때마다 나는 ‘Hayir!(터키어로 아니요)'라며 엄포를 놓았다. 그럼에도 반짝반짝 기름이 그릇 표면에 둥둥 떴다.



그래서인지 훈은 기름 씀씀이가 헤프다. 충분한 기름에서 음식 맛이 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볶음 요리엔 부침개에 쓰일 만큼 기름을 두르고, 부침개엔 튀김 요리라고 해도 될 만큼 기름을 붓는다. 그걸 본 나는 먹기도 전부터 기름에 전 느낌이 든다. 느끼한 음식은 많이 먹을 수 없다.





내가 유독 기름진 음식에 약하다면 훈은 해산물에 익숙하지 않다. 꼭 나 어려서 어떤 식단 앞에 힘겨워하던 그 모습이다. 홍합 미역국, 손톱만한 새우가 둥둥 떠다니던 김치찌개, 까만 점이 되어 나를 노려보던 걔들 눈, 퇴식구 앞을 지키던 영양사 선생님 때문에 억지로 먹고 토할 빤하던 기억이다. 멸치나 새우 비린내 같은 찝찌레한 그 냄새를 훈은 잘 견디지 못한다. 꾸역꾸역 먹던 초등 은경과 달리 훈은 비릿비릿한 그 냄새를 대번에 알아채고 말한다.



- 으으. 못 먹겠어요. 미안해요.



튀르키예는 의외로 해산물 소비가 많지 않다. 생각해 보니 튀르키예에 지내며 단 한 번도 해산물을 먹지 않았다. 유명하지 않아 그렇고 잘 먹지 않아 그렇다. 그리고 징그러워한다. 터키엄마는 새우가 꿈틀꿈틀 하는 것만 봐도 흉측하다며 눈을 질끈 감았다. 문어 같은 연체동물이 흐물흐물 바닥을 기는 것만 봐도 거의 울상이었고, 왜 먹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종교적 이유는 아니었다. 고로 지중해에 위치한 ‘안탈리아’에서 자란 훈이라도 도리가 없었다. 그래봐야 구운 생선 정도 먹었다고 했다. 해산물 고유의 바다 맛과 그들은 친하지 않았다.


다운로드.jfif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룰루의 햅삐라이프



그에 비하면 한국은 해산물 천국이다. 해삼 멍게 말미잘 주꾸미…. 우리가 이제는 먹지 않는 그것을 비싼 돈 주고라도 먹고자 하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통영이나 제주로 맛기행 간 티비 프로그램을 보면 내게 늘 묻는다.


- 베이비, 저거 뭐야? 징그럽게 생겼어요.

- 그거 해삼이야.

- 해삼? 그게 뭔데요? 조개?

- 그러니까 해삼은 말이지….



해삼이라 해삼을 해삼으로 부르는 것인데, 더 뭐라고 해야 하냐면. 그냥 먹고 이것이 해삼이구나 하고 알기를 바라며 말을 줄인다.



그래서 한동안은 바지락 칼국수에 젓갈 내음 가득한 김치는 먹을 수 없었다. 훈이 먹지 못하니까. 모락모락 김 나던 바지락 칼국수는 내 영혼의 누들이었다.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공부하겠다며 신성한 지랄을 하던 때가 있었다. 아침에 눈 뜨면 가볍게, 정말 가볍게 헹구고 슬리퍼 질질 끌어 도서관으로 향했다. 한 겨울이었는데 추운 줄도 모르고 그러고 살았다. 점심과 저녁은 늘 싸늘하게 식은 찬밥과 고추 장아찌, 계란 조림. 그런 것들이었다.



동생은 당직제 근무 중인 임상병리사 선생님이다. 이따금 야간 근무를 마치고 온 낮 11시면 톡을 보냈다. 언니, 오늘 나랑 언니네 도서관 근처 그 식당에서 바지락 칼국수 먹지 않을래. 한 집 살던 동생과 떠들던 유일한 시간이었고, 차갑지 않던 음식을 먹던 유일한 1시간이었다.



그러나 동생이 지켜주던 자리를 이젠 훈이 있어주며, 바다 비린내 나는 바지락 칼국수는 먹지 못한다. 본인 개의치 말고 편하게 먹으라고 하겠지만 편하게 들어갈 리가 없다. 그리고 훈도 나 때문에 버터의 풍미를 잃었다. 나는 나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먹으라고 하지 않는다. 심근경색 등 각종 혈관 질환이 떠오르기도 하고 훈이 내 곁에 오래오래 있어주었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해산물과 버터를 잃었다. 그러나 결코 잃지 않은 것이라면 사랑일 것이다.

괜찮아, 사랑이야.


(얼렁뚱땅 글을 마무리하게 된 감이 커 매우 유감스럽지만 오늘은 허리가 너무 아프므로 여기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