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이라는 세계(4)

2. 서울에 버티는 기분(언어)

by 손은경

아침으로 먹을 포도를 씻고 있었다. 늦게 일어난 훈이 어슬렁거리며 나오더니 얼굴을 찡그린 채 말했다.



- 베이비, 이가 아파요. 왼쪽 아래쪽이요.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어금니가 있는 왼 볼 여기저기를 찔렀다. 거슬리는 부위를 정확히 하고 싶은 것 같았다. 대충 바지춤으로 물기를 닦고 훈에게 다가갔다. 두 손바닥을 훈의 얼굴에 대며 말했다. 아- 해봐. 깍지 발 들어 동굴 같은 훈의 입 안으로 고개를 들이 밀었다. 왼쪽 어금니가 거멓게 썩었다. 치과의사가 아닌 나도 한 눈에 알아 볼 만큼 군데군데 까맣게 균열이 갔다. 통증이 느껴진다는 걸 보니 충치가 신경을 건드렸을 것이었다. 당장 치과부터 예약했다.



- 안녕하세요. 훈이라고 오늘 예약했는데요.

- 보호자님이세요?

- 네, 훈은 옆에 있는 분이고요. 혹시 외국인등록증 필요하세요?



언제나 그랬듯 대외 업무를 보는 자리라 나와 훈은 함께였다. 훈은 한국어가 서툴다. 6세 남아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하고, 지낸 세월에 비해서도 한국어가 훅 늘지 않았다. 이유가 있기는 하다. 서울 살며 거의 유일한 친구라면 ‘아시아에서 제일 예쁜 여자’로 알고 있는 아내인 나, 연구실 친구들뿐인데 이들과도 영어로 대화한단다. 한국에 있으나 한국어 늘 틈이 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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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다수는 영어에 약하고 훈은 한국어에 미숙하다. 그런 이들에게 ‘업무’용 대화가 원활할리 없다. 그런 까닭에 공적 업무는 내가 껴야만 한다. 보호자로, 번역가로. 가령 훈 개인적인 일로 은행이나 우체국에 가야 하더라도 나까지 따라가는 건 그래서다. 나라도 중간에 껴 “즛스즛스” 하고 의성어를 사용하던, 콩글리쉬를 하던, 한국 정서에 맞춰 내 마음대로 선택 내리던 나를 필요로 하게 된다.



- 훈씨.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 네. (훈을 콕콕 찌르며) 자기야 자기 차례야.

- 저, 혹시 설명해 주셔야 할 것 있으면 저 불러주세요. 로비에 앉아 기다릴게요.



아들 같은 남편을 진료실로 들여보내며, 노트북을 꺼내 그날까지 해야 할 일을 급히 처리하기 시작했다. 따라오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방법이 없었다.



훈에게 한국 그리고 서울은 미지의 세계일 것이다. 모르는 것, 궁금한 것 투성이. 6세 남아를 길러본 경험은 없지만 어디서 들은 기억이 난다. “엄마, 이건 뭐야? 저건 뭐야?” 하고 물을 때 마다 엄마 등에 식은땀이 난다고. 이처럼 내게도 외국인 남편에게 하나하나 가르쳐 줘야하는 일은 늘 발생한다. 특히 나도 모르는 한국문화와 역사에 대해 훈이 물을 때만큼 난처한 순간은 없다. 훈에게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므로 전지전능한 한국인으로 비춰지는 듯하다. 굉장한 부담이다.



- 베이비, 1900년 초반에 한국에 이 사건이 벌어졌잖아. 베이비는 어떻게 생각해?



부모라고 자식을 다 아는 건 아닌 것처럼, 한국인이라고 한국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받아들인 한국도 많아 ‘왜’인지 알지 못한다. 감히 의문할 틈이 없었다. 1900년 초반, 역사에 남을 ㅇㅇ사건이 벌어졌고 시험에 나오니 중요하다 까지만 나는 안다. ‘왜’와 같이 철학할 시간은 갖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줄 알고, 살았다.



- 어…. 그러니까….

- 우리아내 한국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남편은 아내를 정확히 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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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에게, 현업 엄마/아빠로 살고 있는 인생 선배들 말하길 아이는 꼭 ‘낳아보라고’ 했다. 아이를 통해 다른 세상을 살게 된다고, 비로소 배우고 있다고. 집에 있는 아이가 떠오르는지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마치 그 지침은 자기 자녀를 향한 사랑의 확신처럼, 확신할수록 ‘낳아보라’고 말했다. 행복감을 전파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희미한 메시지를 보낸다. “새겨 들을게요” 하고 더 말하지 않는다. 실은 저도 한편으론 어린 아들을 키우고 있는 걸요. 저 혼자 응가 누고 샤워하고 돈도 벌어오지만 보호해야 할 키 큰 아들이 있는 걸요. 이 아이만으로 행복과 육아로 벅찬 걸요.



내일은 훈이 한국어 배우러 센터에 가는 날이다. 영주권 취득 희망자를 위해 한국 정부에서 정한 교육이다. 따라 읽기, 받아쓰기 한 숙제를 보니 삐뚤빼뚤 오타 같은 것들이 문장에 뒤범벅이다. 그래도 2년 전에 비하면 훨씬 좋아졌다. 무얼 전하고 싶은지는 알아챌 정도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 한국어가 좋아지고 있다.



교육을 통해 한국어가 부쩍 늘었으면 좋겠다. 그 어설프고 엉성한 발음으로 한국어 할 때, ‘시발 개샛기. 누가 우리 아내를 괴롭혔어요?’ 하는 것도, ‘결혼해 볼래?’ 하는 것도 사랑스럽지만 말이다. 아들아, 엄마도 때론 네가 스스로 할 줄 아는 일들이 늘었으면 한단다. 가령 혼자 치과를 간달지, 스스로 은행 어플리케이션 이용해 송금을 한달지 어렵지 않은 것들.


서울에 살아남기 위해, 잘 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