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경 글방 : 글 공부
글에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서술자(=화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경험(사건)이 쓰인 글엔 인물도 있지요.
인물은 주인공과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인물로 나뉩니다. 위에선 배경인물을 말합니다.
개인 경험을 쓴 에세이의 경우 보통 서술자는 '나'입니다.
고로 시점으로 말할 것 같으면 '1인칭'이며 즉, '나'의 시점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해석한 것이 글에 쓰입니다.
게다가 서술자가 곧 주인공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나'가, '나'를 주인공으로 한 글을 전개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내게 일어난 사건을 내 시점에서 풀어나가는 글이지요.
여기서 기습 질문 들어갑니다.
어렵지 않게 "전부"라 답하셨을 겁니다.
서술자인 '나'는 주인공인 '나'의 마음, 생각, 느낌을 전부 알 수 있습니다.
왜냐구요? 내가 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그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느낌은, 모두를 알고 있지요.
문제는 1인칭 시점의 에세이 쓸 때, 보여주기(묘사)가 잘 안 되는 이유가 여기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이야기를 쓰므로 '가치판단' 한 문장이 범람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보여주기(묘사) : 본대로 그려내듯 쓴 것
*가치판단 : 작가 판단에 따라 가치를 정해버린 것, 보여주기가 생략되어 있음
- 그 꽃은 예뻤다
'예쁘다' 는 어디까지나 작가 판단에 따른 꽃의 가치입니다.
한편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잎은 몇 장인지, 무슨 색인지, 어떤 모양인지 따윈 전혀 보여주지 않았지요.
이렇게 가치판단식으로 쓰인 경우 독자의 판단여지를 빼앗는다는 치명적 단점이 생깁니다.
물론 '예쁘다'고 쓸 수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작가가 단정지은 결론으로 쓰였음은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예쁜지 안 예쁜지는 저마다 그 꽃을 '보고' 판단할 문제인데 작가가 대번에 아무튼 예뻐! 하고 일러주었으니까요. 심지어 독자는 그 꽃이 어찌 생겼는지 조차 모릅니다. 작가가 보여주지 않았으니까요. 아무것도 그릴 수 없고 공감할 수 없고, 그렇기에 '예쁘다'는 말은 다소 일방적으로까지 들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타인이 읽어주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이왕 읽고 재밌어 하기를 바라고요.
그러려면 독자 스스로 판단 할 여지들을 글에 많이 심어주어야 합니다. 작가가 '예쁘다'고 말하지 않아도 독자 제 알아서 '우와, 예쁘겠다' 하고 눈가에 무지개빛 돌게 하는 그런 글이요.
1인칭 시점에서 개인 경험이 담긴 에세이를 쓰다 보니 아무래도 보여주기(묘사)가 어렵기는 하겠지만, 좌우당간 보여주기도 해야 합니다.
- 길가에 꽃이 피었다. 새끼 손톱보다 작은 분홍색 꽃이 옹기종기모여 한 다발을 이루었다. 잎이 여리다. 콧바람에 잎이 흩날릴 것 같아 가까이 두었던 고개를 멀리 치웠다. 오래도록 그 자리에서 날 반겨주었으면 했다.
내가 보았다는 사실이 독자도 보았다는 것은 아니며,
내가 내린 감정을 독자 또한 똑같은 감정이라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판단은 독자가 할 수 있도록 그저 '보여주세요.'
그래서 지금 여러분 눈 앞엔 무엇이 보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