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앞에 서는 우리의 민낯
그동안 많은 준비를 해왔습니다.
성공적 고백을 위해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무엇을 입으면 좋을지 목소리는 도레미파솔 중 뭘로 할지
입가는 흘러내리지 않기로
고백하기 전과 후 말의 순서는 이러하기로.
연습도 많이 했고요
자신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정도로요.
그리고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그러니까 널 좋아해!"
아뿔사. 이게 아닌데.
준비했던 말, 순서, 표정, 어조 따위는 모두 잊어버린 채
홍조 띈 얼굴로 '좋아해' 고작 한 마디하고 말았지 뭐예요.
백지 앞에 서니 턱, 하고 얼어버렸어요.
단순한 진심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좋아한다는 말만 떠올랐어요.
쓰는 일은 꼭 고백 같아요.
백지 앞에 나는 한없이 투명해져요.
무지 준비했는데, 전부 구상해 두었는데
백지를 만나는 언제든 머리가 하얘지더니 그냥 내가 되어요.
내가 널 그토록 좋아하나봐요.
하얘지다 못해 투명해지는 걸 보면.
그래서 언제쯤 우리는 공평해질까요.
일방적이고 싶지 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