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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Nov 11. 2022

계획된 만남이었다고 말하면, 믿을 수 있을까

제1화

좋은 아침.

잠에 깨 눈을 뜨니 짙은 쌍커풀에 기다란 속눈썹 눈이 깊게 패인 한 남자가 내 왼편에 자고 있다. 이국적 외모로 외국에 온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얼굴이다. 볼 때마다 낯설지만 익숙해진 그. 베개에 얼굴이 눌려 그럴까, 입을 살짝 벌린 채 딥슬립에 빠진 모습인데 그러다 갑자기 소리를 낸다. 뿡. 잠결에 방구를 낀다. 외국인도 방구가 나오는구나, 하는 미묘한 인간적 동질감에 키킥하던 찰나 웃는 게 들렸나보다. 자고 있던 외국 남자가 게슴츠레 눈을 치켜뜬다. 그리고 말한다.     



“베이비, 잘 잤어요? 몇 샤?(몇 시야?)”     



아침 7시라고, 아직 30분은 더 잘 수 있다며 그에게 기쁨을 선물한다.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준다. 30분은 더 누워 쉴 수 있게 된 그는 내 쪽으로 누였던 고개를 휑- 돌려 반대편으로 향하게 한다. 그러다 뿡. 다시 방구를 낀다. 한국인인 나와 다르지 않은 소리가 난다. 생리현상도 닮아가는 우리는 2년차 튀르키예-한국 국제부부다.     



우선 그를 소개하겠다. 조금 아까 내 왼편에 누워 방구를 낀 그의 이름은 훈, 나의 남편으로 결혼을 계기로 한국에 살고 있는 튀르키예 사람이다. 그런 까닭에 적잖은 마음고생과 향수병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현재는 공과 대학원에서 소음과 진동을 연구하고 있다. 아내 은경을 소중히 여긴다.     



그리고 나의 이름은 은경, 훈의 아내이고 그를 한국으로 불러들인 장본인이다. 나 또한 시댁인 튀르크예에 가면 외국인으로 통하나 한국에서는 내국인으로 살고 있다. 지난 3월엔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나와 글을 매체로 창작하는 전업창작자로 지내는 중이다. 남편 훈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우리 첫 만남은 서울의 한 펍에서였다.     



“아 오늘은 진짜 취하고 싶구나, 친구여. 굉장히 속상한 일이 있었어.”

“무엇이기에 그러니 친구여? 일단 한 잔 마시게나.”     



그날은 오지라퍼에게 실속 없는 꾸지람을 들은 날로, 그것은 소음과 같아 귀를 막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깡이 없어 참고 듣고 있어야 했다고 기억한다. 결국 속으로 삭히던 화는 그날 술로 풀 수밖에(?) 없었고 연초를 기념해 만나기로 한 연과의 술자리에서 나는 제대로 취하게 된다. 소주와 맥주를 섞어 먹은 게 화근이었다. 일순간 필름이 끊겼고 기억이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모 오픈 펍에 있었다.     



“괜차나요?”     



뭐… 뭐지.

정신을 차리니 한 외국인 남자가 나를 부축하고 있다. 세상이 빙그르르 도는 걸 보니 나는 어지간히 휘청였나보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그는 마치 길 잃고 헤매는 어린양이 ‘나(=생판 처음 본 한국인)’라는 것처럼, 측은지심 가득한 얼굴이었고 환영이었을지 모르나 눈가엔 눈물이 맺힌 것도 같았다. 걱정 그득한 울상이었다. 순간 그의 따스함에 술이 깼다. 혈중 알코올 농도 0.3%에서도 알아챌 법한 온도였다. 그는 첫 만남부터 다정했고 진심이었고 그걸 나는 단번에 캐치했다. 직장생활만 9년차였다.     



훈은 왕십리에 위치한 H대학교 기계공학부로 유학 온 대학생이라고 했다. 나는 서울 도심에서 일하는 직장인이었다. 우리 신분은 학생과 사회인. 무려 6살 차이가 났고, 물론 내가 먼저 태어난 사람이었다. 연애에 있어 연하라면 뒷걸음치던 나였다. 허나 ‘그’라면 예외조항을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사려 깊은 자라면 숫자라는 편견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그렇게 펍에서 휘청이다 훈의 부축을 받던 날, 우리는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될 것은 금방 된다.     



우리는 매일 만났다. 또 보자는 인사를 뒤로 다음날도 만났고, 그 다음날도 만나 데이트를 즐겼다. 소위 꽁냥꽁냥한 하루를 보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 연애에 치명타가 있었다. 학기를 마친 훈이 곧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귀국까지 3주(실은 3주를 밑도는)가 남은 상태였고 그때는 1월 초순이었다.      



“꼭 돌아와야 해. 꼭! 알겠지?”

“걱정하지마세요. 꼭 올 거예요. 너를 만나러 꼭 다시 올 거야. You know me.”     



글 쓰는 지금 막 떠오른 건데, 훈은 튀르키예 복귀를 미룰까도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내가 너무나 좋았던 게로다. 허나 그곳에서 졸업이랄지 마무리 지어야 할 일들이 있어 나는 남으려는 그를 말렸고, 후에 이 일은 뼈아픈 후회가 되기도 한다.     



(계속)  




이 글은 네이버 연재 중인 글로, 원본에 해당합니다.

https://naver.me/58FhjPz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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