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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Sep 04. 2020

불안해서 혼이 났다.

외출 중 핸드폰이 꺼졌다.

29%의 충전률을 가지고 집 밖을 나갈때 부터 간당간당하다 싶더니, 어느 순간 꺼진 폰은 켜질 생각이 없었다. 재부팅 버튼만 5번 정도 꾹꾹꾹꾹꾸욱- 눌러 보았을 뿐이다.


읽을 책도 가지고 나가지 않았다.

이동 시간 내 읽으려 한 권 들고 나가는게 습관인데, 오늘은 그마저 깜빡했다. 핸드폰 꺼진 후 가방에 어떤 책 들어있나 떠올리다 이내 '망했다.'했다.


전철에 앉아 있는 시간이 공허해졌다.

멍하니 의자에 기대 앉아 불안에 떨었다. 비어있는 시간, 핸드폰 꺼짐과 읽을 책 없음은 나에게 마음 불편한 일이 되어버렸나 보다. 흔들리는 동공으로 좌우를 스윽 쳐다 봤다. 기대어 앉아 있으니 자연스레 왼쪽과 오른쪽 승객이 쥐고 있던 휴대폰 화면 눈에 들어왔다. 왼쪽 여자는 영어로 쓰인 메일을 읽어나가고 있었고, 오늘쪽 남자는 카톡 한 번 유튜브 한 번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오른쪽 남자 여친의 애칭을 알아 버렸다.


"쭁~♥"


카카오 상단 "쭁~♥"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강아지와 카톡을 하는 건 아닐테니, 여자친구가 맞을테다. 여러모로 낯이 부끄러워졌다. 당황한 나머지 급히 시선을 돌렸다. 몰래 훔쳐본 걸 들킬까 불안했다.


편히 시선 둘 곳이 없어졌다.

패망한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자니. 맙소자 작가병! 글감이 떠올랐다. 바로 이 순간 말이다.


그러나 짐에겐 종이 한 장과 펜 한 자루가 당시에 없었다.

내가 나 때문에 미쵸버리기 직전이었다.

핸드폰은 안 봐도 죽지 않고 책은 집에 가 언제든 읽을 수 있지만, 글감이 떠오른 지금은 오직 이 순간에만 존재했다 사라지는 것이기에 메모장과 펜 하나 들고오지 않은 짐이 한스러웠다.(헥헥)

불안해서 혼이났다.

핸드폰과 책 없는 사이, 그 시간에, 그 덕분에 떠오른 글감 몇개를 메모장에 적을 수 없어 부랴부랴 암기를 시작했다.


"나는 안다. 나는 안다. 나는 안다. I know. 20대, 지난 날."

"불안해서 혼이 났다. 불안해서 혼이 났다. 불안, 혼남."


불안해서 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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