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은경 Feb 06. 2023

글 쓸 때 우리는 두 개의 ‘나’로 분리된다

글 쓸 때 만큼은 두 개의 ‘나’로 분리된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제 있었던 일을 글로 전하려는 사람입니다. 이 흥분이 사라지기 전 글로 봉인해 두어야겠다며, 고요한 밤을 빌려 책상 앞에 앉습니다. 마주한 모니터엔 하얀 바탕이 펼쳐집니다. 깜빡이는 커서는 메트로놈 같아 압박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쨌든 한 문장 잡아 운을 떼기 시작합니다.     



'다나카상 콘서트는, 정말 혼또니 최고였따요!'



출처 : 뉴스1



그때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온 것처럼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나’에 지나지 않았던 그가, 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글을 쓸때로, 그는 둘로 분리되었습니다. 다나카상 콘서트에 있던 ‘나’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 이 둘로. 그는 더 이상 하나가 아닙니다. 둘인 채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타이핑 하는 그의 손이 분주해 보입니다.     



둘은 글 쓰는 동안 각자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다나카상 콘서트에 있던 ‘나’는 이야기 속 등장인물인 주인공 역할을 합니다. 꺄악, 소리 지르고 따라 부르다 마지막엔 울기까지 하고요. 반면 책상 앞에 앉은 나는 그날 주인공에게 있었던 사건을 해설함과 동시에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합니다. 수신자를 생각한 일이죠.     



주인공 : 이야기 속 등장인물, ‘나'
화자 : 주인공에게 일어난 사건을 해설하는, 글 쓰는 ’나’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글의 경계를 넘나들더니, 둘의 화음으로 글 한 편이 탄생합니다. 정작 본인은 두 자신이 음을 쌓아가며 글을 완성했다는 걸 전혀 모르는 눈치지만, 어쨌건 한 편 완성입니다. 이제 다시 하나의 나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분리된 나는 글을 마무리 지음과 동시에 ‘나’ 하나로 돌아옵니다. 현실이라는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살아가며, 언젠가 또 쓰고 싶을 인생 스토리를 마중하러 갑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일상을 납니다.     



출처 : 손은경 글방



쓸 때, 우리는 분리된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계셨건 모르고 계셨건, 우리는 글 쓸 때 만큼은 둘로 분리됩니다. 현실이라는 사건 속 등장인물에 해당하는 주인공이 아니라,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로 역할 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심지어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인 에세이라도, 그래서 글의 주인공은 곧 나이자 글 쓰는 나, 같은 나일지라도 말이지요. 물론 내가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므로 흐름이나 이야기 자체적 측면에서는 크게 달라지진 않겠습니다. 다만 두 개로 분리된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만 분명히 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생깁니다. 가령 시제(발화시 또는 사건시)의 기준을 잡을 때도, 시점(1인칭이나 3인칭, 주인공 또는 관찰자 시점 따위)을 정할 때도 말입니다. 



‘전제를 알고 나면 기준은 쉽게 잡힙니다.’ 


    

참고로 글의 장르마다 다르기는 합니다. 소위 실용서에서는 분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물인 주인공은 등장하지 않은 채, 화자가 논리적으로 글을 전개하는 게 보통이기 때문입니다. 허나 경험에서 우러난 에세이 쓸 때, 둘로 분리된다는 사실만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도 글 쓰는 세세한 포인트를 달리할 수 있겠지요?          






글 쓰며 나를 돌아본다는 것은 어쩌면 그래서,

주인공이 아니라 화자로서

주인공인 나의 이야기를 전할 때가 보통이기 때문은 아닌지.     


문득 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잘 쓴 글이란, 어떤 글을 말하는 것일까?(실천편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