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은경 Feb 22. 2023

외국인이 본 한국 신기한 점 3가지

제8화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나’ 또는 ‘우리’가 어떻게 보일지 몹시 알고 싶어 한다. 딱히 이유는 모른다. 나 어때, 라는 물음을 즐기고 그래서 튀르키예 사람인 훈은 한국 어떻데, 라며 건네는 질문에 노출된 것 밖에. 이방인 눈에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일까. 몹시 알고 싶던 그들이 물어왔다.     



“그래서 훈은 한국 뭐가 제일 놀랍데?”     





1. 빡세게 일해요

간혹 훈이 자국에서 발행한 경제 다큐멘터리 혹은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규네이 코레(Guney Kore)’라는 음성이 들린다. 튀르키예어 규네이 코레란 ‘남한’이라는 뜻이다. 작년 시댁에 머물며 나를 소개할 때마다 줄곧 해왔던 말이라 기억하고 있다. 진행자 또는 패널이 수번에 걸쳐 남한 어쩌고저쩌고 한다. 그 외의 언어는 ‘프듯비이트리이리라랄~’이라며 소리 나는 대로만 알아들을 수 있다. 답답한 나머지 나는 훈에게 퍼뜩 번역해 달라한다. 그럼 장황하게 해석해 주는데 결국은, 그런 한국을 닮아야 한다는 것. 튀르키예 경제학자를 비롯해 훈은 ‘한강의 기적’을 높이 산다. 해방(1945년) 당시 45달러에 불과했던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이르는 경제 규모로 성장하기까지 한국인이 쏟은 근검절약 정신.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튀르키예와 비슷하던 한국 경제 수준이 이토록 급격한 성장을 이룰 수 있던 원동력을 알고 싶어 한다. 아, 한국이 대단한 나라로구나. 문득 외부에 비친 내 나라의 위상을 알게 되며 국뽕 같은 게 차오르려는데, 번역을 마친 훈이 말미에 덧붙인다. 한국생활 2년차, 이제 알 것만 같아. 한강의 기적은 ‘빡세게 산’ 한국의 결과야. 대단히 빡세. 정말이지 한국은 빡센 삶의 연속이므로, 훈이 피자집 아르바이트하며 주방 형에게 배운 그 은어-빡세-는 그나 나나 곧잘 써먹게 된다.     



훈이 처음 놀란 것은 한양대학교 유학생 시절이었다. 한국사람 공부 너무 많이 해요. 공부‘만’ 해요. All day long Study. 수업 마친 학생들은 주로 도서관에 가서 그날 배운 것을 복습하거나 영어 시험 준비를 했다고. 그 광경을 본 훈은 질식할 뻔했다고 한다. 나가 노는 학생은 거의 훈 하나였다고 한다. 온종일 도서관에 살다 하루가 끝난다는 사실에, 이것이 인생일까. 반문해 볼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한때, 직장생활과 집필을 병행하며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밤 11시에 하루를 마감하던 나를 보면서도 그는 말했다. 우리아내 좀 쉬세요.     



2. 외모에 신경 많이 써요

어느 날인가, 훈이 말했다. 베이비, 내가 한국 사람 특징 발견했어요. 한국 사람은 엘리베이터 타면 내려가는 동안이나 올라가는 동안 꼭 거울을 봐요. 내가 안 보는 사람 본 적 없어요. 특히 여자들은 더 거울을 봐요. 그 말을 듣는데 어찌나 공감가던지. 풉, 터진 실소를 참지 않고 우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옆에 있던 훈의 팔뚝을 찰싹찰싹 때리기도 했다.     



한국인은 타인을 의식한 ‘외모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여성의 경우 노 메이크업 상태를 부끄럽게 여긴다는 점에선 다소 놀랐다고 한다. 그의 장모인 우리엄마가 내게 자주 하는 한소리에서 알게 된 듯도 보였다. 엄마는 내 얼굴이 보이는 틈-영상통화나 사진 모든-마다 말했다. 얼굴이 그게 뭐야. 영양 크림은 바르니, 립스틱도 좀 바르고. 집에서만 그런 거지? 밖에 나갈 땐 단정하게 하고 나가는 거지. 옆에 있기라도 할 때면 본인 호주머니에 있던 립스틱을 손수 꺼내주기도 한다. 립스틱 건네는 엄마 표정이 밝지 않다. 푸석푸석 생기 싫은 딸을 보기 싫은 모양이다. 그리고 모두를 옆에서 본 훈은 의아해한다. 우리아내 예쁜데, 립스틱 안 발라도 괜찮은데. 흠.     



훈은 외모는 주관적인 것이라고 했다. 우리아내가 나에게는 최고 뷰티지만 ‘다른 남자에겐 그렇지 않듯(왜 이 부분을 강조해 말한 걸까)’, 본인 또한 마찬가지라고 했다. 우리아내에게나 나는 멋지지 그리고 그런 나를 사랑하는 건 우리아내지. 그래서 내가 화장을 하건 안 하건, 세수를 하건 하지 않건 그 자체로 훈에겐 예뻐 보이기 때문에 애써 치장할 필요 없다고 늘 말해준다. 그때, 웬 초췌한 여성 하나가 거울에 보였는데, 그것 때문에 나는 훈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부릅뜬 두 눈으로 내 손을 잡은 채 말하는 훈을 보며 그저 받아들여지게 됐다. 주관이 뚜렷한 남편에겐 나도 아시아 최고 뷰티가 될 수 있어. 훈, 따뜻해….      



그러나 안쓰럽게도 한국인은 그걸 모르는 눈치라고 했다. 모두에게 예쁘거나 멋질 필요는 없는데, 하물며 그럴 수도 없는데. 두 달 전 만났을 때와 달리 부자연스럽게 부푼 입술, 한층 두꺼워진 쌍커풀 라인을 하고 온 내 친구 연을 보며 성형‘수술’의 아픔을 온몸으로 느끼던 훈이다. 두 팔로 반대편 어깨를 감싸 부르르 떨었다.     





3. 서로한테 관심 없어요

작년, 튀르키예에서 2달하고 2주 지내는 동안 받은 느낌을 짧은 감상평으로 대신하자면 ‘여전한 유대감’. 한국에서 우리부부 왔다는 소식에 어느 날은 동네 주민들이 모이기도 했고, 친척 식구들은 하던 일도 미루고 투어를 해주는 등 그곳에서 사랑과 보호 받고 있음을 듬뿍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가족 간 친척 간 주민 간, 심지어 친구의 친구 간, 친구의 친구의 친구 간에도 존재하는 결합이었다. ‘내 사람’을 돕거나 환대하겠다는 의지의 다름 아니었다. 그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반면 제기동 신혼집을 비롯해 지금 거주하고 있는 강서구까지, 우리는 아무와도 소개를 주고받지 않았다. 하물며 목 인사조차.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나를 보더니 무엇이 어색했던지 계단을 택해 성큼성큼 올라가는 거주민도 있다. 나야 이 생활에 젖어 있으므로, 늘 그렇듯 흐르는 물처럼 받아들였지만 훈에겐 다소 신기한 상황이던 모양이다. 외출 마치고 집에 들어가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훈이 말했다. 우리는 동네 친구 없어요. 이 건물에 사는 아무와도 인사하지 않았어요. 듣던 그 순간, 알 수 없는 아찔함이 온몸을 관통했다. 손과 입이 뻣뻣하게 굳었다.     



훈의 문장은 개인화를 넘어 고독화 되어가고 있는 한국인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는 부유해졌지만 부풀어진 공간으로 차갑고 쓸쓸한 바람이 인다. 한국, 개중 서울은 유달리 외롭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튀르키예에 지내던 내내 행복으로 충만했던 것은 한국을 떠나서라는 단순한 이유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보단 유대감 덕분이다. 거기서 외국인이던 나는 환대로도 모자라 융숭한 접대(hospitality)를 받으며 매일을 보냈다. 한국에선 모든 나 혼자 헤쳐 나가야 할 것처럼 느껴지던 일들이 튀르키예에선 그렇지 않았다. 묻고 요청하면 그들은 기쁘게 응해주었고, 그것은 도움을 청한 나뿐 아니라 돕는 그들에게도 기쁨이었기에 나는 한 순간도 외로움을 느끼지 못했다. 이방이었음에도 언어가 통하지 않았음에도. 그러다 서울에 돌아와 다시 우리 둘만 남은 것처럼 인생을 헤엄쳐 나가고 있다. 이따금 유대감이 너무도 그리울 때가 있다.     



그 밖에 한국인이 외롭다고 하면서 핸드폰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점이 인상적이라 했고, 지하철 탈 때, 특히 2호선에서 할머니나 할아버지 빨리 나가려고 앞서있던 사람을 밀친다는 점이 힘들다고 했으며, 가장 맛있는 음식은 돈가스와 짜파게티, 가장 맛없는 음식은 멸치라고 했다.



(계속)




이 글은 네이버 연재 중인 글로, 원본에 해당합니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4799229&memberNo=38753951



매거진의 이전글 먼 발치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