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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Mar 08. 2023

시댁이 외국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제10화

“아, 시댁 가고 싶다.”     



시댁 가고 싶어 죽겠다는 나의 한탄에, 앞에 앉아 있던 그녀 얼굴이 뭉크의 <절규>처럼 되었다. 벌어지고 일그러진 표정이 좋지 않다. 그러곤 <절규>하는 그 얼굴로 나를 올려봤다 내려 봤다 한다. 다소 이질적인 듯 흠칫 경계를 한다. K-며느리에게 있어 시댁 방문이란, 대한남아에게 있어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군 복무처럼, 가능한 멀리하고 싶은 종류의 것이기에. 시댁에 가고 싶다는 나의 고백이 해괴한가보다. 시댁 갔다 돌아오는 길엔 늘 남편과 다툰다고 그녀가 말했던 기억이 났다.     



그러나 시댁이 튀르키예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시댁 가는 길은 여행과 방문 그 어디쯤 된다. 해외여행 가는 들뜸으로 주섬주섬 캐리어에 옷가지를 챙기고 관광이 아닌 ‘가족’이라는 분명한 목적으로, 한국에서 조금씩 사 모은 선물을 옷가지 옆에 차곡차곡 정리한다. 그들에게 한국 이모저모를 소개하고 싶을 때마다 하나씩 사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캐리어 절반이나 차지다. 한편 한국산 선물은 캐리어에 들이앉아 발신되기를 기다린다. 발신할 것들은 침묵을 지키며 수신자에게 가닿을 날을 고대한다. 수신자가 있는 여행. 그렇게 여행을 준비하며 가족을 챙기는 일, 우리에게 시댁 행은 기다림 끝에 만난 설렘이다.     



@알라니아, 튀르키예



작년 여름, 처음 시댁에 갔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가 6월 초였지 아마. 시댁 방문은 우리가 비행기를 탄 궁극적 목적이었다. 그것은 여행이라기 보단 수신자를 향한 발신의 시작. 그러나 곧장 시댁으로 가지 못한 것은 시댁이 있는 안탈리아에 도달하기까지, 실로 여행이라 불릴 법한 것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 곳곳에 흩어져 지내는 친척집에 들르게 되었다. 한국으로 따지면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돌게 된 셈이었고 시작은 이스탄불이었다. 그곳엔 외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이스탄불 국제공항에 도착한 다음날 우리 부부는 외할아버지 댁에 들렀다. 외할아버지는 막내아들, 그러니까 훈의 작은삼촌 가족과 함께 살았다. 그날은 갓 2살이 된 ‘이보’까지, 총 여섯 식구를 한 방에 만날 수 있었다.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식사를 한 뒤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이스탄불 대표 관광지들을 돌았다. 이스탄불은 튀르키예의 수도는 아니지만 가장 도시다운 면모를 보이는 대표 여행지다. 반면 술탄 아흐멧 모스크, 아야 소피아 등 역사 유적지로도 의미 깊은 곳이라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 내가 가장 사랑하는 튀르키예가 있는 곳이었다.     



튀르키예는 땅이 넓어 지역마다 굉장히 다른 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매력이다. 코냐에도 갔었다. 코냐는 튀르키예 중부에 있는 도시로 둘째 이모와 그의 자녀가, 자녀의 자녀가 살고 있던 곳이었다. 코냐는 드넓은 평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르막이 없고 내리막도 없는, 비교적 조용한 도시. 종교적 색채가 강해 히잡 쓴 소녀들을 제법 자주 볼 수 있던 날들이 기억난다. 신기한 눈으로 나를 보기에 나 또한 응답할 목적으로 그들을 쳐다보니, 휙 하고 시선을 숨겨 저들끼리 속삭이던 기억도.     



앙카라에도 들렀다. 이곳엔 훈의 학교 일정 때문에 온 것이었지만 거주하고 있던 친척이 많았다. 한국의 서울처럼 직장이 주로 앙카라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사촌 형 둘과 그들의 가족, 사촌 누나를 만났다. 다들 일과 집을 반복하는 앙카라 생활이 재미없다고 했지만 내게는 마냥 즐겁던 나날. 상업적으로 발달했지만 이스탄불 보다는 볼거리가 없긴 했다.     



그렇게 이스탄불과 코냐, 앙카라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얼굴도 보고 함께 시간도 보낼 겸 들른 친척 방문이, 한국에서도 하는 ‘새아가 투어’ 같은 게 된 듯도 했지만, 결론만 놓고 보면 이곳저곳을 여행한 셈. 친척들에게 인사(?)를 다니며 나는 마냥 즐거웠다. 여행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갓난아이로 돌아간 듯, 눈앞에 펼쳐진 모두가 새롭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눈과 귀의 호강쯤으로 해둘까. 낯선 언어로 적힌 간판, 나와 다른 얼굴, 서로 목소리 내고 있음에도 통하지 않는 대화, 그게 답답한 우리, 그래서 안도하는 우리, 내가 한국어로 무얼 말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임에 자유로운 나. 반면 어른의 일상이 무료한 것은 새로움이 드물기 때문이라고 나는 또 생각한다. 아무것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미지의 땅으로 들어가는 일은 그래서 신선한 긴장을 유발한다.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 나는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친척집 방문이었지만 곳곳이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안탈리아, 튀르키예



일정의 마지막, 드디어 시댁이 있는 안탈리아로 향했다. 안탈리아는 튀크키예 남부에 위치한 (네이버 정보에 의하면)지중해 최대 휴양지이자 고대문화유산이 가득한 관광도시다. 이곳은 자국민 뿐 아니라 뭇 외국인의 사랑을 받는 곳으로 한국의 제주, 일본의 오키나와, 미국의 하와이를 떠오르면 좋을 것이다.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이기 제격인 곳이다. 온화한 기후 덕에 건물 3층 크기만큼 성큼 자란 야자수가 쉽게 보인다. 야자수 긴 몸뚱어리를 쭈욱 따라가면 저 머리에 잎이 삐죽삐죽 나와 있는데, 그 모습은 휴식과 요양을 상징이라도 하는듯 마음을 환기한다. 지중해에 딱 붙어 있는 도시이므로 차로 1시간 거리마다 해수욕장이 있다. 하루는 가족들과 해수욕장 세 곳을 옮겨 다니며 물놀이하기도 했다. 코냐알트, 올림포스, 하나는 기억나지 않음. 그러며 놀란 것 하나. 사족이긴 하지만 젊은이들을 제외한 아주 보편의 튀르키예 국민들은 한국에 대해 그다지 잘… 모르는 듯하고 남한에서 왔다고 하니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 이름부터 말한다는 것. 한국에 대한 배경지식은 의외로 많지 않다는 것. 그래서겠지? 코냐알트 해변에서 나를 본 한 중년 여성이 팔레스타인에서 왔느냐고 물었던 것. 엄. 그러니까 K-열풍은 튀르키예 청춘들 사이 국부적으로 부는 훈풍과 같다는 것.     



많은 이들이 막연한 환상으로 바라보는 것과 달리, 국제부부로 살기가 늘 꿈결 같지만은 않다. 녹녹하지 않을 때도 많고 그러므로 결심 하나 내릴 때 마다 깊이 숨 들이마시어야 하는 일들도 잦다. 그럼에도 나는 언제고 훈이 튀르키예 사람이라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훈이 내게 한국 너머를 보여주었기에. 달토끼 모양으로 그려진 한국, 그 경계를 지우개로 지움으로 지평을 넓혀준 그가 내게는 살아 숨 쉬는 책 같은 존재라 그럴 수 있다. 훈이 아니었더라면 색채 가득한 튀르키예라는 나라에 와볼 생각이나 했으려나. 여기, 여기저기를 돌며 이런 날씨와 이런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체화할 수 있었으려나.     



시댁 가는 길이 여행이라면 시댁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이별이다. 만나면 반갑고 헤어질 땐 언제 또 만날지 몰라 하는 진짜 안녕. 다시 만날 날 까지, 진한 그리움을 가지고 살아야겠지만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헤어질 때의 슬픔도 아쉬움도. 그리고 마침내 시댁에 가게 되었다. 출국 D-2을 남기고 매일 ‘앗싸!’ 외치는 나를 보며 훈은 자기보다 내가 더 가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며 놀린다. 아무렴, ‘아, 시댁 가고 싶다’던 나의 소원은 이루어지기 직전에 있다.


(이 글은 작년 12월 시댁이 있는 튀르키예에 가기 전 쓴 글입니다)





이 글은 네이버 연재 중인 글로, 원본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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