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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Mar 10. 2023

단 하나를 위한 글방

글방 이야기

단 한 명이 있습니다.

운영 중인 글방을 ‘생동하는 유기체’로 만든 단 하나, 당신.

오늘은 그런 당신을 떠올리며 글을 씁니다.

글방이 유지될 수 있던 동력을 언젠가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나는 아님

시작은 ‘나’ 하나를 위해서였습니다. 살다보면 쓰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일기쓰기 조차 싫어하던 공대생 내가, 무어라도 끼적이기 시작한 건 2019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시기였습니다. 독서 양이 쌓이며 자연스런 흐름처럼 쓰기로 이어졌고 그것은 퍽 쓰고 싶은 순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읽는 자에게 삶은 매일이 혁명입니다.

그러다 얼떨결에 첫 번째 책이 나왔습니다. 쓰는 희열에 빠진 나는 직장 생활하던 1년 만에 책 4권을 쓰기도 했습니다. 쓰는 밀도가 상당히 높았죠. 그때 몰입 덕에 빠르게 양질전환이 가능했던지 모르겠습니다. ‘백지를 단순히 문자로 채우는 게 아니라, 양질의 글로 메우고 싶다. 한 입만 먹어도 배부른 그런 약밥 같은 글을 쓰고 싶다.’ 쓰면 쓸수록 더, 더, 더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 피어올랐고, 나는 소멸하지 않을 욕망에 두 손 두 발 들었습니다. 대신 욕망에 충실하기로 했습니다.

그저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부하는 시간을 늘려갔습니다. 할수록 빠져들던 글공부였는데, 어라. 여기 미친 재미가 있더랍니다. 분석하며 읽다 보니 투명해 보이지 않던 대작가의 시크릿, 비밀 병기가 3D입체 모양을 한 것처럼 두둥실 활자 위로 떠올랐고 그때 느낌, 그 신비로움에 이것은 나만 알고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한 듯합니다. 나누어야겠다 싶었습니다. 혼자만 알고 싶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몹시 신박했거든요. 무엇보다 어딘가 나와 같은 욕망에 간지러울 그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잘 쓰고 싶지만 어디도 잘 쓰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지 않아 답답해하고 있을 그들에게 단비 같은 모임이 되어줄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첫 번째 ‘손은경 글방’의 시작이 된 단 하나 이야기입니다. 통찰에 더불어 적절한 예시로 가득하던 그 노트를 기준 삼아 강의 자료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글방 첫 오프모임

그렇게 글방을 열고, 홀로 글 쓰던 그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센스 있는 글, 독자를 감화시키는 글, 맛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공통의 욕망이 있었습니다. 쓰지 않으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으면 보완할 수 없고 보완할 수 없으면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알고 있던 셈입니다. 쓰다 보니 만난 자기 글의 부족(결핍), 거기서 뻗어난 욕망. 욕망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불행이 있어 행복이 있는 것처럼 목마름이 있어 욕망이 있습니다.

글을 매개로 만났다는 점, 잘 쓰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은 우리의 공통 관심사였습니다. 결이 같은 그들과 격주에 한 번 모이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나는 두 번째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글방 초기부터 함께 한 멤버로 누구 못지않은 창작욕망으로 가득한 그, 말입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이런 물음을 안겨왔습니다. ‘그런 글은 어떻게 써요?’ 마침 그가 알고 싶던 글의 종류였고 그걸 내가 썼던 거지요. ‘그러니까 말이죠!’ 블로그 댓글로 주렁주렁 설명할 수도 있었지만 충분하지 않을 거였습니다. 두 번째 ‘하나’를 위한 글방은 여기서 시작 되었습니다. 그를 위해 별도로 글방을 열기로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와주신다면야 더 좋겠지만 오지 않더라도 상관없었을, 오직 ‘그’ 한 명을 위한 강의였습니다. 그 하나를 떠올리며 강의를 준비하며 최선을 다했던 듯합니다. 그에게 정말이지 다 퍼다 나르고 싶었거든요. 평소 고마움 가득하던 그라 가능했던 일이겠죠.

그가 선물한 꽃다발

글방 운영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새로운 분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 번째 ‘하나’를 만난 건 작년 9월쯤. ‘하나’는 책을 쓰고 싶다고 했습니다. 인생사 원래 그런 것 아니냐며 너스레 떠는 그의 미소 뒤에 감춰진 굴곡을 대충은 압니다. 소설 같지 않은 인생 있겠냐만은 로맨스 소설 같은 인생이 있는 반면, 전쟁 소설 같은 인생도 있는 법입니다. 소위 눈물 없이 볼 수 없을 장편 한 권 쓰일 각인데, 반전은 단 한 번도 글 써본 일이 없던 ‘그’라는 거였습니다. 문장 한 줄 떼기가 그에겐 갓난아기 두 발로 걷기와도 같은 일이었던 것입니다. 두 발로 걸어 올 때까지, 열 걸음 물러나 박수치며 기다릴 지원군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그렇게 초보 글쓰기. 글을 한 번도 써보지 않았거나 쓰면서 좌충우돌 하다 포기했을 그들을 위해, 그렇게 ‘발아글방’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최근 네 번째 ‘하나’를 만났습니다. 쓰기가 마음처럼 잘 안 된다는, 어쩌면 처음부터 완벽하게 쓰려는 욕심 때문에 잘 안 써지는 것 아닐까 한다는 그의 고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깊이 숨 들이 마시지 않는 이상 잘 안 쓰게 된다고도요. 밀도 있게 써 오며, 함께 쓰며, 이제는 직감으로 알게 된 일이 있습니다. 쓰는 일은 독서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그런 것처럼 살며 쓰고 싶어지는 순간과 빠르면 빠르게 만날수록 유리하다. 나와 내 주변을 보면 알 수 있다. 쓰는 자만 가질 수 있는 윤택함은 분명 존재한다. 고로 요즘은 그를 떠올리며 내가 무얼 더 할 수 있을까 상상합니다. 그러다 다시, 단 하나를 위한 글방을 준비합니다.

“살다보면 쓰고 싶어지는 순간이 오고, 쓰다보면 반드시 잘 쓰고 싶다는 욕망에 닿는 날을 만나게 됩니다. 욕망에 충실하고 싶어 글방을 만들었습니다. 결코 소멸하지 않을 종류의 것임을 알았으니까요.”

단 하나가 지금껏 글방을 전진하게 했습니다. 단 하나 덕에 글방 유지 된 날도 있었고, 그 하나가 있어 기쁜 날이 훨씬 많았습니다. 즐거움은 영원한 동력이라는 글방 모토는 그래서 유효한 거겠죠? 나는 앞으로도 단 하나를 위한 글방을 계속 유지해 나갈 예정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이 마르지 않는 한, 하기야 마를 일은 없으므로 글방은 쭈욱 계속 됩니다.

단 하나, 당신을 바라보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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