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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pr 03. 2023

글에 '중심 생각'이 빠져 있다면, 밑줄부터 그어보세요

이 글은 다소간 독해력을 필요로 하는 편이므로 평소 글에 관한 사유가 되어있지 않은 분은 안 보시는 편이 나으리라, 먼저 말씀드립니다. 반대로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읽어 보시기를 너무나 추천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결국 판단은 여러분 몫,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언젠가 운영 중인 글방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있습니다.

- 문단은 하나의 중심 생각으로부터 뻗어나온 여러 문장의 합이고

- 글은 하나의 메시지로 향하게끔 만들어진 문단의 합이다     



글을 쪼개고 쪼개다 문단까지 흘러가 버린, 그날의 이야기였는데요. 어째 표현이 좀 어려웠나요? 그렇다면 배배 꼬지 않고 다시 말해 보겠습니다. 바로 이런 뜻입니다.

- 문단에는 하나의 중심 생각이 있기 마련이며

- 글은 그러한 문단이 모여 하나의 메시지를 향하고 있다     



오히려 더 어려워졌나요? 하하. 거참 언어의 세계란.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문단은 ‘하나의 의미로 통하는’ 문장 여러 개를 합쳐 놓은 어떤 단위이므로, 거기에는 하나의 의미라는 ‘중심 생각’이 있기 마련이고, 글은 하나의 메시지를 향해, 그렇게 쓰인 문단을 모아둔 집합소와 같다. 즉 문단과 글에는 중심 생각/하나의 의미/메시지가 있기 마련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말할 수 있던 걸까요? 애초에 문단과 글은 ‘하나의 의미’를 전제로 하기 때문인데요. 그러니까 문장을 한데 모아놨다고 문단이 아니고, 글자만 주욱 써내려 갔다고 글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한. 글쓴이가 이 글을 쓰게 된 중심 생각 또는 핵심 메시지가 문단을 관통해 글 전체를 꿰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문단은 하나의 중심 생각으로부터 뻗어나온 여러 문장의 합이고 글은 하나의 메시지로 향하게끔 만들어진 문단의 합이다”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문단과 글에는 저 나름의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만. 쉽지 않죠?     



그러나 많은 분들이 이를 놓치고 있는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글쓰기 멘토링도 하고 있다고 말씀드린 적 있을 겁니다. 개별로 글을 받아 개개인에 맞는 적절한 피드를 드리며 쓰는 연습을 하는 한편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는 시간인데요. 저는 이 시간을 통해 정말 많은 힌트를 얻습니다. 글 쓰며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부분이 멘티를 통해 깨지게 되며, 새삼 글쓰기에 관한 새 시각을 갖게 해주거든요. 멘토임에도 제가 훨씬 더 많이 배우게 되는 시간인데(…). 아무튼! 덕분에 그들이 유독 어려워하는 부분도 잘 알게 되는데요. 이번주 발견한 패턴이라면 이것이었으니. 바로 문단과 글에 ‘중심 생각’이 보이지 않더라! 말인 즉, 알맹이 없고 껍질뿐인 문단과 글을 많이들 쓰고 계시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로 저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멘티를 사랑하는 만큼 멘토는 성장하게 되어있는 법. 하여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었으니, 그들에겐 요약하는 힘이 부족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요약은 ‘중심 생각의 압축’을 말합니다. ‘요점’을 간추린 게 요약이니까요. 아무튼, 다시 돌아와.      




그러니까 자기가 쓴 문단과 글에 ‘중심 생각’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은 무엇이 핵심인지 모르고 있음의 다름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고(특히 ‘메시지’를 정하지 않고 썼을 경우), 결과와 원인이 1:1 대응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때는 보다 고차원적 이유로 결과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요약하지 못한다는 말은 즉 작가의 중심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 말이다. 무엇이 중심 생각인지 모른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내 글에도 고스란히 반영될 수밖에 없다. 무엇이 중심 생각인지 알 수 없어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결과를 낳느냐면 내가 쓴 글조차 스스로 요약하지 못 하는, 무엇이 중심이고 무엇이 살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쓴 텅 빈 글이 된다. 그 결과 요약하는 힘이 부하다면 문단과 글에 ‘중심 생각’이 빠지기 쉽겠다 라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멘티에게 전한 답장엔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밑줄 긋기를 부탁드렸던 이유가 뭐였냐면 지난 첫 글을 받았을 때, 써주신 문단/글에서 ㅇㅇ가 (문단/글의)중심을 못 잡고 있구나 하고 알게 되어 그랬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내 문단/글의 중심이 되는 생각은 무엇인지’ 본인이 직접 밑줄 그어보며 어떤 감을 찾기를 바랐어요. 만약 밑줄 그을 부분이 도무지 안 찾아졌다면 ‘어라 정말 요점이 하나 없네?’ 하고 깨달았을 테고, 만약 찾아졌다면 ‘그래 이거였지’하면서 또 무언가를 느끼셨을 테니까요. 제가 바라는 건 언제나 그랬든 빠르게 감을 잡는 연습, 그거예요.

(중략)

그 반대로 말하면 ‘중심 생각’을 기준으로 문단과 글이 (문장으로)구성 되어야 한다는 말이기도요. 그러니까 ‘중심 생각’이 없는 글은 텅 빈 글과 같아져요. 다 읽고 나도 뭔가 알맹이가 남지 않는 다고나 할까.     



주의하실 점은 요약이란 단어에 함몰되면 안 된다는 것. 요약은 단지 작가의 중심 생각을 읽을 수 있느냐 없느냐, 작가가 ‘중심에 어긋남 없이’ 썼느냐 쓰지 않았냐를 알게 하는 기준이 될 뿐이며 ‘중심 생각’에 감을 잡아가는 일, 그게 바로 쓰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일 뿐. 요약은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합니다.     





만약 위 글이 여러분 자신의 이야기 같다면 우선 한 편의 글이나 책을 읽으며 각 문단의 중심 생각과 이 글 또는 책에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뭔지 살펴보세요. 찾아진 그것에 밑줄을 그을 수도 있고(보통 한 문장), 그어진 밑줄을 토대로 한 문장 요약할 수도 있겠습니다. 추가 팁을 드리면 문단과 글에서 찾아진 중심 생각을 핵으로 작가는 그 언저리를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다양한 스타일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거기 전부 배움이 있고요. 잘 쓰여진 글 한 편만 봐도 우리는 너무나 많은 글쓰기를 공부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요약하는 힘이 길러지면 그 힘은 사라지지 않고 내게 남아 어느 날 ‘중심 잡힌’ 글을 쓰게 될 날을 만나게 할 거라 믿습니다. 내가 2시간 넘도록 책상에 앉아 글을 쓰며 전하고 싶던 그 한 마디가 그때 비로소 독자에게 가닿을 것이기도요.     



뼛속까지 내려가 깊고 안락한 상태로 편안하게 글만 쓰고 싶은데 공부해야 할 게 참 많은 듯하다고요?^_^

시간이 부족한듯 느끼겠으나 금방입니다.

다만 포기하지 않고 무던히 실천해온 사람에게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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