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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pr 05. 2023

국제부부의 주거지 결정 문제에 관하여

제14화

국제부부가 되고 나면 삶의 옵션이 하나 더 는다.



무엇인가 하면 ‘어느 나라에 살 것인가.’ 내 나라냐 남편의 나라냐, 그것이 옵션이로다. 튀르키예인 훈은 한국인 나와, 한국인 나는 튀르키예인 훈과 결혼에 동의한 후 우리가 가장 먼저 고민했던 부분도 바로 이 대목이었다. 그래서 누구의 양보가 필요한 것인가(여기서 양보란 배우자 나라로 옮겨 가 사는 것을 말한다). 손깍지 끼듯 각자의 왼 다리와 오른 다리를 섞어 놓고는 ‘코카콜라 맛있다 맛있으면 또 먹지’ 따위의 게임으로 정할 수도 없는 노릇.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고 하나의 결정은 전혀 다른 길로 우리를 인도하기도 한다. 고로 코카콜라 게임이 새 인생을 시작할 우리를 망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양보 할 수밖에 없는 쪽을 고르기 위해 서로가 처한 현실과 각 나라에 살았을 때를 가정A와 가정B로 두어 가늠하기 시작했다. 살기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나라를 고르는 작업이었다.     





그때는 그랬더랬다. 당시 결론이라면 한국에서 고정 수입이 있던 ‘나’가 살고 있는 이 나라로 훈을 불러들이는 게 최선이었고 그렇게 훈이 양보해 주었다. 내게는 연속된 삶이었지만 훈에겐 완전히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언어도, 문화도, 사람도. 여행이 아닌, 유학도 아닌 삶으로 한국을 받아들이기에 훈에게도 적지 않은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벌써 2년하고 반전에 겪은 과거가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과 비슷하게, 요즘은 다른 가정과 다른 결과를 상상한다. 여행이 단면을 보고 느끼는 일이라면 내 경우, 남편의 나라이자 시댁이 있는 튀르키예행은 단면 너머 이면까지 둘러보고 오는 일이다. 여행지마다 아름드리 잘 꾸며진 풍광을 보고 오는 것과 실재하는 삶 면면을 보고 온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 튀르키예 생활을 해본 후 결혼을 막 동의하고 훈과 했던 고민-어느 나라에서 살 것인가-의 성질은 지금과 다르게 된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지만 전혀 다른 관점에서 가정A를 하고 가정B를 하는 것이다.     

나는 두 곳의 극명한 장단을 잘 알고 있다. 어느 하나 모자람 없이, 극적인 장점과 극적인 단점. 이것은 마치 짜장면과 짬뽕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 같은 어려움이 된다. 한국 반, 튀르키예 반을 섞어 만든 파라다이스 같은 나라는 어디 없는 걸까. 그런 아쉬움 따위를 성토하며 우선 한국에서 살고 싶은 이유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이것.     



- 한국에 살고 싶은 이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여행지로 유명한 나라를 가더라도, 보통 여행객만 방문하는 곳엘 들리므로 지극히 협의의 여행이 되곤 한다. 그리고 협의의 여행은 먹기 좋게 발라진 대게 살과 같다. 마련된 레드카펫, 와이파이 속 어떤 불편함도 없이 이 순간만큼은 주인공이라도 된 것도 같다. 아- 아름다워라. 그러나 모든 나라가, 그 나라의 구석구석이 여행지와 같지는 않다. 아스팔트 깔리지 않은 오돌토돌한 도로를 운전해 가야 하기도 하며 와이파이 터뜨리려 핸드폰 들어 여기저기 신호 잡히기만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상상 할 수 없는 일이 여행지 밖에서 펼쳐진다. 그래서 말인데 한국은 진심으로 편리한 나라다. 살기 좋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나 단언컨대 살기 ‘편한’ 나라임은 사실. 도로 사정이나 와이파이를 비근한 예로 들었지만 이것은 극일부에 불과하다. 반면 튀르키예에 살고 싶은 이유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이것.     





- 튀르키예에 살고 싶은 이유

“마음이 물질을 앞선다. 그것도 월등히.”     



남편 훈의 친척이 거주하고 있는 이즈미르에 다녀오며, 그곳을 떠나던 날 나는 친척 여동생을 껴안고 울 수밖에 없었다. 내게 베푼 호의와 진심을 이즈미르에 머물던 2일간 고스란히 느껴서였다. 내게 아주 비싼 선물과 음식을 대접한 것은 아니었다. 대신 물질이 할 수 없는 마음을 선물해 주었다. 번번이 내 감정을 물었고, 쾌락을 확인했으며 그렇게 구석구석을 살피며 안위와 감정과 육체를 보살펴주었다. 헤어짐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나를 그들 일부로 여겨줌에 고마워 왈칵하고 눈물부터 터졌다. 한국에서 물질로 치환 받았던 마음을 온전한 마음으로 받았던 것은 아마 처음이었을 테다. 그리고 이것이 튀르키예에 다녀온 모두에게서 회자되듯, 따듯한 나라라는 온기를 남긴다. 마음은 물질로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에 살고 싶은 이유는 튀르키예에서 살기 싫은 이유가 되기도 하고 튀르키예에서 살고 싶은 이유는 한국에서 살기 싫은 이유가 되기도 한다. 튀르키예에서 생활하며 상대적 시스템 부족으로 인해 불편할 때가 잦았다. 가령 핸드폰만 있으면 모든 해결할 수 있는 한국 시스템이 튀르키예에서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달지, 구체적 예를 들면 핸드폰 지문 인식 한 번으로 결제를 하거나 각종 증명서를 손쉽게 다운 받거나하는 것. 면대 면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남아 있고 그것은 이따금 성격 급한 한국인에게 속 터지는 일이 되기도 한다. 빵빵 터지는 것은 와이파이면 족하는데 말이다.     



그러나 한국에 살며 튀르키예에서 받았던 마음씀은 쉽게 느낄 수 없다. 여기는 물질주의, 마음을 물질로 치환하려는 시도들이 난무한다. 그것은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라 자유로울 수도 없다. 부모에게 보내는 용‘돈’, 고마운 사람을 초대하는 ‘고급’ 레스토랑, 조금만 기다려 내가 더 많이 벌면, 그때를 기다려 정말 많이 벌게 되면. 그때는 당신을 위해 내 시간과 돈을 쓸 테니 그때까지만 기다려줘. 나는 우리가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 지금보다 잘 살기를 바라. 그때가 되면 너에게도 경제적 안정을 선물할게. 그것이 우리 모두의 바람 아니겠니. 지금 너에게 쓰지 못하고 부를 위해 쓰인 이 시간, 꼭 갚아줄 거야. 역시나 돌아온 한국은 시속 100km로 달리는 쳇바퀴처럼 여전히 바쁘게 돌아갔고 다들 인생의 부와 번영을 기원하며 열심히, 그렇게 열심히였다. 이름 없는 공허가 밀려들었다.     



한 곳의 장점이 한 곳의 단점이 되며, 단점은 장점을 극복할 수 없는 것일까. 그런 아쉬움을 토하며 귀국길에 올랐다. 조금 더 머물고 싶다가도 한국 시스템의 편리함이 간절하다가, 한국에 가 어쩔 도리 없이 나 또한 쳇바퀴에 승차해야 하는 이 불쾌함에 저항하다가. 정녕 파라다이스는 없는 것이나이까. 그렇게 달라진 가정A와 가정B 사이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우선은 여기가 현실이므로,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한편 옵션이 늘었다는 것은 선택을 기반으로 한 고민이 될 수도 있지만, 즐거운 비명이 되기도 한다. 한국에 미련이 사라지면 언제든 그곳으로 떠날 거야. 새로운 삶을 살아볼 테야. 그런 상상들을 하며 문득 남편 훈에게 고마워졌다. 인생 플랜B가 내게도 생긴 기분이라 건넬 수 있는 고마움이겠다.




(계속)





위는 네이버 연재 중인 글로, 원본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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