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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pr 12. 2023

한국식 '오빠' 사랑

제15화

서울에서의 삶은 이전과 다를 바 없고, 그것은 수화기 너머 들리는 그들 목소리로 알 수 있었다. 잘 쉬다 왔어? 나야 늘 그렇지 뭐.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아. 다소 지친 목소리, 말끝마다 감도는 작은 한숨. 벌써 작년이 된 2022년 12월 시댁인 튀르키예에 머물다 올 1월, 우리 부부는 서울로 복귀했다. 여기는 한국이고 서울은 서울, 우리는 더 튀르키예에 있지 않다. 느려진 템포를 다시 서울 속도에 맞추느라 마음이 빨라진다. 그래서 오늘은 국제부부로 사는 어떤 이야기를 전할까 고민해 본다. 지친 이들에게 피식 옅은 미소라도 띄게 하고 싶어 재미있는 에피소드 없나 뒤적이는데…. 앗, 이거다! 그리하여 오늘은 서울살이도 아닌 튀르키예 이야기도 아닌, ‘오빠’ 썰을 풀어 볼까 한다.     



이름하여 국제부부 호칭 스토리.

“내가 ‘오빠’라고 하면 너는 ‘아이 좋아’해.”     



전전전전전전…편에서 밝힌 바 있으나 다시 말하자면 남편 훈과 나는 튀르키예와 한국을 잇는 국제부부다. 서울 모 펍에서 휘청대던 나를 (지금의 남편 당시엔 걍 외국인) 훈이 부축여 준 것이 계기가 되어 연애를 시작했고 뽀뽀를 했고 결혼을 했다. 펍에서 만난 당시 나는 직장인이었고 훈은 대학생이었다. 신분은 나이를 간접 대변한다. 그렇다. 나는 훈보다 6년이나 먼저 태어난 사람이었다. 나이 6살 차이가 난다. 적다면 적고 괜찮다면 괜찮으며 많다면 많은 차이다. 처음엔 8살이 차이 나는 줄로 알기도 했다. 만 나이로 계산하는 그곳과 한국은 나이 세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태어난 연도를 확인한 후 간신히 6살로 좁혀진 우리는 어쨌거나 여자쪽이 더 오래 살았고 남자쪽이 덜 오래 산, 소위 연상연하 커플이 되었다. 그런 나더러 일부는 능력자라고 했고 일부는 도둑이라고 했다. 설령 훈이 나보다 6살이 많았어도 나는 그를 사랑했을 텐데.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오오오오빠?


언젠가 한국 남자는 ‘오빠’ 호칭에 스쾃 100kg을 친다, 는 풍문을 들은 적 있었다. 운동 꽤나 해본 그이 아니고서야 번쩍 100kg이나 들리 만무하겠다만은 그만큼 ‘오빠’가 주는 힘은 강력하다는 비유겠다. 이때 트로트 가수 박현빈의 <오빠만 믿어>가 떠오르는 것은 무엇. 어쨌거나 그것은 그를 일순간에 천하장사 혹은 슈퍼맨으로 만들어준다고 한다. 오빠, 그것이 뿜는 음성의 힘은 무엇인가. 아무튼 굉장한 호칭이라고 했다. 남자도 불리길 원하는 눈치였다. 경기도 하남 사는 아는 형부도 말끝마다 내심을 드러내곤 했던 기억이 난다. 오빠가 해줄까? 오빠가, 오빠가…. 오빠 자아가 강한 사람으로 그의 와이프인 나의 지인에게 영원한 오빠로 불리기를 원한 듯 보였으며, 이를 잘 알고 있던 친구 고롱은 처음 보는 남자에게도 서슴없이 오빠라고 불렀다. 그 남자의 나이가 많던 적던 간에, 그가 성인이기만 하다면 말이다. 이 모든 상황을 한국 생활 34년간 답습해 온 나였다.     



연애를 막 시작한 이들에게 호칭은 중요하다. 그러나 처음부터 애칭으로 부를 수는 없다. 친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상대에게 화장실과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오줌도 참고 참다 누던 그때, 우리는 서로를 이름으로 불렀다. 훈과 은경으로. 그러다 사랑이 익어 네 손을 허락 없이 잡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도 애정담은 호칭 같은 게 필요해졌다. 그에게 물었다.     



“훈, 앞으로 내가 오빠라고 하면 어때?”

“오…오빠?”     



어쩌면 훈이 바라고 있을지도 몰라. 그런 가설을 세웠던 것 같다. 다만 아직은 손만 잡는 수준이라 섣불리 제안하지 못한 것일 뿐, 에잇, 센스 좋은 여자친구인 내가 미리 물어보자. 뭐 그랬던 거 같다. 어려 보이고 싶어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오…오빠?”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훈이 물었다.     



“그거 여동생이 부르는 거 아니에요? 나의 친여동생이 나한테 부르는 거 아니에요?”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튀르키예에는 스쾃 100kg 치는 ‘오빠’ 개념이 없다고? 호칭에 담긴 문화 차이를 알지 못했던 나는 훈에게 한국의 ‘오빠’ 개념을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맞아. 그런데 한국에서는 나보다 ‘적당히’ 나이 많은 남자에게도 오빠라고 불러. 예를 들면 대학교 동기인데 재수를 해서 오빠이거나 동네에서 같이 자란 남자에게 오빠라고 하거나. 케이스는 다양해.”

“그리고 그저 ‘오빠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에게도 ‘오빠’라고 불러. 이때만큼은 나이를 상관하지 않아. 부르고 싶어서 부르는 거니까.”

“Ah Really?”

“응. 더 재미있는 게 뭔 줄 알아? 왜인지 모르겠는데 한국 남자는 ‘오빠’라고 불리기를 기대하는 눈치야. 두 음절에 어떤 로망이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실제로는 여자가 남자보다 나이가 많아 누나라 불려야 하는 게 맞더라도 어떤 커플은 그렇게 안 해. 남자는 오빠이고 싶어하고 여자는 그런 오빠에게 기대고 싶어하거든. 한국식 안성맞춤 사랑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흠. 흥미롭군요.”     



도대체 이것은 어떤 문화일까,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턱을 쓰다듬으며 문 귀퉁이만 멍하니 바라보던 훈에게 이번엔 내가 물었다.     



“튀르키예는 이런 거 없어?”

“아니요. 튀르키예에서 오빠는 오빠예요. 그러니까 내 친여동생만 나한테 오빠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거 없어요. 우리는 이름으로 불러요. 예를 들면 나는 훈 당신은 은경. 아니면 허니, 내 사랑, 스윗, 이런 식으로 불러요. 한국의 ‘오빠’ 같은 호칭은 없어요.”     



내가 ‘오빠’라고 하면 친여동생과 뽀뽀하는 기분이라 이상하다고 했다. 그러며 오빠라 불리기를 거부했다. 나는 여동생과 연애하는 게 아니라며 오빠로 불리는 건 여동생 하나로 족한다며. 그때로 일단락 지은 우리 호칭은 ‘베이비’하면 ‘네, 베이비’라고 동등하게 부르거나, ‘아내’나 ‘남편’으로 각자를 대변하는, 우리가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그 역할로 서로를 부르고 있다. 아무렴 중요한 것은 무엇으로 부르냐보다 무엇으로 내게 존재하는가겠다.     



그러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호칭이 문화를 반영하는 것일까 호칭 안에 정립된 개념이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일까. 그러나 훈이 한국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제는 다르게 불리고 싶진 아닐까, 실은 그를 놀릴 셈으로 말하곤 한다.     



“오빠아.”

“이상해! 나는 당신의 오빠가 아니에요. 나는 당신의 남편이에요!”




(지난 1월에 썼습니다).




위는 네이버 연재 중인 글로, 원본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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