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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pr 19. 2023

가족의 의미

제16화

시댁인 튀르키예에 있다 보면 의도하지 않게 떠오르는 한국이 있다. 특별히 작년 겨울, 안식을 고대하며 떠난 튀르키예행에선 와이파이 존을 벗어난 것처럼 한국의 나를 한국과 단절시키고자 했으나 드문드문 한국을 생각했다. 튀르키예에 있으면 지긋지긋하게 한국 생각이 나고, 한국에 있으면 몽글몽글하게 튀르키예가 그리워진다. 이 역설을 해결할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비교는 나쁘다고 배웠다. 특히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시기나 부러움, 반대로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자의식에서 비롯한 우월은 더러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고 했다. 비교하지 말고 견주지도 말고. 그러나 앎과 삶과 행동이 일치하기란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일만큼 어려운 것. 머리는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두 곳 사이의 균형 같은 것을 찾으려고 한다. 튀르키예에 있다 보면 의도하지 않게 한국과 비교 같은 것을 하는 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것도 매우 분주하게 말이다.     



그러다 한국은 그랬고 튀르키예는 그러지 않은 것들과, 튀르키예는 그렇고 한국은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분 지어낸다. 세상은 연결되어 있지만 다른 점을 찾아내고야 만다.     



그래서 여기는 이스탄불



시댁이 있는 튀르키예 안탈리아에 있을 때 일이었다. 우선 알아야 할 것은 한국인 며느리인 나는 튀르키예어에 미숙하다. 몇 단어는 알아듣고 한국식 정직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대화에 응하곤 하지만 못 알아듣고 씨익 웃을 때가 보통이다. 번역과 해설은 중간중간 남편과 구글이 해주고 있다. 튀르키예 엄마아빠 내게 전할 말이 있거들랑 남편 훈을 통해 샬라샬라 하고 마치 로딩에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남편의 설명이 있은 후, 그제야 한국말로 남편에게 답하는 형국이다. 로딩은 한 번 더 걸린다. 쓰고 나니 남편에게 번역료를 주어야 할 것만 같다.     



안탈리아에 있을 땐 가족 단위로 생활이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재작년 한참 바이러스가 기승하던 시절 시댁에 왔을 때는 가족 전부가 코로나에 감염되기도 했던 웃기고 아픈 기억이 있다. 튀르키에 엄마를 필두로 2일 뒤에 나, 어린 시누이가 걸렸고 아빠와 남편, 형 세 남자의 경우 상당히 가볍게 지나갔지만 어쨌거나 우리 여섯은 꼼짝없이 집에 격리해야 했다. 그렇게 14일을 복닥였다.     



아침 식사 준비는 주로 엄마가 맡지만, 아빠도 곁에서 엄마를 돕는다. 아침이면 주방을 건너 남편과 내가 자고 있는 방으로 빵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새벽에 에잔(*기도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소리)이 들렸던 것도 같은데, 그게 꼭 10분 전 같은데 어느덧 오전 9시가 넘었다. 분주한 듯 시끌시끌한 소리에 주방으로 가보면 가득 차려진 식탁과 함께 ‘좋은 아침’이라는 엄마아빠의 인사가 건네어진다. 그들은 빵이나 샐러드 내어놓을 마지막 채비를 하고 있다. 그 맘쯤 이제 6살이 된 어린 시누이는 큰오빠를 깨우러 가고 우리 부부는 의자에 앉아 군침을 삼킨다. 곧 여섯이 식탁에 빙 둘러앉는다. 한국 명절이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여섯의 자리엔 개인 접시와 포크와 숟가락, 튀르키예식 홍차 ‘차이’가 놓인다. 튀르키예인에게 차이는 물과도 같아 보인다. 강렬한 뜨거움에 벌컥벌컥 마시진 못하지만 수시로 마시고 없으면 갈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튀르키예 여느 가정에 놀러 갈 때마다 한 번도 차이 대접에 소홀했던 기억이 없다.     



허기진 배를 80% 정도 채우고 나면 차이 한 잔에 가족간 대화가 오가기 시작한다. 시시콜콜한 일상 대화부터 떠올리는 것만으로 눈물 찔끔 나도록 웃긴, 가족밖에 모르는 그들의 추억 이야기, 갑자기 번진 정치 이야기까지. 웃다가 울다가 언성이 높아지는 다양한 장르의 감성 희곡이 눈앞에 펼쳐진다. 식사 자리는 늘 시끌벅적하다. 그러다 진짜 가족이구나 싶은 순간이 있다. 불과 1분 전까지만 해도 배를 부여잡고 웃던 가족들이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목소리를 높인다. 남편과 엄마는 정치 성향이 정반대인 사람들이다. 세상을 믿는 방식이 다를수록, 그 믿음은 클수록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는데 둘의 대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렇다. 가족간 정치의 ‘정’자도 꺼내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여기는 좀 다르다. 그 사이, 어린 시누이는 몇 입 먹다 말고 식탁을 빠져나와 유튜브 보려 티비 볼륨을 높였다. 곧 아빠에게 혼이 나고, 엄마와 남편 대화를 가만히 듣던 형은 몇 마디 거들까 싶다가 입을 다문다. 지지고 볶는 하루가 매일 이어졌다.     



거기 대화 전반을 이해할 수 없던 내가 있었다. 분명 웃긴 이야기가 오고 간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웃는 건지 알 수 없고,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무엇이 언쟁의 근원인지 추측할 뿐인, 내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고개만 두리번 두리번 거릴 뿐. 알 것 같아서 두리번댈 수 있고 그래서 더 궁금해지는 대화내용이다.     



네 이빨 누가 훔쳐간 거냐며



언어화한 가족들 생각과 추억은 읽을 수 없다. 그러나 식탁을 탁구대 삼아 오고 가는 파동은 고스란히 전달받는다. 느낌이 되어 내게 전달된다. 그때, 아무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이런 문장을 만들어 내었다. 이것이 가족이구나. 언어를 몰라도 느껴지는 감정은 내가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지 설명하게 한다. 안정감이다. 튀르키예 시댁에 있을 때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보호받고 있음을 적극 감각한다. 엄마는 엄마, 아빠는 아빠, 남편은 아들, 나는 며느리라기 보다 딸에 가까운 딸. 잊고 있던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다, 그러다 불쑥 한국 생활이 떠오르며 의도하지 않게 비교라는 것을 한다. 몹쓸 비교가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한국은 다르다.     


한국에도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바쁘다. 동생은 부천에 있는 한 병원에서 밤낮으로 근무를 하고, 엄마아빠는 파주에 내가 데려온 강아지 한 마리와 지내느라, 미처 준비하지 못한 노후를 이제 막 준비하기 시작하느라 바쁘며, 우리는 강서구에서 꿈을 팔아 사느라 바쁘다. 모두 쉬는 날에 해당하는 교집합을 찾아 만나기란 한 달에 한 번이 어렵다. 당직을 서는 동생과 주말에도 교대 근무를 해야 하는 엄마, 주말 밖에 시간이 나지 않는 나와 남편은 ‘다음 달’로 가족 모임을 미루기에 또 바쁘다.     



언젠가 각자 위치에서 잘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동생이 흘린 말을 기억한다. 그때는 그런 줄로 알았다. 가족에게 좋은 것 내어주려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런 서로를 이해하지만 늘 시간은 부족하고 가족의 형태를 그리워하고. 그러나 튀르키예에 지내는 동안 잊고 있던 ‘가족 체험’을 다시금 하게 되며, 이치현과 벗님들의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눈부신 돈발이 비춰주어도

제게 무슨 소용있겠어요

이토록 아름다운 가족만이

나에게 빛이 되는걸♪’



(지난 1월에 썼습니다).





위는 네이버 연재 중인 글로, 원본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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