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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pr 26. 2023

가슴에 털 난 외국인에 관하여

제17화

부제 : 수리남말고 수염남



튀르키예인 남편 훈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수염 비호감자였음을 고백한다. 아, 비호감까지는 좀 오바고 적어도 호감은 아니라고 해야 하나. 그러므로 패션처럼 수염 기른 남자를 보면 이왕 깎는 편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수염이 깔끔함을 망친다고나 할까. 민둥산처럼 매끄럽게 정리된 턱이 나는 좋았다. 훤칠한 턱의 완성, 그게 좋았다. 그래서인지 우연처럼 수염남과 연애 경험은 없다. 대신 수염이 많지 않고, 특히 예능인 전현무처럼 수염 자국이 그림자처럼 남아 있지 않은 그런 남자들과 연애를 했다. 수염이 있고 없고와 같은 이분법적 판단으로 사랑할 상대를 가린 것은 아니나 어찌 되었건 결과는 그러하다.     



그러나 사랑은 정말이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 그랬던 내가 수염남과 연애를 시작했다. 튀르키예에서 온 털 남자 훈과 말이다. 훈에겐 거뭇거뭇한 수염이 있었다. 그러나 그라면 퍽 그럴 수도 있게 느껴졌다. 그때로 나는 수염에 관한 오묘한 프레임이 깨지게 된다. 깊이 수염을 생각하게 된다.     



오늘 처음 본 남자-훈 아님



훈은 분명 면도를 했다고 했지만 만 하루도 못 참고 뾰족뾰족 수염이 자랐다. 그의 얼굴 절반은 수염기로 덥수룩했다. 나는 그런 훈의 수염이 신기했다. 아무렴 수염 많은 남자와 연애는 처음이었고 상상보다 빽빽한 수염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손으로 살살 훈의 수염을 어루만기도 했다. “우와 신기해.” 그러자 훈이 물었다. “평소 수염 많은 남자를 어떻게 생각했어요?” 그때 나는 에둘러 말했던 것 같다. “괜찮았어.” 믿기지 않지만 믿어 주겠다는 듯 훈이 웃었다. 그러며 수염이 많은 남자에게 면도란 일과와 같다고 말했다. 그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 들을 수 있었다.     



그날로 나는 알게 되었다. 밀어도 밀어도 잘 밀리지 않는 수염이 있다. 밀어도 반나절만에 스윽 다크서클처럼 올라오는 수염도 있다. 면도효과를 고작 하루 1/2밖에 누리지 못하는 그런 종류의 수염도 세상엔 있다. 덥수룩하게 난 수염이 비호가 아니라 호감일 수 있다는 것도, 수염 관리는 의지가 아니라 신체 반응 문제라는 것도(남성분들 고생 많으십니다) 훈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실제 결혼하고 안 사실이 하나 있다. 남편은 일주일에 두 번 화장실에서 30분을 보낸다. 면도하는 날이다. 쉐이빙 폼을 얼굴에 두른 뒤 면도칼로 슥슥 얼굴 하부를 덮은 수염을 긁어내는데 대략 25분, 그 뒤 전동 면도기로 잔여 털을 밀어 없애는데 대략 5분. 화장실에 들어간 그는 한참을 나오지 못한다. 그 덕에 서걱서걱 수염 깎이는 소리나 위이잉하고 전동 면도기 돌아가는 소리를 무려 30분간 듣게 되기도 한다. 왜 그리 오래 걸리는가 하면 굵기와 억세기가 한국 것과는 다른 것이라 그렇다. 그의 털 하나는 한국 털 3개쯤 겹친 것과 같다.     



고로 매일 면도를 할 수도 없다. 수염은 칼날 스침만으로 잘리지 않을 만큼 굵고 거세서 한 번 면도할 때마다 피부에 자극이 간다. 수면 마치고 나올 때 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훈의 얼굴을 보면 내가 다 따갑다. 따갑다 하니 문득 남편과 첫 키스한 날이 생각난다. 그날은 매우 따끔한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게 그렇게 기억이 난다. 입과 입이 부비부비하는 동안 턱과 턱에 마찰이 일었다. 짧고 굵게 난 인조 잔디 같은 수염이 움직일 때마다 내 턱을 할퀴었지만 나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다. 무드를 깨고 싶지 않아서였다.



역시 초면-약간 닮았지만 훈 아님



키스라는 마취에 취해 별 감각이 없었던 것도 같다. 다음 날 상처로 일어난 피부를 보며 그제야 격한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덕에 2일은 롤러스케이트 타다가 넘어져 턱을 다친 아이처럼 밴드를 붙이고 다녀야 했고, 한국인은 상상할 수 없는 우리 둘만의 퍽 재미있는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을 시작하고 영글어 가는 과정에 그의 수염이 여러 에피소드를 안겨주었다면, 아직 한국인에게 수염은, 그것도 쌍카풀이 짙고 깊은 눈매를 가졌으며 눈썹 숱이 많은, 심지어 수염까지 덥수룩하게 난 중동 남자에게 난 수염은 받아들여지기 힘든 눈치다. 그걸 그의 아내로 사며 몹시 자주 느낀다.     



그렇다면 그들은 중동 남자의 수염에서 무엇을 보는가. 그의 곁에서 느낀 바로, 그들은 짙은 눈과 수염에서 테러리스트를 본다. 시장에 갈 때면 우리는 다소 유쾌하지 않은 상황과 조우한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훈을 보는 눈빛이다. 그들은 마주보고 걸어오는 훈을 발견하곤 두 눈 휘둥그레져서는 ‘네가 왜 이 나라에 있어!’하듯 눈에서 광선을 발사한다. 걷다가 점이 되어 만나고, 그렇게 옆을 스쳐갈 적엔 자기 뒤편을 향해 가는 훈을 뒤를 돌아가면서까지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 거기엔 느낌이 있다. 보통은 유쾌하지 않은, 때로는 언짢은 그런 눈빛이 우리를 따른다. 그것을 훈도 느끼고 나도 느낀다. 이 사람은 그런 자들과 같지 않고 심지어 억센 수염을 빽빽하게 달고 있어야 할 그는 제법 수고스러운 면도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심지어 섹시하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나 외국 나갔을 적이 떠올라서다.     



그들은 나를 나로서 구분하지 못하고 한국 연예인 땡땡과 닮았다고 했다. 동생에게 말했다면 탄식을 금치 않았을(헐-미쳤?) 그런 연예인이었는데 그때로 알았다. 그들 눈에 나는 ‘나’가 아니라 퉁 쳐서 아시아인이구나. 눈이 작고 코는 낮으며 광대가 도드라지고 피부는 황색에 가까운 나는 전형적인 아시아인이었고, 그저 그렇게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을 말이다. 때문에 나는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한국인 보기에 눈이 깊게 파였으며 쌍커풀 짙고 덥수룩 수염이 난 중동 남자를 보면 전부 테러범인 줄 오해하는 것처럼, 나도 거기선 연예인 땡땡이 될 수 있구나. 훈도 이를 수용하는 눈치지만 결코 반기진 않는 눈치다. 한국에 온 뒤 남편은 종종 레이저로 수염을 박멸하고 싶다고 한다. 얼마쯤 들겠냐고 내게 견적을 묻는다. 그럼 동문서답을 내놓는다.     



“지금도 좋은데요?”     



사랑은 수염을 타고 내려와 은하수 다방에서 만나 홍차를 마시다 온다. 이제는 수염 없는 훈을 상상할 수 없는 것도 수염은 DNA이자 훈 그 자체이자 우리의 역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수염에 관한 생각은 진화를 거듭해 역사로 남는다. 그런 훈을 나는 사랑하고.







위는 네이버 연재 중인 글로, 원본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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