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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May 08. 2023

글쓰기는 중학교 1학년 어휘 수준이면 충분하다

부제 : 중학교 1학년도 알아들을 수 있을 어휘를 쓰라고요?





은행에 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전세대출 만기가 다가왔거든요. 모바일로만 업무를 보다 이번엔 부득 직접 찾아가야 했는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준비와 이동에 1시간을 써가며 은행에 도착했으나 벙 찐채 5분 앉아 있다 나와야 했습니다. 나오면서는 가벼운 육두문자를 흘려야만 속이 후련할 지경이 되었고, 이는 그 은행의 얼굴로 남았다는, 그날. 다음은 은행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일로 오셨냐는 직원 안내에 ‘대출 상담’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번호표 하나를 들려주더군요. 앉아 대기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미어캣 마냥 목 바짝 치켜 올려 번호판만 바라보는데, 4893가 떴습니다. 손에 쥐고 있던 번호였고 마침내 투명한 플라스틱 막을 사이에 두고 은행 직원과 마주 앉게 되었죠.     




“전세대출 만기로 왔는데요. 연장을 해야 해요.”     




곧 신분증을 건네받은 그. 문제는 이때로 발발하는데…. 대출 연장 안내를 들으러 온 내게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대환을 하시려면 이렇게 하셔야 하고, 여신은 (블라블라 나발나발).”     




그가 퇴고와 탈고를 구분 짓지 못하는 것처럼, 은어처럼 들리는 그 금융 용어를 나는 잘 알지 못합니다. 눈만 껌뻑이다 아무 말도 잇지 못하던 내 표정을 읽었을 것임에도 그는 아랑곳 않고 떠들어 댔습니다. 마치 의도인양 앞에 앉아 있는 나는 무시한 채 설명을 이어갔고, 그것은 정말이지 소음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일방적 처사에 배려라고는 고양이 눈곱만큼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글이나 책을 굉장히 어렵게 ‘쓰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낯선 한자어와 전문 용어를 남발하고 문장 표현도 어찌나 장황한지, 한 문장 벗어나기가 벅찬 글을 그들은 주로 씁니다. 특징이라면 잘 안 읽힌다는 것이겠습니다. 문해력과 독해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어렵게 썼기에 어렵게 읽힙니다. 독자 미숙함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그럼 왜 그렇게 썼을까요? 간단합니다. 수신자를 위한 배려보다 지적 우월성 표출이 의도 맨 앞줄에 있어서입니다. 은행원도 마찬가지 이유로 금융 용어를 남발했을 테죠. 여기서 분야는 관계없습니다. 일반인은 생소한 전문 분야도 무진 쉽게 쓸 수 있는가 하면 일상 에세이를 쓰면서도 겁나 어렵게 쓸 수 있거든요(물론 이 경우는 독자를 향한 배려보다 지적 우월성 노출이라는 ‘의도’를 가지고 어렵게 쓴 경우에만 해당합니다).     




실제로 글방 오픈 특강에 오신 한 분이 질문하길, 쉽게 쓰라는데 그럼 자기 지식수준이 낮아 보일 것 같다는 걱정 아닌 걱정이 있었습니다. 남보다 배움이 많고 길었던 당신이라는 설명도 덧붙이면서요. 내가 쓰는 언어 수준이 곧 나의 지적 수준이라는, 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인 분이었죠. 그때 뭐라고 답했느냐고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적으로 성숙한 수준은 타인은 잘 모르는, 소위 어려운 어휘나 표현을 썼을 때 드러나는 게 아니라, 어려운 내용을 가령 중학생도 알아들을 만큼 쉽게 풀어내는 능력에 드러납니다.”     

글방지기 손은경




만약 그 분 의도대로 지적 허영을 과시하기 위해 ‘어렵게만 썼더라면’ 독자(수신자)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첫째는 읽다 포기할 겁니다. 용어부터 막히는 대다가 장.황.하.게 쓰인 문장에 독해가 힘들거든요. 안 읽힌다는 말이죠. 은행원 설명을 알아듣기 힘들었던 저처럼, 십중팔구는 읽다 지쳐 다른 책으로 넘어갈 겁니다. 큰 인내심을 가진 독자는 많지 않아요. 오히려 ‘뭐라는 거야?’ 하며 기분 나빠할 수도요. 문장 하나, 문장에 쓰인 토씨 하나까지, 독자는 글쓴이 의도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글이나 책은 ‘좋다’라는 마음의 여운을 갖게 되는 겁니다. 진짜와 가짜를 느낌으로 구분할 능력이 그들에겐 있습니다.     




둘째는 그를 배려 없는 사람 취급할 겁니다. 그는 지적 우월을 과시하고 싶어 어렵게 썼습니다. 내가 이만큼 지성 있는 자임을 은연중 뽐내고 싶었겠으나, 반전은 장기하가 부릅니다. “그건 네 생각이고.” 그의 의도처럼 독자는 와 똑똑하다, 하고 감탄하지 않습니다. 일단 읽히지가 않는데요. 읽을 수가 없는데, 어찌 놀랄 수 있으리요. 그래놓고 서두엔 ‘당신을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는 그의 기도는 마치 “조심히 가시고 궁금한 사항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인사만 겁나 잘하던 은행원과 같이 느껴집니다.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아요. 표층 메시지와 심층 메시지가 다르기 때문이겠죠.     




저와 비슷한 생각인지 송길영 박사도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정말 나쁜 사람은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합니다. 상대방의 무지 혹은 정보의 격차가 자신의 헤게모니를 키워주기 때문에 일부러 못 알아듣게 말하는 거예요.”

송길영 저, <그냥 하지 말라> 중     




극소수만 보는(심지어 보다 화를 내며 덮어 버리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공공연히 오픈된 장소에 꾸준히 글을 올리는 것, 대한한국에서 가장 크다는 광화문 교보문고에 자기 책이 깔리길 바란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내 글을 읽어주었으면 하는 욕망의 다른 말 아닙니다. 여기서 많은 이들이란 곧 대중을 말할 테고요. 그러니 대중에게 읽히는 글이길 바란다면, 이왕 많은 이들이 읽어 거대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면, 중학생도 알아들을 만큼 쉽게 써야하지 않을까요?     




이로써 '중학교 1학년 수준의 어휘와 표현이면 글쓰기에 충분하고도 넘친다'는 이 글의 제목은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 되었습니다.





* 에필로그


그래서 은행 간 날 내린 결론이 있었습니다.     


돈이 많기로 했습니다.

데스크 앉아 계시던 그 분 말고, VIP실에 기다리고 계실 그 님에게 가 알기 쉬운 용어로 설명 듣는 삶을 살아야겠다. 배려가 없는 곳 말고 배려가 난무하는 곳으로 내 몸을 이동시키기로 했습니다. 간단합니다. 그 책을 덮고 이 책을 펼쳐 든 것처럼, 이 모두가 자연스럽게.






손은경 글방 링크

https://blog.naver.com/bestjasmine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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