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뭔가 다를 거라는 기대. 그러나 인간사, 크게 다르지 않을 것만도 같은 분명한 예감. ‘아무튼 국제부부는 어떤 이유로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는가, 다툼의 주된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그런 것들을 궁금해하는 듯하다. 어떻게 알게 되었냐면 누군가 올린 <국제부부가 싸우는 이유>라는 영상 조회수에서 알 수 있었고 그때로 ‘그렇단 말이야?’ 혹 해가지고는 이 글을 쓰도록 이끌기까지 했다. 그렇게 곧 이어 국제부부의 내밀한 실상까지 이제는 여러분 앞에 까게 되었도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에 앞서 우리 부부의 다툼, 그 원인과 과정, 결말에 대해 가만히 앉아 생각해야만 했다. 생각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어떤 이유로 주로 다투어 왔던가. 그것은 지난했던 나의 구(ex)한국인 애인들과 다툼에 비교했을 때 어떤 면이 다르던가. 다툼은 여느 사람 사이에서나 일어나는 법. 그러나 튀르키예인 남편 훈과 조금 독특한 이유로, 그래서 남다르게 당황했으며 마침내는 ‘이런 이유로도 싸울 수 있다고?’ 의아해하던 그것은 무엇이던가. 이제는 내게 있어 훈과의 생활이 꼭 외국인과 한 결혼생활 같지만은 않아졌으므로 나는 한참을 생각해야만 했다. 그러다 훈과 소(小)판 싸우던 그날, 그 시간, 그 방에서 서로를 째려보던 우리 둘이 기억에 났다. 나는 동양미 넘치는 작은 눈으로 열심히도 그를 노려보았었다.
그날은 일요일 평온한 저녁시간이었다. 가볍게 저녁을 먹은 뒤 각자 책상에 앉아 월요일 마중 전 처리해야 할 일을 해내던 중이었다. 나는 글을 썼고 훈은 조사 비스무리한 것을 했다. 너나 나나 일에 몰두해 있던 그때, 갑자기 훈이 말을 걸어왔다.
“베이비, 나 수강신청 해야 하는데 도와줄 수 있어요?”
“ㅇㅇ? ㅇㅇ, 도와줄 수 있지. 그런데 잠깐만 나 하던 것 마저 하고 도와줄게.”
“네.”
그리고 잊고 있었다. 내 일에 바빠 미쳐 잊었던 것이고 어쩌면 그것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나의 태도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 뒤.
“베이비, 그때 나 도와달라고 했던 수강신청 안내문 봤어요?”
“?_? 그거? 아 맞다. 아니 아직, 볼게요.”
그리고 또 보지 않았다. 이쯤 뭇 독자들로부터 돌이 날아 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핑계를 대자면 그때도 나는 ‘내 일’에 바빴다. 현대 한국인의 자아실현 욕구는 그만큼 매우 강했다. 얼마나 강했냐면 배우자 부탁 따위는 가볍게 무시될 만큼, 그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겨졌을 만큼. 언제나 나는 내 일이 우선이었고 솔직히 말하면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하자’와 같은 마인드가 있기도 했다. 이런 내가 한국인 표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타인보다 내가 앞서 있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공감하리라 예상은 해 본다.
반대로 훈은 내가 사소한 무어라도 부탁했을 때,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있던 멈추고 내 부탁부터 들어주었다. 가령 “지금 하면 돼요?” 하고 묻는 즉시 실행에 옮겼다. 그때마다 나는 나중에 해도 되는데, 말하지만 훈에게 있어 ‘내 사람’의 부탁은 본인보다 앞선 일이었다. 그리고 이 ‘다름’은 우리 다툼의 원인이 되어주었다. 당신을 너무너무 사랑하기는 하지만 우리에겐 순서가 있어. 이것도 문화차이라면 문화차이일까. 그래서 문화차이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현대 한국인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배어버린 ‘나’ 중심의 삶을 살았다. 그러니까 나는 훈과 어떤 일을 계획할 때도 보통은, 무의식적으로 ‘나’를 앞에 둔다. 가령 이런 상황. 글을 쓰고 있는 내게 훈이 급한 부탁을 하기 위해 말을 걸어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ㅇㅇ, 알겠어. 나 이거 하고.”
반면 튀르키예인 훈은 너무나 당연하게 ‘내 사람’ 중심의 인생을 살아왔다. 나 그곳에 가 지내는 동안 알게 된 거지만 ‘내 사람’ 이 앞선 사고는 훈이 유일한 게 아니라, 튀르키예인 전부가 그렇더라. 가히 전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전부더라. 나라면 피곤해서 미루었을 일을, 그들은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성실하게 도왔고 어떤 식이었느냐면 자기 수준에서 해결 가능한 일이면 그렇게, 그게 아니라면 주변에, 이웃사촌에 친척에 사돈에 사돈의 친척에…. 나였다면 ‘잘 모르겠는데’하고 넘기거나 아주 보통의 마음결을 한 한국인이었다면 대애충 ‘글쎄요’ 하고 넘겼을 그 일을, 내 사람의 부탁이라는 이유로 발 벗고 나서는 것이다. 나는 그게 낯설면서도 퍽 고마워서 어느 날은 눈물이 찔끔 나오기까지 했다. 그런 나를 보고 놀라서는, 네 일은 나의 일과 같다며 신경 쓰지 말라고 미소로 화답하곤 했다. 울다가 더 울 일이었다.
그때, 나는 물질로 마음 대부분을 치환하던 한국에서와 달리 저들 시간과 에너지 들여 나 챙기는 그들을 보며, 그제야 그 일요일 그 저녁 그 방에서 훈이 나를 째려보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너무도 당연히 ‘내 사람’이 최우선인 훈에게 있어 그렇지 못한 나는 서운함인 것. 이해 못 할 나의 태도인 것. 튀르키예에 지내던 날 동안 우리가 ‘나’와 ‘너’를 순서 세우는 동안 비워진 퍼즐 한 조각을 찾은 기분이었다. 상식이라는 퍼즐을 그곳에서 배우면서부터였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그날로 나는 조금씩 달라지기로 했다. 당연히 ‘내’가 앞서던 자리에 ‘훈’을 껴 넣어 보기로. 그의 부탁에 하던 일을 멈추기도 하고, 그래서 그가 부탁한 그 일을 지금 당장 처리해 보자고. 익숙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훈에게 맞춰가려 했을 때, 그의 서운함도 서서히 누그러드는 듯했다. 변하려는 나를 보며 느낀 감동이랄까.
그러며 얻게 된 교훈 하나가 있다. 일견 문화차이에서 온 다름이라고도 생각했었지만 결국 부부싸움 원인은 서로 다른 나라, 다른 문화에 살아서가 아니라는 것. 핵심은 ‘서로가 당연히 여기며 살아온 그것을 파악하고 배려해주는 일’에 있다는 것. 나에게 당연한 일이 상대에게 당연한 일은 아니었고, 상대에게 당연한 일이 나에겐 당연한 일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꼭 국제부부라고 해서 발생할 다툼은 없고 반드시 국내부부라고 해서 생길 싸움도 없는 법이다. 그저 부부싸움 주된 원인이 되곤 하던 ‘다름’, 우리는 애초에 달랐음을 전제로 할 때, 거기서 시작한 인지적 차이는 두 사람을 받아들이는 범위가 넓게 할 것이다. 저마다 고유성을 가진 개체임을 인정했을 때, 확실히 포용력이 커지는 것처럼. 다소 뜬금없지만 MBTI하는 거의 유일한 장점과 같지 않을까.
너 I였구나. 나는 E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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