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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May 29. 2023

작가가 쓴 글과 일반인이 쓴 글의 차이는 ㅇㅇ다

손은경 글방 칼럼

여기 일기와 에세이가 있습니다.




얼핏 구분조차 힘든 두 종류의 글인데요. 본인은 ‘에세이를 썼다’ 하지만 다분히 일기 같은 글을 제공할 때, 우리는 그것의 구분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하게 됩니다.

그래서겠죠. 무형의 존재감, 즉 일기와 에세이를 가리는 지점에 대한 다수의 감각적 논의가 있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제가 질문 하나를 던지겠습니다.     




: 여러분은 일기와 에세이를 가리는 가장 큰 차이점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단도직입적으로 답하겠습니다.




저는 글의 독자가 ‘나’이냐 ‘제3자’이냐 그 차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꼭 작가와 일반인이 쓴 글의 차이 같습니다. 일기가 일반인이 쓴 글이라면 에세이는 작가가 쓴 글이요. 물론 주제야 일상, 나의 생각, 느낌, 감정 따위를 다루고 있으므로 이를 구분할 경계는 없지만 전문가와 아마추어, 작가와 일반인, 에세이와 일기를 가리는 지점은 결국 독자가 나이냐 남이냐, 이 둘이겠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작가는 철저히 제3자를 독자로 상정한 채 글을 씁니다. 그들의 고객이기도 한 독자를 배려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들은 글 쓰는 내내 독자를 생각합니다. 이렇게 쓰면 좋아할까, 재미있어할까, 이 글을 읽은 그들의 반응은 어떠할까. 희극인이 타인을 웃기고 싶어 못난 표정을 짓기도 하는 것처럼, 작가는 독자를 즐겁게 하고 싶어 책상에 앉아 머리를 짜냅니다. 작가란 마땅히 독자를 기쁘게 하려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독자를 즐겁게 한 대가로 고료를 받는 비즈니스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반면 일반인, 그러니까 작가는 아니지만(공개된 장소에 남이 볼 수 있도록)글을 올리는 이들의 글은 독자가 ‘나’일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라며 쓰고 올린 글임에도 독자는 ‘나’ 자신에 지나지 않죠. 그러한 글의 특징은 세 가지로 축약됩니다(아래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에세이라고 우긴들 일기를 넘어서기 힘듭니다.     







: 그럼 왜 그렇게 쓰는 걸까요?




타인이 보도록 공개된 장소에 글을 올리면서도 왜 철저히 자기 자신을 향해 글을 쓰게 되는 걸까요?

저는 그 이유를 ‘경험’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수의 경우 여태 글을 써 본 경험이 오직 ‘일기’ 뿐이었습니다. 일기는 초등학생 때부터 한 번쯤 반드시 써 본 경험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일기 쓰기는 숙제로 내주어도 에세이 쓰기는 내주지 않았습니다. 글에 관한 피드가 불필요한 장르가 일기라 그러시지 않았나, 글쓰기 선생이 된 지금에야 추측하는 부분이건만 어쨌거나 우리는 일기를 어려서부터 줄기차게 써왔습니다.




고로 ‘글 = 일기’라는 무의식의 관념이 자리 잡았습니다.

쉽게 말해 여태 써 온 글이 ‘나는 오늘 학교에 갔고, 친구와 공기놀이를 했으며, 재미있었다’하는 종류의 글이었으니 다시 성인이 되어, ‘글을 써 봅시다!’ 하면 일기와 같은 글을 쓸 수밖에요.     




같은 이유로 대입 준비를 위해 논(리적 서)술을 오래 연습해 온 친구들은 거의 모든 글을 논술조로 씁니다.




이들은 논리에 입각해 순서 따라 씁니다. 개요부터 찾더랍니다. 에세이를 써보자고 해도 논술처럼 글이 흐르더랍니다. 글이 상당히 딱딱합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모릅니다. 지금껏 써 온 방식에 맞춰 글을 썼을 뿐, 글에도 색과 감각이 있다는 걸 모르고 있죠. 오로지 ‘글은 쓰는 것’이라고 한정한 채 인지해 왔기에 그저 경험한 바에 의해 글을 씁니다. 그래서 일기 글만 주로 써왔던 분들은 ‘나’가 독자인 일기 같은 글을 쓰게 되는 겁니다. 누군가 읽고 공감해 주기를 바라며 업로드해도, 여전히 글의 방향은 ‘나’로 향해 있습니다.  



   

: 내 글이 일기 글처럼 쓰였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일기 글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나는 아는 인물이자 사건이므로 부가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인물-선생님-에 대한 글이라고 합시다. 그럼 선생님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나와 관계, 뭐하는 분인지 등-는 흘려주어야 독자가 걸림 없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독자는 글쓴이, 즉 여러분이 아니니까요. 이들은 제3자입니다. 여러분에 대해 생판 모르는 남이니까요.     




둘째, 간혹 글이 점프 뛴 느낌이 듭니다. 읽다가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든 글을 본 적 있으실 겁니다. ‘엥? 갑자기? 무슨 말이지?’ 특히 상황A에서 상황B로 순차 전개가 아닌, 갑자기 상황Z로 순간이동을 하듯 전개될 때가 그렇습니다. 아예 말이 안 되는 글이 되어버리곤 하죠. 한편 (원인 없이 결과만 뚱 하고 던진 꼴이기도 하므로)논리가 없는 글이 되어버리기도요. 이런 글을 읽을 때 어떤 느낌이냐면 다소간 화가 납니다. 말이 안 되는 말을 늘어놓고 독자더러 읽으라고 하거든요.     



셋째, 감정만 나열하고 맙니다. 이때는 이 같은 표현이 주로 등장합니다. 나는 기뻤고, 나는 슬펐고, 재미있었고, 지루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야기한 원인이 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미주알고주알 설명하지 않아요. 왜냐고요? 자기 자신에겐 감정이 전부거든요. 일기를 썼던 이유도 어떤 일이 있었고, 거기서 느낀 감정을 어딘가에 해소하고 싶어 써왔을 거고요.     




그래서 일기 같은 글을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고 합니다. 온통 ‘나’로 점철된 자아도취적 글이네. 4년 전 처음 글 쓰던 저를 향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방법은 하나입니다. 작가와 일반인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에 해당하는 독자를 ‘나’가 아닌 ‘남’으로 상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면으로 침잠하는 글이 아닌, 밖을 향한 글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굳이 내면으로 침짐하고 싶어 끼적이기 시작한 글이 아니라면요. 말하듯, 누군가 읽어주고 공감해 주길 바라며 공개선상에 올린 글이라면요). 항상 제3자인 독자가 이 글을 읽을 것이라고 상정한 채 써야 합니다. 그들이 읽다가 궁금해할 부분은 어느 부분인지, 어디를 보충해 설명해 주어야 할지, 나아가서는 이 글이 그들에게 어떤 기쁨이 될지, 이 모두를 고려하며 써야 합니다. 그게 바로 작가와 일반인의 차이입니다. 그럼 기분이 나빴다, 즐거웠다만 쓰지 않고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원인에 대해 더 자세히 묘사하게 될 겁니다. 작가는 늘 그것들을 염두하며 씁니다.     




처음부터 일기를 에세이로 바꿔 쓰기가 물론 쉽지 않습니다. 여전히 나는+감정 형태의 문장을 쓰게 되고, 이 문장으로 설명이 충분한지 아닌지도 감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습관처럼 써와서 너무나 쉽게 써냈던 방식, 즉 일기처럼 쓰겠다면 앞으로도 일기에 지나지 않은 글 밖에 만들 수 없습니다.     




이럴 땐 도움을 받는 게 좋습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나는 내가 볼 수 있는 것밖에 볼 수 없어요. 그렇기에 써도 써도 일기 글밖에 안 되는 거고요. 하나 팁을 드리면 에세이 도서를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의외로 글 쓰는 분 중 독서하지 않는 분이 꽤 많습니다. 그러나 잘 쓰고 싶다면, 읽어야 합니다. 쓰기의 가장 좋은 교재는 글 잘 쓰는 작가가 쓴 글입니다. 보고 감을 잡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와 최민석 작가의 에세이를 좋아합니다.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듯 어찌나 힘 빼고 썼던지 목에 가래가 낄 정도로 “캬”를 들끓게 합니다. 한편 몹시 쉽게 쓰여, 나도 쓸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도 붙을 뿐더라 에세이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잘 쓰인 글을 보는 우리의 공통된 마음일 겁니다.     




그리고 읽다보면 알게 됩니다. 확실히 그들은 제3의 독자를 상정한 채 글을 썼다는 것. 그들 자신의 이야기면서 결코 자기에 도취되지 않았다는 것, 그럴 수 없었다는 것. 왜냐하면 ‘독자’가 읽을 것이라는 전제, ‘독자’가 나라는 작가에게 감탄하는 게 아니라 ‘독자가 즐겁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기 때문입니다.     




에세이라고 주장해서 에세이가 되는 게 아니라, 그 형식과 느낌을 지녔을 때 에세이가 됩니다. 내가 타인에게 얼마나 다가가 있느냐가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

위는 손은경 글방에서 제공하는 칼럼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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