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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대원

by 손은경

「우리의 시간은 이토록 바삐 흘러,

그사이 그대는 마흔 다섯이 되었고 나는 서른넷이 되었네.


꼬물대던 그대의 자녀 둘은 부모 없이 잘 지낼 만큼 성장하였고,

나는 결혼을 하여 아내라는 직함을 얻었네.


나의 인생 역사 한 장면에 박힌 그대, 변대원.

그대가 있어 나 오늘 쓰지 않고 견딜 수 없네.


이 시를 그대에게 고하려네.」


- 시조삘의 시, 손은경 지음






한 놈만 팬다. 쓰고 싶은 사람만 쓴다.

때문에 오늘은 변대원 이야기다. 박상현 다음으로 변대원이 떠올랐으므로, 그것이 이 글을 쓰게 한 전부다.


대원은 나의 11살 많은 친구다.

<손은경> 정의에 의하면 친구란 아무 때나 전화해도 어색하지 않은, 장난기 가득한 “ㅋㅋㅋㅋㅋ”를 아무렇게나 내뿜을 수 있는, 다소 거친 말도 할 수 있는, 그 앞에서 남의 흉도 볼 수 있는, 그래도 나를 오해하거나 흉본 이에게 일러바치지 않는 자를 말한다. 따라서 대원은 나보다 11살만 많을 뿐 친구가 맞다. 다만 연장자 차원에서 <박상현>보다 존중하고 있다. 식사하셨는지요, 하며 꼬박꼬박 존댓말을 쓴다.



그와는 결국 책으로 만난 ‘사이’였다.

4년 전 삼성역 위워크로 기억한다. 그날은 그의 저서 <책은 꼭 끝까지 읽어야 하나요?> 북토크 날이었는데(아마), 한 마디로 말해 기깔났다. 독서를 연애와 애무에 비유한 대원이었다(그렇다고 책을 핥는 다는 것은 아님).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변대원은 강연 중 ‘도미노 이펙트’를 시전하며 “거대한 도미노를 쓰러뜨리기 위해선 맨 처음 작은 도미노 하나를 넘어뜨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는데, 강연 영상 중 롯데타워만한 도미노가 넘어가는 순간 나는 그에게 박수를 치게 된다. 그때로 대원은 내게 그와 친하게 지내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든다. 명함을 놓고 오는 바람에 간이로 종이 찢어 이름과 연락처 적어 그에게 전한다. 친구의 서막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렇게 4년이다.

학위를 받고도 남을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비슷하면서 다른 점이 많았다. 나의 자기 성장은 운동에서 시작한 반면 대원의 자기 성장은 독서에서 싹을 틔웠다. 운동은 양의 요소이고 독서는 음의 요소이다(아마). 외면의 아름다움을 중시했던 나인 반면 내면 성찰을 인생 모토로 삼은 대원이더랬다. 또 다른 점은 그는 맛 탐구를 즐기나 나는 배 채우기 위해 음식을 먹는다. 한편 그는 ‘사이책방’을 운영할 만큼 찐한 애독가이지만 나는 찐한 애서가이다. 그는 독서를 사랑하고 나는 쓰기를 놀이한다. 허나 서로 다른 두 면은 하나의 일을 위해 이바지 하고 있고, 우리의 읽고 쓰기라는 반대적 작용은 ‘성장’으로 피어나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성장’으로 탄탄하게 묶일 수 있었다. 읽기와 쓰기에 관한 공저를 집필하려다 대원의 바쁨으로 말아먹은 기억이 불현 듯 스친다.



또 이런 점은 같다.

(가끔 쓸데없기도 해 보이는) 연민이 많다는 것, 자존과 타존이 높다는 것, 읽고 쓰고 말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



그런 대원과는 만나면 3시간 수다는 기본이다. 각자 일정으로 헤어져야 할 때면 보통 아쉽다. 응축했던 말들을 쏟아내다 시간상, 일정상 더 쏟아지려는 말을 지퍼로 잠그어 억지로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만 같은 아쉬움이랄까. 같은 길을 걷고 있어 아무와는 통할 수 없는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는 친구가 내게 있다. 열한 살의 나이 차는 고작 가지고 있는 흰 머리 개수에 불과해 진다.



오늘 아침은 4년지기 친구 변대원을 생각한다.

그에게는 고마움이 많다. 하여 <박상현> 다음으로 떠올랐을 것이다. <박상현>은 나의 깔깔이, 깔깔이가 채워줄 수 없는 따뜻함을 <변대원>이 채운다. 인간에게는 각각에게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이 따로 있으니까. 때문에 내게 변대원은 필수가 되었다. 4년 전 위워크에 갔던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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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이 차린 클럽하우스




To. 변대원에게,



당신을 생각하면 곰이 떠오릅니다.



인상 좋은 곰. 눈 밑이 좌우로 쳐져 선함을 연상하게 하는 곰. 곱슬 거리는 갈색 털을 가진 테디베어 같은 곰. 책곰. 그런 곰이, 곰손 만한 주먹으로 입가를 가리고 웃는 모습 말이지요. 컨셉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징으로 밀고 있는 제스쳐인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확실한 건 당신은 웃을 때마다 주먹 쥐고 ‘훗’ 하듯 웃는 입가를 가린다는 것, 반면 나는 목젖이 보일만큼 눈과 입 크게 벌려 박장대소 한다는 것입니다. 수줍은 소녀와 농염한 아저씨야 말로 이렇게 웃겠죠.



잡말은 이만하고.



책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당신의 포부는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글 쓰는 자신감을 주어 뭇 하고 싶은 말 마음껏 글로 표현하도록 돕겠다는 나의 포부는 이제 시작입니다. 허나 독서와 쓰기, 이 모두는 아직 소수만 누리고 싶어 하는 특권이라 우리 가는 길이 헛헛할 때 있겠습니다. 그러나 하나 장담할 수 있는 건 세상에 발하고 싶은 우리의 큰 뜻을 그들 반드시 알게 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보이는 일루젼(illusion) 같은 그 세상이 구체화 될 때까지 힘써 보자고.



나의 친구이자 동료 변대원에게

이 글과 응원을 바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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