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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Sep 25. 2023

뇌수막염에 걸린 강아지, 끝나지 않을 메오 이야기


2023년 9월 23일(토요일)

오전 7시 45분



전날 밤 시드니에서 도착해, 한참 잠에 빠진 아침이었다. 그러다 08시 50분쯤 됐으려나. 들어오는 햇살에 어슴푸레 눈을 뜨니 엄마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 있다. 잠 깨울까 싶어 아침엔 전화하는 법이 없는 엄마인데, 무슨 일인가 싶어 톡부터 확인한다. 그러니  메오 마지막 모습이 담긴 영상과 함께 “메오야 그동안 고생 많았어”하며 울먹이는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그 순간, 울음이 육성으로 터져 나온다. 훈이를 부여잡고 엉엉 대며 운다.     



내가 두 번째로 쓴 책 『메오를 부탁해』는 뇌수막염으로 안락사 권유까지 받았던 메오를 사랑으로 지켜낸 우리 가족의 이야기였다. 물론 주인공은 메오였고, 메오는 내가 시골 장에서 2만 5천원에 구매 한 발발이(믹스견)를 말한다.     





메오는 활활발발했다. 그리고 건강했다. 우리가 집에 돌아오면 흥분해 온 방을 점프 뛰다가 오줌을 지리고, 파리랑 입 놀이 하다가 간혹 그를 먹기도 했지만 아무 탈 없었다. 어떤 날은 내 브라를 뜯어 씹다가 와이어가 이빨에 껴 개고생을 하기도, 그러나 금세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뛰어놀던 개였다.     



메오와 산지 4년이 지났을까, 어느 날 이상 행동을 보였다. 꼬리로 똥꼬 가린 채 침 흘리며 정처 없이 집안을 어슬렁 거렸다. 그러다 사방을 뱅글뱅글 돌았다. 급기야 한 자리에 쓰러져 발작을 일으켰다. 그래서 2차 병원에 가니 뇌수막염이라는 난치병 증상이란다. 수의사는 길어야 몇 년 못 산다고 했다. 치료비며 보호자 수고, 면면을 고려했을 때 안락사도 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어느 의학서적에서 발췌된 그의 조언이었겠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이를 무시한다. 할 수 있는 끝까지 해보겠다며 메오를 지키기로 결심했다. 때문인지 메오는 8년을 더 살아 의학서적에 남을 신기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픈 자식 돌보기 위해 부모는 고생을 자처해야만 했다. 뇌수막염이라는 병의 치명타인 ‘발작(발작하다가 숨이 멎어 죽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을 자제시키려 하루에 두 번 정해진 시간마다 약을 먹였다. 이따금 장염과 같은 질병이 수반되면 새벽같이 달려 병원에 입원시키고 퇴원시키는 일을 반복했다. 수발은 약 8년간 지속되었다. 긴 병에 효자 없다지만, 그럼에도 딸 둘보다 나은 아들이라며 지극한 사랑으로 돌봐온 엄마아빠였다.     



찰나생멸 刹那生滅     



그래도 잘 지내는 줄로 알았는데 고작 찰나에 메오는 소풍을 가버렸다. 미스터리일까 의미부여일까는 모르지만, 하필 내가 시드니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아침에. 나는 돌아왔고 그는 돌아갔다. 그래봐야 자연으로. 그러나 고작 한 순간 생에서 죽음으로 페이즈 전환이라는 찰나생멸은 대개 허망하다. 가위로 싹둑 자르기만 하면 되었던 일이라는 듯 단숨에 덜컹 잘리어 나간다.     



찰나로 생사가 뒤바뀌는 순간, 모두는 그대로인데 메오만 없다. 토요일엔 그의 장례를 치루었다. 더는 숨 쉬지 않는 메오를 데리고 화장터에 갔다. 마지막 족적을 남기고, 메오는 만 1시간 만에 한 줌 재가 되어 엄마 품에 안겼다. 생명으로 가득했던 아이는 죽음 뒤 육체라는 껍데기만 남기더니, 이젠 껍데기마저 분해된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던 존재처럼 그의 물리적인 형태는 남아 있지 않다. 대신 메오와의 추억, 메오가 찍힌 사진, 메오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 그렇게 썩어 사라지지 않을 것들만 남았다.  




   

메오가 그립지만 이 이별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 귀국 후 첫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너의 이야기부터 쓰기로 정한다. 너의 물리적인 실체가 사라져 우리가 교감하던-나는 주고 너는 받던, 너는 주고 나는 받던-시간이 네가 살아 있던 때만큼은 생생하진 않겠지만, 그래서 한동안은 부쩍 그립고 그립겠지만, 그저 너에게 때가 온 것이었다고 생각하련다. 삶과 죽음으로 세상을 이분화 하는 것만큼 유치한 일도 없겠지. 그것은 네가 바라는 일 또한 아닐 것이다. 네가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동안 나는 네 마음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쯤은 네 마음일 것이라고 헤아릴 수 있다.     



애써 너의 소풍 길 앞에 슬픔을 달래어 본다. 그래도 어쩐 일인지 울지 않게 되었다.     






그나저나 메오야 잘 도착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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