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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Sep 08. 2020

글과 진지

편견을 만들고 그것을 깨다.

지금도 쓰지만, 그것도 재미있어 쓰지만 타고난 글 놀음꾼은 아니다.

B4 사이즈 시험지 절반을 차지하는 국어지문 보고도 오바이트 나올 거 같아 급히 화장실로 도망가고 싶던 나다. '이걸 언제 다 읽냐. 기절 하겠군.'하며 한숨 짓던 모의고사 1교시 국어 시간까지 생생하다. 고등학교 2학년, 긴 지문에 잠식되었던 내 픽은 더 말할 거 없이 이과다. 수학에 흥미를 느껴서라기 보다 국어가 싫어 도망간 샘이다. 활자로 가득한 국어, 사회따위 딱 싫었다.


국어 좋아하는 애들 보면 왠지 막 고리타분했다.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사색하길 좋아했고, 정적이었고, 진지했다. 도통 알아 듣기 어려운 한국 말로 나에게 물어오면 생각했다. '우리 분명 지금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너는 어디를 바라 보고 있는 걸까.' 국어교사 소개팅만은 넣어두라던 남보도, 아마 비슷한 선입견이 있었나보다 싶다.



문학이란 나에게 그런 편견이었다.

모두 즐겁게 웃고 있는 교실 안 대뜸 손 들어 "선생님, 인생이란 뭘까요?" 하던 아이 같았달까. 박장대소하던 우리 웃음 멈춰서 "쟤 왜 저럼.-_-"하고 수근대던 애 중 하나가 나였고.

그러다 읽고 쓰는 일에 내가 빠져버렸다.


그때도, 아직도 모르겠는 철학, 사유, 뭐시기 저시기완 여전히 멀다. 살며 한 번쯤 읽어 봐야 하는 니체라기에 간신히 책 펴놓고 열 줄을 못 넘겨 도로 덮어버린, 어쩐지 나와는 부조화스러운 일로 여겨지지만, 어쨌거나 읽고 쓰는 삶이 나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내가 만든 편견 속에 내가 들어 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의 나는, 글은 꼭 생각이 깊고 많아 신중한 사람이 써야한다는, 내가 만든 편견을 깨부수고 있는 중이다.

글과 진지는 어느 부분에 불과하며, "ㅋㅋㅋㅋㅋ"까지 포함해 보낸 스무개 이상의 카톡도 글이고, 짧게 적은 주간 스케쥴표도, 스쳐가는 하나의 문장도 글임을 알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온 세상 번져 있는 글 때문에, 글이 더 잘 쓰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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