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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Nov 24. 2023

내가 본 최고의 글쟁이


최근 칼럼에 '내 이름은 김순악, 일제에 짓밟힌 소나무 한 그루'라는 글을 인용 했었다. 출처는 《한겨레21》이었고, 《한겨레21》이었다.



그러나 신문사社는 글을 쓸 수 없다. 그건 허상이니까.



한 명의 인간이 썼을 터, 그를 찾고 싶었다. 단지 내가 알지 못해 비밀로 남겨진 글쓰기 진실을 그는 알고 있을 것만 같다. 글쓰기에 진실이 어디있을까 싶다만, 꼭 그랬다.



그렇게 법사를 찾아 헤맨다. 그러다 만 하루 넘지 않아 그를 찾게 된다.



네이버 프로필 : 안수찬(구 기자, 현 교수)



'내 이름은 김순악, 일제에 짓밟힌 소나무 한 그루'를 쓴 장본인 안수찬 교수 올시다. 그는 《한겨레21》 기자였다. 때문에 성은 한, 이름은 겨레, 나이 21이라는 닉으로 글을 낼 수밖에 없었던 모양. 



이제 '그'라는 실체를 찾았으니 그가 남긴 글을 더 찾아 읽을 수 있다. 그의 설법은 나를 통과해 멘티에게도 닿아져야 하기에. 밤 10시 30분이면 잠 드는 내가 새벽 1시까지 그의 글을 읽는다. 치밀한 글에 한 두자 거저 넘어가지 못한다.



오직 그 노인의 말 속에 진실이 있다.
나는 그걸 옮겨 적었다.

안수찬,《나는 어떻게 쓰는가》



수찬은 말한다.



"(독자를) 울리고 싶은가. 울지 마라. 웃기고 싶은가. 웃지 마라.

필자가 먼저 감정을 드러내거나, 감정이입을 부추기는 문장을 쓰면,

독자는 울고 싶다가도 눈물을 거두고, 웃고 싶다가도 미소를 지운다."



은경은 생각했다.



'그래서·····.'



위안부였던 김순악 할머니 회고 글이 어떤 식으로 쓰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담담하게 썼다. 할머니 글 어디에도 감정은 없다. 어르고 달래 주라며 악을 쓰던 내 글과 다르다.

울리지 않는다. 울게 만든다. 웃기지 않는다. 웃게 만든다.



그래서 글을 덮고도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가 쓰고 싶은 글이다.



수찬은 그렇게 써왔다.





처음으로 글이 아닌, 글을 쓴 '인물'을 언급해 본다.



(그동안 언급했던 몇 인물은 대중 독자에 익은 이름이라 그래온 것이 크다. 아는 이름이 등장하면 친근감 필터에 걸릴 테니까. 말 나온 김에. 해서, 당신이 아는 베스트 도서는 베스트가 아닐 수 있다. 베스트라기에 집고, 베스트라기에 따라 산 허다한 경우가 베스트를 베스트로 추앙하기 때문이다).



그를 대중과 공유한다. 이곳은 독자를 들었다 놨다, 울리고 웃기고픈 광대들의 집합소니까. 나만 알고 싶은 안수찬이지만 흠좀 쫌생이 같으니까.



아직 당신이 쓴 글만한 글은, 연간 독서 200-300권에 달하는 나 조차 만나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작가의 재치



잘 씀으로, 죽은 글조차 살려내는 그 심폐소생술이 재치 아니고 무엇이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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