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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Nov 29. 2023

외국으로 시집장가 온 배우자 고충

제33화

'간다.'



어딜 가냐 묻는다면? 시집을 가고, 장가를 간다. 왠지 모르지만 간단다. 태생이 관용구처럼 쓰이는 표현이니, 그러려니 하며 ‘간다’를 따른다. 하여 결혼한다니 친구들은 너도 가냐고 한다. 너까지 가면 혼자 남은 나는 어쩌냔다. 그러니 옆에 있던 친구가 외로우면 너도 가란다. 보다 못한 친구 아빠는 돌아오는 한이 있어도 너도 일단 가란다. 그렇게 너도 가고 나도 가고, 우리는 결혼이라는 미지로 떠난다.



그러나 여기, 가지 않고 ‘온’ 남자가 있다. 직항으로 10시간은 더 걸리는 동유럽 튀르키예에서, 오직 한국으로 장가 ‘오기’를 택한 남좌(남자가 아니라 꼭 남좌여야만 할 분위기). 사랑을 위해 자국에서 쌓은 커리어를 버리고 한국행을 택한 남좌. 바야흐로 그는 내 남편 훈. 그이 덕에 시집을 가긴 커녕 장가 온 그를 맞이한 나였다. 한국으로 와준 덕에 나는 커다란 변화 없이 매일을 일상으로 맞이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으로 장가 온 동시에 그는 외국인이 되었다. 한국에서 그는 ‘훈’이라기 보다 외국인으로 통한다. 어딜 가나 외국인 특정대우가 붙는다. 병원을 갈 때도, 핸드폰 개통할 때도, 보험에 가입할 때도, 외국인과 내국인 란 중 외국인 란에 체크하면 내국인과는 다른 요구가 기다린다. 좀 불편한 종류의 것일 때가 많다. 그리고 이는 내가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통하지 않는 것과 다르다. 나는 다수, 반면 그는 이 땅에 온 뒤 소수가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 땅에서 외국인이라는 소수로 살기란 어떤 일인가.


     


편견은 외모에서, 당신 테러리스트 아니야?



튀르키예 배우, 바리스 아르둑(이래요. 흠잘)


이는 모든 외국인 배우자가 겪는 언짢음은 아닐 테다. 허나 주로 피부가 검거나 검은 편이거나 검은 편이면서 쌍커플 짙은 눈에 덥수룩한 외모를 가진 외국인에게 해당한다. 그러니까 어딘가 한국인과 다른 외모를 갖고 있으나, 한국인 보다 낮다고 여겨지는 외국인에 속한 이야기다. 여태 허옇고 늘씬한 서양인을 두고 편견(편견은 애초에 공정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갖는 한국인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애초에 그들은 한국인 보다 높다는 이미지를 점하고 있다.



인간은 첫 째, 외모로 스캔된다. 시각을 통해 1차 수신한 정보로 상대를 판단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상대를 평가한다. 평소 가지고 있던 상징화 된 인식이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상대를 평가 하는데, 종국에 상징은 일반화에 불과하므로 곧 편견으로 작용한다. 당신은 그럴 것이라거나 그렇다 라며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이는 튀르키예인 훈에게는 꽤나 불리한 일이 된다.



“요즘도 외모로 차별하는 사람이 있어?”     



하겠지만 요즘도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 아직 세계화에 다이브 할 준비 되지 않은 어르신에게 첫 눈에 본 훈은 테러리스트나 다름없다. 검은 편인 피부에 짙은 쌍커플 있는 눈, 하루만 밀지 않아도 덥수룩 노홍철만큼 자라 있는 수염 때문이다. 그리고 훈을 본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소간 노올란 표정부터 짓는다. 훈의 말만 빌리면 그 눈빛 마치 ‘네가 여기 왜 있어?’라는 뉘앙스를 전하고 있단다. 하물며 훈을 보다 옆에 있던 쪼꼬만 한국인 나를 보고는 ‘너 왜 걔 옆에 있어! 피해!’ 하는 것 같단다. 거의 모든 어르신이 그런단다. 훈이 유독 할머니 할아버지 많은 동네, 그러니까 연장자가 많이 사는 동네에 거주하기 거부하는 이유다. 웬만하면 살고 싶지 않다 한다. 나 참, 외모에서 풍기는 상징성, 그리고 일반화가 이렇게 사람 고달프게 할 줄이야.



어쩌다 말이라도 섞어 “튀르키예에서 왔어요” 하면 형제의 나라라며 참전해 주어 고맙다는 말을 연신 전하시긴 합니다만. 어르신 만날 때마다 유세 하듯 악수하며 “녜녜, 저는 튀르키예 출신입니다” 할 수는 없는 노릇.



가끔 자국에서 귀한 대접 받을 사람이 나 하나 위해 한국 건너와 불필요한 마음 고생하는 걸 보면 내가 다 미안하다. 허나 별 수 있나. 이 나라에 발붙여 살 때까진 내가 더 잘하는 수밖에.




한민족, 글로벌 시대에도 여전히 닫힌 하나




나는 여태 한국사회에서 다수로 살았기에 소수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더욱이 한국 땅에서 소수는 굉장한 소외가 되기도 한다는 걸, 그전까진 미쳐 알 수 없었다.



국제결혼 한다 했을 때 전에 다니던 회사 보스가 이런 질문을 했었다. 한국은 아직 단일민족 문화가 강한데 남편 이민 왔다가 엄한 불편을 겪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그때, 나는 속으로 그를 비웃었었다.

역시 세대 차이는 무시 못 한다며(그는 곧 육십이었고 나는 갓 서른이었다) 이렇게.



아직 한참 모르네, 전 세계가 경계 없이 뒤섞이고 있는 거 모르남? 외국에 가도 한국이 보이고, 한국에 있어도 외국이 보이는 거 못 느끼시남? 우선 코로나부터가 그 방증 아닌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방방곳곳 범 우주적으로 퍼지지 않은 곳 없다는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그러나 아직 깨지지 않고 버젓이 버티고 있는 단일민족 신화, 그것은 여전히 존재했다.



한국은 구태여 구분하면 단일민족국가다. 공교육부터 5천년 단일민족을 강조해 온 나라기도 하다. 물론 역사상 생존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자 강조되어 온 표현이지만, 어찌되었건. 한민족을 하나의 민족처럼 이해하고 있는 보스를 보면서도 느꼈다. 단단히 뭉친 이 민족은 외부 유입을 아직 반기진 않는 다는 걸. 출산이 줄고 노동력 감소되며 종국엔 외국 노동력을 받아들이는 입장에 처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단일민족을 향한 견고한 관념이 어느 세대부터는 꺼지지 않고 있다는 걸.



‘우리’로 그어진 선을 넘지 않기를 바라는 한국이기에 거기서 오는 소외가 있다. 훈은 이따금 한국에 ‘네가 없음 나는 혼자’인 느낌이라는 말을 한다. 이 사회와 별개인 기분은 항상 느끼고 있기에, 본인 조차 여기 온 외국인이라는 수식어를 지울 수 없다 한다. 그리고 이를 듣는 한국인 아내 내 마음은 찢어진다.



*


갑론을박에도 병정처럼 빠져나와 한편에서 공기놀이나 하던 한국인 내게, 외국인 배우자를 한국에 모시고 온 후로 많은 것들이 내 것으로 엮인다. 그 덕에 관심도 없던 역사를 공부하고 나라를 배우며, 사람을 익힌다.

그나저나 우리가 한국에 사는 동안만큼은 훈이 잘 지낼 수 있었음 한다. 그것은 내가 튀르키예에 있을 적 느꼈던 것처럼, 순도 100% 제 나라 같을 순 없겠지마는, 가장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일상을 영위했으면.



그것이 외국인 배우자를 한국에 데려 온 모든 한국인 아내, 남편의 사랑어린 연민 아닐까 한다.






위는 네이버 연재 중인 글로, 원본에 해당합니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4947032&memberNo=38753951&navigationType=p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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