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화
국제적 결혼을 했다. 한국 기준 내가 내국인 그는 외국인이며, 한국과 튀르키예라는 국가 간 결혼을 이룩한 우리 부부다. 참고로 글에 나올 ‘훈’은 나의 외국인 남편이다. 그의 이름이다.
결혼한 뒤로 외국인과 3년 넘게 살고 있다. 세상은 구태여 내(內)와 구분 지었더랬다. 그러더니 ‘외국인(外國人)’이라는 언어도 만들었더란다. 외부에서 온 특별한 사람이다. 아무렴 외국인과 사는 일에 특이점이 있기는 하다. 따지고 들자면 좋은 점과 나쁜 점인데, 오늘은 각 3가지씩 말해보려 한다.
문득 다른 국제부부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여기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시댁식구 만나기 위해서라 ‘어쩔 수 없이’라도 외국에 가야한다는 것(일종의 외국여행). 시댁 가고 싶어(그러니까 튀르키예 여행가고 싶어서) 울부짖는 사람은 나뿐일 듯하다. 다른 하나는 여느 한국 며늘아기와는 다른 명절을 보낸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특히 두 번째 이유로 나보다 내 주변인이 더 부러워한다. 그래서 시댁이 외국에 있다는 사실은 꽤나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둘 중 하나가 배우자 모국어를 80%이상 구사할 수 없다면, 별 수 없이 둘이 공통으로 하는 외국어를 사용하게 된다. 소통은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도 마찬가지라 영어를 쓸 때가 많다. 하루 대화에 쓰이는 영어-한국어-튀르키예어 비율을 보자면 대략 (요즘 기준)20%-79%-1%. 남편 훈의 한국어가 미약하게나마 조금씩 늘며 영어가 줄고 한국어가 는 편이다. 2년 전만해도 60%이상 영어로 대화했다.
어쨌거나 영어의 샘이 마르지 않고 있음은 사실이다. 덕분인지 한국에 살면서도 영어 감각은 유지되고 있다.
다툼은 왜 생기는 걸까. 이유는 하나다. 내 상식과 네 상식이 달라서다. 그리고 그 줄기를 캐고 캐다 보면 뿌리가 하나 있다. 우리의 상식은 ‘같을 거’라는 막연한 전제다.
한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국가적으로 보아 하나의 정체성을 갖는다. 가령 한국이라면 한국적 정체성이 훈연한 것처럼 한국인에 밴 셈이다. 문화, 사상, 도덕, … 생활에 이 모두가 스미며 ‘한국적 상식’이 각 내면에 자리 잡는데 때문에 다름을 이해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동일한 생활양식에 따라 살 것이라는 막연한 전제, 다툼을 야기한다.
허나 외국인과는 다르다. 애초에 다름이 전제다. 타 문화에서 자라 나와 다른 정체성을 가진 ‘그’라는 걸 안다. 쉽게 말해 당신은 그렇게 자랐군요, 하는 것이다. 이는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어’라는 태도다. 사실 처음부터 다름을 수용할 마음이 없었다면 국제연애나 국제결혼을 할 수도 없었겠지만. 여하튼 그런 인정하는 마음이 둘 사이를 윤활 한다. ‘너는 왜 그래’라는 거친 말이 튀어나올 일은 극히 드물다.
이것은 여권파워에 관한 문제다. 때문에 모든 국제부부가 겪는 애로사항은 아닐 것임을 사전에 언급하며.
영국 국제교류 자문업체인 헨리앤드파트너스가 매년 발표하는 ‘헨리여권지수’에 따르면 한국 여권은 랭킹 3위이다. 2023년 발표 기준 무려 189개국을 무비자로 방문 가능하다고 하니, 대단한 능력이다. 참고로 1등인 싱가폴은 192개국 무비자 방문 가능하단다.
반대로 남편 여권 발급지인 본국, 튀르키예는 순위권에 없다. 좌절. 내가 한국 여권을 가지고 189개국을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는 반면, 훈은 웬만한 경우 ‘비자 있이’ 여행해야 한다. 하물며 비자 발급이 어디 쉬운가. 발급에 소요되는 기간과 비용 모두를 따지면 여행 전부터 지친다. 함께 해외 여행가기가 좀 까다로운 게 아니다.
훈은 오직 나를 위해 한국에 살겠다 결정한 자이다. 그는 한국이 좋아 한국에 살다 나를 만난 게 아니었다. 서툰 한국어로 외국인을 이방인 취급하는 낯선 문화에, 오롯이 나 하나 때문에 자신을 적응 시켰다. 지금도 꽤나 수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 여파는 그의 한국 보호자인 나에게도 미친다. 졸지에 다 큰 아들을 두게 되었다.
아파 병원에 가야 할 때마다 훈을 따라 나선다. 혹시나 영어 회화에 서툰 의사 선생님을 만날까, 간호사 선생님과 소통에 오류가 있어 엉뚱한 주사를 맞지는 않을까 싶어서다. 실제로 비슷한 일도 많았다. 사건사고가 될 빤한 일을 미연에 막으려면 따라 나설 수밖에. 아들 말은 엄마만 온전히 알아들을 수 있다.
여하튼 통역사로서 병원 길에 동행한다. 덥수룩한 머리 잘라야 할 때도 훈 따라 미용실에 간다. 가운으로 덮인 훈이 거울보고 앉아 있을 때, 그 뒤에 서 헤어 디자이너님과 대토론하기 위해서다. 우리 아이 머리는 이렇게 잘라 주시고요, 여기는 유독 바싹 잘라주세요. 이목구비가 뚜렷해 그런지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리더라고요. 하하. 이렇게 세심한 나를 보면 나의 X들은 서운해 할 테다.
훈은 외국인 대상으로 한국 정부에서 시행하는 한국어 및 한국문화 과정을 전부 수료했다. 그렇다고 현실 한국어를 잘 하지는 못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교과서에 기반 한, 교과서적인, 다소 현실과 먼 교육이기 때문이다. 나도 잘 안 쓰는 단어를 배워 오기도 했다. 한때 토플(TOEFL, 영어 시험) 단어 외우던 내가 생각난다.
그래서 ‘레알’ 현실에서 써 먹을 번한 표현은 매번 따로 설명해주어야 한다. 어떤 영상을 보다, 영상 속 인물이 무심결에 뱉은 말에 훈이 묻는다.
“베이비 ‘존나’가 뭐예요?”
하면 나는 말한다. “음 그건 ‘졸라’를 좀 더 나쁘게 말한 거예요.” 그럼 다시 묻는다.
“졸라? 졸라가 뭐예요?”
그때야 나는 훈은 ‘졸라’도 알지 못하는 백지 상태라는 걸 인지하고 다시 말한다. “영어로 very much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런데 어디 가서 쓰지는 마. 별로 좋은 말은 아니에요.”
그러나 훈은 바로 눈치 챈다. ‘존나’라는 말을 할 때마다 아내가 난감을 표하며 나를 뜯어 말리겠구나, 나는 이 모두를 즐겨야겠어. 곧장 지읒니은을 남발한다. 알려줄 수도 알려주지 않을 수도 없는, 이런 난감한 상황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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