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저녁,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보통이면 핸드폰 엎고 할 일 하는데 어쩐 일인지 받아 볼까, 싶었다.
“여보세요” 하니 웬 남자 육성이 들린다.
"저 지훈이에요."
열 두 제자 중 가장 장난 많던 지훈이.
살짝 허스키한 게 지훈이 맞다.
갈갈한 목소리로 내 생각이나 전화했다고 한다.
"선생님 언제 수업 또 오세요?"
"선생님 제가 뭐 하나 말해줄까요?
어제 선생님하고 쓴 일기 보다가 눈물 났어요."
그 뒤로 담담한 대화가 오갔다.
지켜주어야 할 것 같아 더 말하진 않을.
전화주어 고맙다며 통화를 마무리 짓고는,
한동안 지훈이 생각이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지훈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선생님하고 김밥 먹지 않겠느냐고.
제안이었다. 지훈이가 보고 싶어 한 김밥 제안.
지훈이 학원 마친 오후 5시 20분에야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
“지훈아! 잘 지냈어?? 얼른 들어가자.”
통통한 두 볼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아이.
초3 외모는 여전한데, 수업 시간 친구 똥꼬 찌르고 도망가고
큰 소리로 장난치던 그 지훈이가 이 지훈이 맞나 싶게 얌전하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먼저 와 선생님 기다렸다면서 만나서 너무 좋다 한다.
먹고 싶다는 오므라이스, 돈가스며 김밥을 시키고 면전 대화를 나눈다.
"선생님 원래 모르는 번호 안 받는데 어제는 왠지 받고 싶더라.
그래서 받았는데 지훈이였어! 너무 반갑고 좋더라."
"선생님한테 행운이 오려나 봐요. 제 전화를 받았으니까요."
아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묘한 힐링을 받을 때 있다.
혼탁했던 내 정신이 순간 투명해지는 느낌이랄까.
단조롭고, 단순하고, 경쾌하고, 맑은 걔들에,
나는 물들고,
그것은 지훈이가 말한 ‘행운’에 다름 아니었으려나.
30분이 채 흐르지 않았다.
더 맑게 떠들고, 더 단조롭게 놀고 싶은데
지훈이가 6시까지 태권도에 가야한단다.
주어진 시간이 너무 아담하다.
김밥 집에서 나와 학원까지 바래다주던,
어둠 짙게 깔린 그 길이 어찌나 아쉽던지.
그렇게 지훈이는 들어가고 나는 다시 일로 돌아와
책상에 기댄 왼손으로 머리 받친 채 멍하니 앉았다.
꽉 쥐었던 머리 힘을 빼고.
그러다 참지 못하고 자세 고쳐 잡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밤 8시를 맞는다.
어쩌다 보니.
단지 이 한 마디가 남아서, 한 마디만 쓰려고 했는데.
"오늘 너는 나의 한줌 힐링이었다는 걸, 너도 알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