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국제커플에게 ‘연락’이란 무엇인가.
그에 앞서 국제연애 특(징)부터 집고 넘어가야겠다.
상상하듯, 국제연애라 하면 장거리 연애를 대단한 특징으로 한다. 소위 “롱디(롱 디스턴스 log distance 연애의 약어)”라 하지. 좀 먼 게 아니라, 좀좀 많이많이 먼 까닭에 국제 커플에게 깔려 있는 기본 정서가 있었으니, 바로 애틋함이시겠다. 이들은 애틋하다. 쉽게 만날 수 없어 애달프고 떨어지면 언제 또 볼지 몰라 고달프다. “오빠가 지금 갈게!” 하고 택시 타고 달려와 딱 붙은 두 몸으로 서로의 체온 확인하기란 실시간으로 이뤄질 수 없고, 다음 만남은 서너 달 뒤에나.
이토록 장거리 연애란 거리만으로 애달픈 일이 되건만, 또 다른 요소가 애틋함을 돋우고 있었으니. 국제커플에겐 오직 ‘연락’이 유일한 애정확인 수단이라는 것. 실낱같은 목소리 고소한 깨 같은 텍스트.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것들. 연애의 유일한 수단인 연락이올시다.
허나, 이들은 실체하지 않고 허공에 날아다니는 까닭에 실존감을 죽인다. 목소리나 텍스트엔 물성이 없어 느낄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랑한다 내뱉는 연인의 달달한 목소리, 내 사랑 잘 잤났냐며 보내온 메시지에 시공간을 넘어 오늘도 사랑하고 내일도 사랑을 지속하지. 환상이자 환영 같은 국제연애를 지속하는 힘 결국 연락이다.
그런 까닭에 국제연애에서 연락은 집착도가 높은 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한 마디를 표현하자면 국제커플에게 연락이란 둘을 잇는 ‘실낱’이라 그렇다. 몹시 얇고 가늘어 툭 끊어 버리면 둘을 닿게 할 수단은 어디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쓸모없는 불안이 조장되기도 한다. 나로서도 십분 공감이다. 그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달지, 일이 생겨 핸드폰 번호를 바꿔야 했다던지 그런 부득이한 상황은 늘 최악으로 두었다. 오죽하면 메일 주소며 집 주소, 부친 연락처까지 받아두었다는…. 지금 생각하면 웃픈 일이지만 답장이 없다면 집에 찾아 가야겠다고 말이다. 농담 같은 진담이었다.
그만큼 국제커플에게 연락이란 민감한 사항이다. 연락이 유일한 생존 확인과 사랑 확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것에는 대안이 없다. 그래서인지 뭇 국제 커플에게 연락 문제란 신경증 유발각 사안인 듯했고, 대충 보아하니 세 가지 이유로 연락에 문제가 생기는 듯 보였다.
1. 성 : 남과 여 성향 차이
2. 배경 : 나라별 연애를 향한 태도 차이
3. 개인 : 개별적 차이
1. 여자는 연락이 곧 사랑 확인 수단
여자는 연락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남자는 연락을 ‘연락’으로만 여기는 경우, 연락 문제 발발
여자는 끊임없이 확인받고자 한다. 무엇을? 사랑을.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갖은 수단을 써 확인하려 든다. 심지어 ‘이런데도 나를 사랑할거야?’ 라며 그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가 ‘으응, 그럼’이라는 확인 받고야 씨익 웃는 여자다. 불만하지 마라. 여자의 생리가 그렇게 생겨먹었다. 반대로 상대가 안정감 주지 않았기에 더욱 확인하려 드는 면도 있으리라 생각하면, 그녀가 딱히 이해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안정감이란 믿음 따위를 말한다.
반면 남자는 그렇지 않다. 연락은 필요할 때만, 사랑은 사랑할 때만 한다. 남자에게 연락은 사랑 확인의 수단이 아니다. 애초에 매 순간 사랑을 확인하려는 욕구가 없다. 남편 훈의 말을 따오면 “사랑해, 사랑하는데 표현을 못해” 다. 꼭 표현해야만 알겠니, 그런 거라고 대략 이해하며 산다.
아울러 여자는 시시콜콜한 하루 일상 나누는 사람을 가장 친밀하고 애착 있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해서, 꽁냥꽁냥한 자기 일상을 미주알고주알 남자친구와 나누고 싶다. 때문에 연락이란 필요가 아니라 생활이다. 필요한 때마다 꺼내는 게 아니라 사랑생활로서 연락인 것이다. 어쩌면 그게 여자의 필요인지도 모르고.
반대로 남자에게 연락은 필요다. 나도 여자라 잘은 모른다. 그냥 그렇단다. 해서, 매일 뭐하냐고 메신저 하는 건 나다. 어쩌다 남편이 “모행?”하고 보내면 좀 놀라기도 한다.
연락 덜 하는 저기 저 나라에 사는 남자에, 확인할 길 없는 이 나라에서 나는 여자는 속에 천불이 생길 수밖에.
2. 연애를 대하는 문화 차이
동양인끼리 암묵적으로 통하는 특유의 문화가 있고, 서양인끼리 통하는 특유의 문화도 있다.
전에 총균쇠를 쓴 작가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다큐멘터리에 나와 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생존에 협동이 필요했던 동양은 집단이 우선이다. 집단은 ‘우리’를 중요시하며, 여기 속한 개인은 집단에서 누락되지 않기 위해 ‘우리’를 의식한다. 반대로 서양은 개인이 우선이다. 개인으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들은 ‘개인’을 중요시한다. 집단의 시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때 동양권은 ‘타인에 감염을 염려하며’ 철저히 마스크 쓴 한편, 서양권은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라며’ 마스크를 비교적 덜 쓰기도 하였다. 재레미 다이아몬드가 다큐멘터리에 나와 든 예시다. 말이 좀 늘어진 듯한데 어디까지나 다른 문화에 살아 온 외국인 남친, 여친을 좀 더 이해하길 바라며 썼다. 앎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한 이유가 사랑에도 적용 가능한지는 알 수 없다.
훈과 연애 시절을 떠올려 보면 우리에게 벤 상식도 어느 정도 비슷했다. 튀르키예는 지리상 동유럽에 있지만 사실 그들은 동양인이다. 때문인지 연락 문제로 시름했던 기억은 없다. 오히려 내 욕구만큼 잘 연락해준 그 덕에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외롭기 힘들었다. 그저 보고 만지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결론은? 문화적 배경이 비슷한 두 나라간 연애라면 연락 문제에 좀 나은 편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음. 둘 중 하나는 몸에 베인 문화적 태도를 버리고 상대를 배려를 하는 수밖에. 국제연애란 새 문화를 통째로 껴안는 것, 그게 아니라면 사랑을 유지하기란 힘든 것.
3. 개인 특성
국제 연애에도 적용되는 개인 스타일
물론 그게 같은 동양권 문화라 잘 맞았는지는 단정할 수 없다. 어쩌면 개인 성향, 훈의 베리베리 스트로베리 같은 다정한 성격 덕인지 모른다. 그저 그것이 연애까지 닿은 걸지도 모른다.
자신을 다소간 버리더라도 상대에 맞추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연애에도 자기 영역이 중요한 사람이 있다. 둘의 사랑은 전자와 전자 혹은 후자와 후자가 만나면 꽃가루가 날리는 연애 생활이 되고, 전자와 후자가 만나면 다툼이 인다. 물론 정답은 없고.
그래서 해결은 뭘까.
다시 말하지만 국제 연애에서 ‘연락’이란 탯줄처럼 태아와 엄마를 연결하는 유일한 끈이다. 탯줄이 끊기면 관계가 끊긴다. 이처럼 툭, 끊어질 수도 있는 한 줄짜리 연애이기에 국제 연애에 연락 문제란 문제 중 문제인 것. 그래서 다른 어떤 사안보다 시원하게 해결 볼 문제라는 생각. 둘이 사랑하잖아, 사랑하니까 비행기 타고 만나기도 마다 않고 연애하는 거잖아.
이 글을 통해 외국인 남친 여친을 이해하는 아량이 생겼다면 다음은 솔직해질 차례다. 연락 문제로 끙끙 앓고 있다면 그나 그녀를 ‘이해하려’ 혼자 고민하지 말고, 상대방에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건 어떨까. 불안 한 가운데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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