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나에겐 딸린 외국인 남편이 하나 있다. 나와 살겠다며 튀르키예에서 한국으로 왔고 현재는 한국 모 대학교 대학원에서 연구생으로 학업 중. 연구 프로젝트 수행으로 아침 9시부터 밤 8시까지 낮밤으로 풀가동하며 살고 있다. 얼굴 마주하는 시간 하루 2시간 남짓이려나. 그런 그가 하는 말이, 이번 학기는 유독 빡세단다. 동시다발적으로 주어진 프로젝트 너덧 개라 매일 “요즘 스트레스 많이 이쏘”를 입에 달고 사는데…. 그가 안쓰러워 오늘 잘 되어 가냐는 문자를 남겼더란다. 그랬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요. 할 게 많아. 쉣!”
저런저런, “쉣”이라니. 유유. 아침부터 근심 가득한 표정이더니만. 아내로서 나는 그의 “쉣”에 동요된 나머지 그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이렇게 보내게 된다.
“힝구힝구.”
별 생각 없었다. 상황이 거참 힝구힝구 같아 보냈고, 그러곤 핸드폰을 엎었다. 잘 쓰는 표현은 아닌데 어디서 배웠는지 술탄 듯 물 타듯 자연스럽게 뱉어버린 것. 이해했겠거니 하고 놓아버린 것. 한참 뒤 엎드려 있던 핸드폰 뒤집어 메시지 확인하니 그의 질문이 도착해 있다. 남편이 묻는다. “그게 뭐예요?” 정부 제공 한국 언어 & 문화 교육 최고 과정까지 수료한 그이건만, 아직 나도 모르는 단어가 또 있네 싶어 물었겠다.
그러다 이번엔 내가 “쉣”이 된다. 이쯤 마무리 짓자며, 네 고생 십분 이해한다며 보낸 “힝구힝구” 역풍으로 되돌아 온 물음에 뭐라 설명할지 한참을 고민해야 했기 때문. 챗 gpt에 물으면 알려주려나 그것의 의미를. 네이버 지식인에 물으면 답해주려나, 외국인 설명 맞춤으로. 그때로 핸드폰 두 손에 쥔 채 뚫어져라 힝구힝구를 생각한다. 힝구힝구스러운 상황이라 힝구힝구라 했건만, 도대체 이를 무엇이라 알려줘야 할지 몰라 몽롱하다. 가히 힝구힝구다.
그래서 “힝구힝구”가 뭘까.
난생 처음 힝구힝구를 생각한다.
단 한 번도 의문해본 적 없는 이 신종 의성어를, 외국인인 당신에게 도대체 무어라 일러줘야 할지 알기 위해. 특정한 정의 없이 오직 몸으로, 한국정서로 받아들인 이 개념을 언어로 설명하기 위한 한국인 아내의 몸부림. 힝구힝구는 Hing-gu Hing-gu야, 라고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내가 내린 힝구힝구는 바로 이것.
“그게 뭐냐면.
그냥 우는 소리야. 유유(ㅠㅠ)는 뭔지 알지? 슬플 때 내는 소리. 이처럼 힝구힝구는 다른 톤으로 우는 소리라고 생각하면 좋아. 유유가 눈물 주르륵 흘리는 느낌이라면 힝구힝구는 글썽글썽 거리는 느낌이랄까. 완전 슬픈 건 아닌데 애잔하거나 딱한 상황을 표현하고 싶을 때 하는.
베이비도 느꼈는지 모르지만 많은 한국 여성은 안쓰럽거나 슬픈 상황에 “힝~”이라는 콧소리를 내곤 하지. 아양이라고나 할까. 내 경우는 귀엽게 보이려고 하는 때가 많고. 때로는 단어나 문장으로 하는 정확한 표현보다 음처럼 의미 없는 소리가 감정을 간접 드러내곤 해. 그냥 느낌으로 대충 알아들어, 하는 거. 약간 사랑하는 사람과 친밀감 높이는 수단 같은 거라고 생각해도 좋아. 아무한테도 “힝힝” 거리진 않으니까. 그러니까 구 남자친구나 현 남편인 당신에게만 하는 소리인거야.
이 이상의 의미는 딱히 없어. 단지 ‘기분을 표현’할 때 내는 음악 같은 거야.
그렇다면 ‘구’는 왜 붙었으며, 힝구를 두 번이나 반복한 이유를 뭐냐 묻는다면. 글쎄, 한국에서 한 때 “~쓰”와 “~삼” 이라는 접미사가 유행했던 적 있는데 그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좋아.
“올훈쓰, 밥 먹으삼.”
*올훈 : 남편 이름
한편 외계어처럼 들리는 이 “쓰와 삼”은 사투리는 아니고, 그저 한 때를 풍미한 은어 같은 거였어. 지금은 손발 오그라들어서 못 하는데 그때는 너나할 것 없이 쓰와 삼을 입에 머금고 다녔지. 하물며 나의 상사였던 그놈도 내게 일 주문할 때마다 “이것 좀 해주삼” 했었으니까. 아마 지시하면서도 지시라고 느끼지 못하게 은근한 친밀감의 표시 아니었을까 해. 왜 은어라는 게 그렇잖아. 우리를 연대하게 만드는 언어. 너와 내가 동류라는 무심한 뉘앙스. 그에게서 흐르는 “쓰와 삼” 들을 때 마다 우웩 거리긴 했지만 말이야.
그것과 ‘구’는 비슷해. 딱히 의미 없어. 내가 당신에게 쓰고 싶어서 한 은어일 뿐이야. “구~”하고 소리 낼 때 윗입술, 아랫입술이 뽀뽀하는 모양으로 동그랗게 모이잖아. 그 모습이 귀엽게 보여서 ‘구’를 자주 차용한 것도 같고.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말이야.”
“너와 살다보면 이렇게 나도 모르게 쓰고 있는, 네가 한국인이었다면 진작 알아들었을 특정 표현 사용하는 나를 발견하곤 해. 힝구힝구나, 쓰와 삼이나. 때마다 너는 내게 물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알고 싶어 하지.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 그러나 네 예상과 달리 의미로 통하는 말이 아니라 느낌으로 통하는 말이라, 때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나는 망설여. 그저 소리로서 들리는 음, 느낌으로 받아들여주었으면 하는데 말이야. 예컨대 외국에선 개 짖음을 “Bark! Bark!"하고 여기선 개 짖음을 “멍멍!”또는 “왈왈!”하는 게 다르듯, 듣고 표출하는 리듬이 전혀 다르기에 거참. 나로서는 뭐라고 알려주어야 할지. 어쩌면 우리의 다른 언어체계가 다른 청각체계를 이끌어, 매 순간 이 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어. 그런 생각을 해.
이처럼 우리 사이 공백이 생길 때마다 이를 메우기 위해 나는 부단히 새로운 정의를 내려.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한 번도 궁금하지 않던, 너를 위해 의미를 찾아. 찾아 또 헤매. 내가 가닿은 의미의 지평이 너의 지평을 의미하지는 않으니까.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딛어보여. 어떻게 하면 네가 이해할 수 있을까 하고.
우리 함께 사는 동안 늘 그런 시도의 연속이었어. 네 덕에 나는 지평의 끝을 넘어 새롭게 나아갔고 그 이야기를 오늘을 글로 쓰고 있어. 힝구힝구에서 시작한 이 사유가 마침내 한 편의 글이 된 거야.
고마워. 한겨울, 차가워진 내 손발이 따뜻한 네 몸에 닿을 때 춥다며 피하는 너지만, 그래도 고마워. 네 덕에 나는 힝구힝구 마스터가 되었어.
그나저나 이제 힝구힝꾸 뜻을 알겠지?”
그러니 남편이 말한다.
“아, 그런 거구나. 힝구힝구.”
위는 네이버 연재 중인 글로, 원본에 해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