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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Jul 15. 2024

'글'빨로 외국인 남편 취업시킨 썰(자소서 작성)


지난 목요일 튀르키예에서 한국으로 복귀했습니다.

예정된 남편 출근에 더 쉼 없이 들어와야 했고





말 나온 김에, 오늘은 남편 한국 회사에 취업시킨 썰을 풀까 합니다.





역시나 글쓰기와 관련한 이야기라 푸는 거고요.^_^

(결론부터 말하면 '자기 소개서' 잘 써서 면접까지 간 케이스기 때문)





취업 준비 중이신 외국인이나 내국인, 외국인 배우자를 둔 내국인, 하물며 글쓰기 잘 하면 삶에 득만 있지 실은 없음을 다시금 이 시리게 깨닫고 싶은 여럿 분들에게 가벼운 자극이 되기를 바라며 씁니다.





*배경을 풀다 보니 '글쓰기' 이야기가 저 뒤로 밀려났습니다.

'글쓰기' 이야기만 듣고 싶다면 저 밑으로 내려가 읽어보세요.








배경부터 풀자면?




제게는 딸린 외국인 남편이 하나 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실 테지요?^_^





튀르키예와 한국, 소위 국제간 결혼을 한 덕에 '글로벌 러브'에 관한 칼럼을 1년 넘도록

네이버 연재하기도 했었는데요.





(아래의 자가 내 남편은 아닙니다).




https://brunch.co.kr/@supereunkyung/577





저 없인 못 살겠다며(?) 제 나라 떼어놓고 한국으로 건너 온 그는

최근까지 기계공학-소음진동제어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습니다.





네, 대학원생이었죠.





올해 8월이 졸업 예정이었습니다.

졸업 학기가 시작되던 2024년 3월, 남편의 새출발이 얼마 안남았다는 신호로 우리부부는 대약동을 할 준비를 하기 시작합니다.






매력 어필이 싹 빠져있던 자소서




그러나 저는 어떤 취업 준비도 돕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취업준비로 한참 회사 서치하고, 이력서 정비하고, 자기소개서 작성할 때 저는 깡깡 무관심 했습니다. 





제 일로도 바쁜지라, 하물며 '자립自立'을 추구하는 인간류인지라

(그래서 돌 깎아 동상 세우는(立) 심정으로 내 일을 해 나가고 있나봄)





"남편, 잘 할 수 있어! 너를 믿어!"





믿음은 2빠2 심어주고도 내 일에 몰두하느라 남편 취업은 저 편에 두었습니다. 사실 실질적 도움을 주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 도움이라봐야 한국 회사 취업 도움 정도겠지요?





100세 인생, 한국에서 이만큼 살면 충분하다며

독일이나 영국에 살아 보기를 바랐습니다.

마지막이 '한국'이었습니다. 다양한 경험 안에 생하고 싶은 저이니까요.





네, 솔직한 마음으로 한국에 취업되지 않기를 내심 바랐던 겁니다.





실제 한국엔 그가 원하는 직무의 일이 없기도 했습니다.

유럽에서는 진작 발전한 산업이지만 한국은 아직이라서요.





제 뜻을 알고 있던 남편은 독일과 영국에 위치한 회사 위주로 지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안 풀리더군요.





결국 가능성을 넓히는 전략으로 한국 회사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한국 회사 중에는 그가 일하고 싶은 정확한 '그 포지션'의 일은 없었습니다만, 일단 비슷하게 할 수 있는 직무라도 지원은 해보기로 했습니다.





혼자 이력서를 쓰고, 자기 소개서를 작성하며 틈틈히 '그 포지션'의 적임자를 찾고 있는 회사에 지원해 나갔습니다.





자기소개서(자소서) 나한테 보내봐




(어쩌다 이리 길어졌는지 모르겠으나, 시작을 했으니 끝은 보겠습니다).






그러나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남편은 혼자 고군분투하며 한국 회사 서너 곳에 지원을 했었습니다. 본인이 꼭 원하는 포지션은 내려놓고요. 한국에서 대학원까지 나왔으니 아무래도 면접 기회라도 얻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왠걸. 서류 전형부터 탈락이었습니다.





소위 고급 스펙을 가진 '그'인데도 말이죠.

비슷한 스펙인 연구실 친구는 그쯤 S전자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은 상황.





스펙이 결코 걸림은 아니었던 겁니다.

(스펙이 약해도 글(자소서)로 어떻게든 풀었어야 했고요).





그러다 저러다 5월 말인가, 6월 초가 왔습니다.

아직 이렇다 할 제안은 없었고 앞날에 대해 무한히 오픈 된 상태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밤, 연구실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정말 우연하게도 남편이 일하고 싶은 포지션의 적임자를 찾는다는 회사 공고를 봤다고요! 한국에도 그런 회사가 있다는 사실에 반가웠고, 남편은 설레어 했습니다. 낙타가 구멍 찾은 것처럼. 몹시 특화 된 전문 산업이라 사실 포지션 자체가 적었으니까요(그때까지 한국엔 해당 포지션이 없는 줄로만 알기도 했고요). 그러던 찰나 만난 기회라 반가웠던 겁니다. 남편이 이 포지션에서 꼭 일하고 싶다 합니다. 아내된 자로서 저는 결심에 이릅니다.





안 되겠어. 내가 나설 차례군.





다소간 흥분한 그를 보며 한국인이자 언어술사이자 글 쓰는 작가 아내로서 이제는 나서야겠다고 판단, 남편에게 주문을 했습니다.





"이력서랑 자소서 쓴 거 보내주세요. 제가 고쳐 보겠습니다!"





면접 기회는 받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제야 공평한 게임이 될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자소서 뜯어 고치기 - 매력 어필 작전





'그래서 무엇이 그를 면접의 기회도 박탈시킨 걸까. 그러니까 무엇 때문에 서류 전형부터 탈락일까. 육각형스펙이 있다면 6꼭지 대부분 만점에 가까운데. 스펙이 이유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서류에서 보여줘야 하는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그날은 남편의 이력서며 자소서를 보고 이런 질문에 빠졌습니다.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면접만 볼 수 있어도 그는 100% 합격 될 거라고.

(도치 아내 같아서 더 풀진 않겠음)





여하튼 면접 기회는 받아야했습니다.

서류는 통과해야 했습니다.





이력서는 손 댈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력서 스펙은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습니다. 





남은 부분은 딱 하나

자기 소개서였습니다.





자기소개서로 면접까지는 가야 한다.





그때 한 질문이 위의 것들이었습니다.




도대체 뭐가 글(자소서)에 빠져있던 걸까.

뭘 더 써 보여줬어야 했을까.





간과해, 글에 드러내 보이지 못한 부분은 뭘까.





그러다 찾은 한 가지가 있었으니.





그가 외국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것이 사측에서 고려 할 가장 신경 쓰임일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남편에게 자소서 딱 한 칸만 바꿔 써보자고 했습니다.

그때로 그에게 진지하게 이야기를 건넵니다.








남편(당신)은 외국인이에요. 그렇죠? 그것도 튀르키예라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 한국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어요. 특정 나라에 대한 편견도 있겠고요. 그 해소되지 못한 '편견'은 고용 시 리스크로 작용할 거예요. 내국인 고용 보다 리스크가 더 크다고 생각할 테죠.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해소해 주어야 해요. 





게다가 내가 남편(당신)의 자소서를 보니 '왜 나를 고용해야 하는지', '그게 당신네 회사에 얼마나 이득인지'에 대한 내용이 잘 안 보여요. 한 마디로 매력 어필이 불충분해요.





우리는 1차적으로 글(자소서)로 서류 심사관을 만나야 해요.

그러니까 글로 충분히 매력 어필해야 해요.





외국인임에도 당신을 고용해야 하는 이유.





그들의 머리 속에 들어갔다라도 나온 듯, 그들 생각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듯, 그들이 지레 갖고 있던 편견을 글로 다 부서주세요. 그리고 당신만의 매력을 과감히 어필하세요. 물론 해당 회사, 해당 포지션에 맞게요!"





"자, 이제 자소서 한 칸에 무엇을 써야할지 알겠나요?"





(더 풀어 드리고 싶은데 개인마다 처한 배경이 각기 달라 꼬집어 '이걸 쓰세요' 하기가 쉽지 않네요)









글(자소서 포함) 쓸 때는 : 상대방 머리에 들어갔다 나올 것




실제 자소서




지극히 사적인 내용이라 밝히진 않겠습니다만, 여하튼 그때 남편을 도와 수정한 한 칸입니다. 자소서에 작성해야 할 항목 중 이 한 칸을 남편이 수정했고(나머지 칸은 전과 동일), 그 뒤로 바로 연락이 왔더랍니다.





"면접 보러 오세요."







*

참고로 자소서 쓰는 법에 관한 책이나 강의, 온라인 자료 등 일절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당일 2시간 내에 고쳐야 해 시간도 없었고요.



어차피 한 길로 통하는 글쓰기 법칙은 있고 그걸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썼더랍니다.






저마다 처한 상황은 다릅니다.

지원하는 회사, 회사의 특성, 오픈 포지션, 나의 이력, 나의 성장배경, 나라는 사람의 특성 등.





이에 맞추어 자소서 써야 할 테고, 때문에 하나로 풀리는 정답형 자소서는 있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자소서'나 혹은 '어느 글'에 통하는 한 가지 힌트를 건네자면 바로 이겁니다.





먼저 상대방 머리에 들어가 보세요.

이를 도울 탁월한 질문은 바로 이겁니다.





"내가 '그'라면?"





이 질문에서 시작하는 거예요.





물론 나는 그가 아니기에, 하물며 만난 적 없는 타인이기에 그의 머리를 완전히 리드(read)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가장 보편 타당한 수준에서, 가장 객관적으로 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는 것.





이때 도움이 많이 되는 두 가지가 있기는 합니다.


1) 관찰

2) 독서

3) 통찰





순서대로 입니다.

먼저 관찰하는 습을 기르고, 독서를 통해, 제 나름의 통찰을 해나가는 매일을 반복하는 거죠. 일단 여기까지.







글쓰기 시험에 통과한 기분이랄까





거의 다 왔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쓸 수 있던 이유가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자소서 한 칸을 뜯어 고치며,

내심 '내 자신에 대한 시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과연 이번엔 면접 기회가 주어질까?'

에 대한 저 나름의 글쓰기 시험이라고나 할까요.





언어 다룰 줄 아는 나의 도움으로 서류 심사관을 '설득(그것이 유혹이고 매력 어필이고 무엇이고 간에)' 할 수 있다면, 설득하는 글쓰기에 있어 나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을 거라고.





결국 시험에 통과했고 그 자격으로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겠다마는 '스스로 시험한다' 생각하고 자소서 준비를 도왔기에, 그럼에도 확신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네요.





문득, 자소서 잘 쓰는 법 강의 할 수 있겠다 싶네요.

제게는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가르칠 힘이 있으니까요.





자, 마지막 한 단락 쓰려고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그래서 '글'이란 뭘까요?

'잘 쓴 글'이란 또 뭘까요?







'글'이란 목적따라 달리 쓰여야 한다





이 추상적이고도 주관적인 개념을 글방 칼럼에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왔습니다. 어느 때는 이것을 의미하고, 또 다른 때는 이것을 의미한다.





개념은 맥락에 따라 정의를 달리하기 때문인데요.





오늘은 '잘 쓴 글'의 정의를 이렇게 하려 합니다.






//

목적에 맞춰 의도를 갖고 썼을 때,

그래서 글을 통해

내 목적이 달성 되었을 때



그 글은 '잘 쓴 글'이다.


흥나라흥 글방

//






저는 남편에게 자소서를 '예술적'으로 써보자 하지 않았습니다.





문학작가처럼 언어의 아름다움을 자소서에 드러내 보이자고, 비유를 가미한 아름다운 수사로 자소서를 채우자고, 결코 주문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소서를 단순히 '나열식'으로 써보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자소서'는 서류 심사자를 유혹하는 게 그 목적이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이 친구, 한 번 만나 보고 싶군' 까지가 그 역할임을 정해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결국 유혹이었습니다.

글로하는 유혹.

매력발산.





'글'이란 목적에 맞게 써 그 목적을 달성했을 때, '잘 쓴 글'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서류 통과 & 면접 기회였기에

그 자소서는 '잘 쓴 글'이었습니다.





해서, 글쓰기의 세계란 온 세계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목적은

가변하고 무한하며,

그것을 '글'로 달성해야 하는 모든 순간이





바로 글쓰기이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저는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왜냐고요?





글로 나를 드러내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쓰시라며, 건강한 채근을 위해 전하는 말)





ps. 

'사랑'이 다 해주긴 하지만,


국제부부로 살제, 작거나 큰 웅덩이를 만나는 때 있습니다. 제 나라를 떠나 외국에 사는 배우자 한 쪽이 더 수고스러울 테지요. 특히 '한민족' 이라는 개념이 강한 한국에서는 더 그럴테죠.




저는 압니다.




제 능력이 바탕 된 듯 이 글을 썼지만서도, 

그간 한국에 살며 수 많은 한국어 수업을 이수하고, 교수에게 인정받는 학생으로 차곡차곡 준비 잘 해 온 남편의 수고가 절대적이라는 걸요. 최종 면접 통과라는 자기 몫을 자신이 다 해냈기에 가능했다는 것도.




제 글쓰는 능력은 2빠2 자랑해 놓고도

최종 공은 남편에게 돌리렵니다.




오늘은 그의 첫 출근 날입니다.

아들내미 첫 출근 시키는 기분이 이런 건가요?




3시간 내리 앉아 쓰고도 넘치는 기분.





감사로 가득한 2024년 하반기, 스타트입니다.

앞으로 찾아 올 선연에 미리 감사를!^_^





*곧 신규 공지 두 건 나갈 예정입니다.

책 쓰기 관심 있는 예비 작가님, 초보 작가님 안테나 켜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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