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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Sep 25. 2020

글로 약밥을 짓겠어요.


훑기 보다 유심히 보기 시작한 때로 글이 쌀 처럼 보인다. 오늘 아침도 넘이 지어놓은 밥 몇 개를 보고 오는 길이다.


어떤 글에는 찰기가 있다.

틈 없이 꽉꽉 들어차 밀도가 높다. 분명 한 페이지 읽었을 뿐인데, 열을 읽은 기분이다. 얼마나 촘촘하고 빽빽한지 5줄 표현할 것을 1줄로 완성해 낸다. 이런 글은 햅쌀로 갓 지은 밥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오래 되어도 맛있으니까. 글 한 공기에 배가 부르다. 하루는 안 먹고도 버티겠다.


또 다른 글은 공기 반, 쌀 반이다.

약간의 공백이 어쩐지 아쉽다. 이런 밥은 금세 배고파 진다. 아마 밥 지어본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요리사일게다. 그래도 정성은 넘친다. 아직 성글지만 맛난 밥 지을 것을 안다. 공기 대신 더 멋진 재료로 인사할 것을 믿는다.


먹기 힘든 밥도 있다.

안남미처럼 후두두두 떨어져 버리는 글. 글에 찰기란 없다. 활자와 활자 사이 서로 엉겨붙음 없이 각자 따로 놀아 더는 먹을 수 없다. 다시금 한 숟갈 떠 입에 넣어 보지만 목구멍 지나 마음까지 넘어가질 않는다. 전하고 싶은 말 분명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정말 모르겠다. 네 맛도, 내 맛도.



글이 밥이라면 글로 약밥을 짓고 싶다.

활자와 활자 서로 꼭 껴안아 틈이란 없는 탓에, 단 한 끼로 열 끼를 먹은 든든함 선물하고 싶다.

욕심 내어 말린 대추 손톱만한 사이 사이 끼워 넣고,

조금 더 욕심 부려 왕밤도 몇 알,

가능하다면 솔솔 잣도 뿌리고 싶다.


내가 지은 약밥으로, 당신 마음 든든히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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