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곳 고장에서 자랐다. 12살, 그곳으로 이사 간 이후부터 대학에 진학해 다시 서울로 오기 전까지 나는 틀림없이 그곳에서 자랐다. 그래서 내겐 그곳이 고향이다. 누군가 나에게 서울 사람이냐고 물으면 나는 유창한 서울말로 외지고 작은 그곳 시골을 가리키곤 한다. 아름다운 10대 시절 내 모든 세상이었던 그곳, 가족과 친구와 그 애가 있던 그 작고 초라한 고장, 아늑하고 정겨웠던 나의 우주.
엄마와 함께 학교에 가기 위해 처음 읍으로 나갔던 날을 기억한다. 여기저기 헤지고 구멍 난 도로와 허름한 2층짜리 빌딩들, 온갖 농기구를 걸어놓은 철물점과 정체 모를 가루를 연신 빻아대는 방앗간의 구수한 냄새, 기름때 묻은 바닥에 생전 처음 보는 농기계들이 세워져 있던 수리점, 기와를 얹은 조그만 집을 개조해 문을 연 구멍가게와 그 앞 평상에 앉아 쉬고 있는 어느 중년의 아주머니, 그 너머로 얼마 전 완공된 그곳에서 가장 크다던 15층 베이지색 아파트 단지. 촌스럽지만 단정하게 차려입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분주하게 움직이는 젊은 사람, 느긋하게 걷는 나이 든 사람, 오래돼 보이는 1층 한의원을 드나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제 막 식사를 끝냈는지 제법 깔끔해 보이는 어느 식당 문을 열고 여유롭게 나오는 한 무리의 노동자들, 1톤짜리 파란색 트럭에서 수확한 지 얼마 안 된 양파가 든 것으로 보이는 빨간색 망을 내리는 아저씨들, 그 땀방울들.
택시의 유리창 너머로 그곳 읍내 정경을 처음 마주하던 날, 나는 낯선 환경으로부터의 두려움과 이유 모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곳에 있는 모든 게 변변찮고 어설펐지만 그렇기에 나는 그곳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읍내로 진입한 택시는 곧 차도를 벗어나 어느 골목으로 들어섰다. 머지않아 저 앞에 초등학교로 보이는 3층짜리 살구색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너는 왜 혼자 우유 가지러 가?”
복도를 걸어가던 정훈이가 별안간 내 목소리에 놀란 듯 흠칫 뒤돌아봤다.
1교시를 마친 쉬는 시간이면 각 교실에서 2명씩 급식소 앞으로 가 우유가 든 박스를 받아 온다. 그런데 이번 주 우유 당번인 정훈이는 왜인지 어제도 혼자서 우유를 가져오더니, 오늘도 혼자 교실을 나서길래 얼른 뒤쫓았던 것이다.
녀석은 조금 난감한 듯 대충 얼버무리고는 다시 걸음을 이었다.
“응? 호정이 팔이 불편하다 했다고? 너 그걸 믿니?”
그러니 녀석이 배시시 웃었다.
“아프다는데 우짜겠노, 거 별로 안 무거우니까, 그냥 혼자 갖고 오지 뭐”
얘도 참 글렀다 싶었다. 그렇게 물렁해 빠진 마음가짐으론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을 텐데. 이럴 때면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의심하거나 피해의식 없이 그저 배려할 줄만 아는 인간은 나약하다. 자기가 손해를 보는 게 결국은 이용당하는 것일 뿐이라는 걸 도저히 알지 못한다. 그런 인간은 세상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포식자들에게 잡아먹히기 딱 좋으니까.
“같이 가자, 내가 도와줄게”
그러니 정훈이가 조금 놀란 얼굴로 손사래 쳤다.
“어? 아이라, 혼자 갔다 와도 돼”
“나도 조금 심심하던 참이야, 같이 다녀 오자”
내가 자길 이용하려 한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정훈이는 내심 고마운 듯 그 황소같이 큰 눈망울로 배시시 웃었다.
급식소 앞에 도착하니 전교 각 반 아이들이, 학년별로 나뉘어 쌓여 있는 우유 박스들 앞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예상대로 그 무리에 현우도 속해 있었다.
어제, 교실 창문 너머로 문득 복도를 걸어가는 현우의 옆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퍼뜩 교실 뒷문을 열어 내다보니 어떤 애와 짝을 이루어 초록색 우유 박스를 나란히 들고 가고 있었다.
우리 반 우유를 찾는 척하며 슬그머니 다가갔다. 녀석은 같이 온 애와 뭔가를 골똘히 얘기하고 있었다. 왠지 둘이서 조용히 소곤대는 게, 중요한 얘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 진호 결석해가 그라나?’
‘그랄 리가 있나, 가아가 오늘 결석했는지 영양사 쌤이 어찌 알겠노’
‘울 쌤이 갈카 줬을 수도 있제’
‘인자 일 교시 끝났는데?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어쨌든 갯수는 맞다 아이가, 그냥 가아가자’
‘그랬다가 우유 모지라다고 뭐라캐이면 니가 책임 질래?’
‘그람, 영양사 쌤한테 물어봐라’
‘니가 물어봐라’
살짝 들어보니, 자기들이 가져가야 할 박스 안에 우유 하나가 모자란 것 같았다.
“몇 개 모자란대?”
둘의 대화 사이로 불쑥 끼어들었다.
조금 놀란 듯 이쪽을 돌아본 둘은, 내성적인 애들이 으레 그렇듯 서로 눈치를 보며 쭈뼛거렸다.
“안녕, 나 알지? 너도 이번 주 우유 당번이니?”
현우에게 아는 척하며 다가갔다.
“어.. 어, 안녕”
사실, 그저께 그 애를 내게서 뺏어갔다는 건 그저 내 입장일 뿐, 현우가 겸연쩍거나 껄끄러워할 일이 전혀 아니긴 하다. 그런데도 녀석은 괜스레 무안해하며 내 눈을 피했다.
“다른 반 거 개수 세보자, 선생님이 잘못 넣었을 수도 있잖아, 정훈아, 우리 반 몇 명이야?”
옆에 서 지켜보던 정훈이가 다가왔다.
“우리, 어... 삼십일곱 명!”
우린 5학년 것 중 맨 밑에 있는 3반 박스를 들어냈다.
“음... 우리 건 서른일곱 개 맞아, 이 반은 몇 명이야?”
“이 반? 모르겠는데, 이 반 아아들은 와 안 오노?”
2반 아이들은 조금 늦을 모양이었다. 2반 것을 세어보니 38개로, 1개가 모자라 35개 밖에 없는 1반보다 3개나 많았다.
“현우야, 혹시 이 반 몇 명인지 알아? 우유는 서른여덟 갠데”
자기 이름을 알고 있다는 걸 녀석은 몰랐을 거다. 그리고 왠지 내게서 친근하게 자기 이름이 불리니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어어, 나도 잘 모르겠는데”
2반 우유 하나를 1반 우유 박스에 넣었다.
“그냥 가져가, 이 반이 서른여덟일 리는 없을 거야, 한 개가 잘 못 들어간 거겠지”
그러니 둘은 퍼뜩 놀라며 당혹스러워했다.
“아, 안돼, 그래가 이 반이 진짜 삼십여덟 명이면 우짤라꼬?”
“이 반이 너희 반보다 두 명이나 더 많을까? 그렇진 않을 거 같은데”
여전히 둘은 찜찜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래도, 그랄수도 있지 않나...”
이런 답답한 놈.
현우를 똑바로 쳐다봤다.
“내가 책임질게”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만약 이 반 우유가 부족하다고 하면, 내가 뺐다고 할게, 너는 그냥 가져가”
하지만 아쉽게도 현우는 2반 애들이 와서 확인할 때까지 우유를 가져가지 않았다. 내게 신세를 지게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호락호락한 애는 아니었던 것이다.
점심을 먹은 후, 쉬는 시간 동안 연습장에 연신 연필을 그적이며 내 얘길 듣던 지혜가 이윽고 의견을 냈다.
“현우가, 쫌 답답한 면도 있기는 한데, 되게 꼼꼼해”
흠, 답답하다는 말을 좋게 하면 꼼꼼하다는 거겠지.
“근데 걔도 친해지면 말도 많이 하고, 되게 착해, 헤헤”
지혜에게 현우 이야기를 하니, 현우와는 3, 4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짝지도 몇 번 했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구나, 그럼 걔랑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돼?”
그러니 그적이던 것을 멈춘 지혜가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돌아봤다.
“글케, 어짜꼬, 가아가 원체 친해지기 어려운 아안데... 근데 니는 현우랑 와 친해지고 싶은데에?”
솔직히 모르겠다. 그냥 그 애 친구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녀석의 약점을 알아낸다거나 그 애와의 사이를 이간질시켜 떨어뜨리게 하고 싶은 걸까. 이유가 뭐든지 간에 일단 지금은 지혜를 써먹어야 할 때다.
나는 그저 조용히 웃으며,
“그냥, 애가 착해 보여서, 히히”
그런데 문득 녀석이 조금 낯간지러운 듯한 표정으로 가만히 웃는 것이다.
“가아 때메 그라나? 헤헤”
순간 싸늘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래, 내가 그 애에게 집착한다는 것도, 그런데 친해지고 싶다는 애가 하필이면 그 애 친구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겠지. 하지만 지혜야, 거기까지만 해. 더 알고 싶어 했다간 내가 너를 혼내야 할지도 몰라.
지금은 그러지 않지만, 그 시절의 나는 언짢아질 때면 정색하는 표정을 짓거나 은근히 노려보는 표정을 짓곤 했다. 하지만 그날은 지혜가 필요했으니까 굳이 그러지는 않았다. 아니, 어쩌면 못 했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지혜는 제법 쓸만한 무기를 갖고 있다는 걸 가끔 잊어먹고는 했으니까.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지혜를 진지하게 대할 수밖에 없는 말을 듣게 된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그렇게 보이니? 하지만 내가 네 단짝이 되고 싶었던 거처럼,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단순한 이유서부터 시작되는 건지도 몰라”
꽤 어려운 말을 들었으니 이제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않겠지.
그런데,
“니는, 나랑, 단짝이 되고 싶었나아?”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응? 그야 당연하지, 너처럼 착하고 예쁜 애랑은 누구나 친구가 되고 싶어 할걸?”
그러니 지혜는 배시시 웃으며 다시 연습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아는 참 좋겠다, 니처럼 짱 착한 아아가 이래 좋아해 주고”
뭐라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대체 왜 그 애에게 집착하는 걸까. 내 어딘가가 고장 난 걸까. 아니 그것보다, 그 애는 날 싫어하는 데 이렇게 계속 붙잡아 두는 게 맞는 걸까.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는 생각을 다잡느라 간신히 웃어야 했다.
“무슨 말이야 그게, 하하”
문득 고개를 돌려 다시 나를 바라본 지혜가 말했다.
“단짝이라꼬 해줘서 고마워, 헤헤”
먼 훗날 지혜는 그 시절 나를 정말 사랑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노라고. 친구로서 은인으로서 자기를 구해줘서 정말로 고마웠다고. 어느날 내가 자기 옆으로 와줘서 그 힘들던 시절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고.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사실은 내가 자기를 가엽게 여겼던 걸 알고 있었노라고.
나는 얼른 부정했다. 너를 불쌍히 여겨 친구가 됐던 게 절대 아니라고. 하지만 녀석을 하찮게 여기고 이용하려 친구가 됐었다는 사실은 말하지 못했다.
애석하게도, 살며시 웃음 짓는 녀석의 표정에서 내 말을 믿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네가 나를 불쌍히 여겼대도 상관없어. 너의 동정이 내겐 큰 축복이었어. 내 생에 다시 없을 행운이었어.
이 바보 같은 기집애.
지혜의 끝 간 데 없는 믿음에 더는 대꾸할 재간이 없어,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